인터뷰

백종원 ‘촉’ 이번에도 통했다 “시장 될 거냐고?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이유진 기자
백종원 대표는 <맛남의 광장>, <백종원의 골목식당> 지역으로 촬영을 다닐 때마다 지역 소멸의 심각성을 체감했다고 말한다. 사진 크게보기

백종원 대표는 <맛남의 광장>, <백종원의 골목식당> 지역으로 촬영을 다닐 때마다 지역 소멸의 심각성을 체감했다고 말한다.

백종원의 손을 타자 거짓말처럼 시장이 활기가 돌았다. 하루 평균 방문객 100~200명에 그쳤던 충남 예산시장의 방문객이 재개장 일주일 만에 1만명을 돌파했다. 백종원이 ‘지역 시장 살리기 1탄’ 프로젝트로 충남 예산군 ‘예산시장’ 리모델링과 상인들의 입점을 도우면서다. 이번에도 그의 ‘매직’이 통한 것인가. 재개장 다음날인 지난 10일 ‘더본코리아’ 대표이사이자 요리연구가 백종원을 인터뷰했다. 지상파·케이블 방송 프로그램을 모두 접은 그의 ‘촉’은 왜 전통시장으로 향했나.

지난 9일 개장한 ‘백종원표’ 예산시장은 일주일 만에 1만 명이 방문하며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다. 더본코리아 제공

지난 9일 개장한 ‘백종원표’ 예산시장은 일주일 만에 1만 명이 방문하며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다. 더본코리아 제공

■촬영 다니며 느꼈던 심각한 지역 소멸

지난 설 연휴, 예산시장 내 골목양조장의 막걸리는 일찌감치 ‘솔드아웃’이 됐고 신광정육점의 인기 부위도 동이 났다고 한다. 반려견 동반이 가능하고 유아차가 다니기 편하며 화장실이 깨끗해서 좋다는 후기도 눈에 띄었다. 각종 음식부터 카페, 떡집까지 갖춘 예산시장 ‘먹거리 장옥’은 이렇다 할 개업식도 없었으나 소문만 듣고 찾아온 사람들로 이미 북적였다. ‘백종원표’ 시장을 경험해보고 싶어서다.

끊이지 않는 ‘시장기’를 자랑하는 백종원이 2년 전부터 방문객의 발길이 줄고 상권이 무너진 ‘예산시장 되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옛 간판은 최대한 살리고 공간을 개조해 요즘 ‘힙하다’는 레트로풍으로 시장을 꾸몄다. 1월 말 현재 ‘먹거리 장옥’에는 12개 점포가 영업 중이다.

“저 원래 개업식 안 좋아해요. 굳이 크게 행사를 해서 사람들을 떠들썩하게 모으는 것보다 점진적으로 손님이 늘길 바란다는 마음이 담겨있죠. 또 손님이 서서히 늘어야 이번에 창업하신 분들에게도 시행착오 없이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까요.”

백종원은 구독자 568만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에서 음식 관련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자신만의 요리법을 소개하는 ‘백종원의 쿠킹로그’부터 시장 살리기 프로젝트 ‘백종원 시장이 되다’, 전통시장의 맛집을 찾는 ‘님아 그 시장을 가오’, 식당 컨설팅 코너 ‘MZ들이 장사하는 세상’ 등 웬만한 방송사 예능국만큼이나 다양한 영상으로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는 방송과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일주일에 하루이틀은 지역 이곳저곳을 찾는다. 자연스레 피부로 느껴지는 것이 지역 소멸 문제였다.

“<맛남의 광장>, <백종원의 골목식당>(이하 골목시장) 촬영을 위해 지역을 다니면서 느낀 게 많아요. 요즘에도 ‘님아 그 시장을 가오’ 찍으러 일주일에 한 번씩 지역 시장을 방문하는데 우리나라 지역 소멸 정말 심각해요. 국도로 가다 보면 노인분들만 사시는 마을도 있고 마치 영화에서 나올 것 같은 비어 있는 유령마을도 쉽게 볼 수 있어요. 전체적인 저출생 문제도 있지만 발길을 향하게 하는 매력적인 지역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껴요. 그런 생각에서 ‘시장 프로젝트’가 시작됐어요.”

그는 이번 시장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시골 빈집을 이용한 ‘뭔가’를 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 지역 살리기에 진심인 그가 꺼낸 단어는 ‘지역 자생력’이다.

“여기 시골 출신 아닌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저를 포함해 대부분 시골 출신이지만 서울에 살고 있잖아요. 지역이 어렵다 해서 자금만 투입한다고 그곳 경제가 살아나는 게 아니거든요. 거칠게 얘기하자면, ‘언제까지 세금을 퍼줄 것이냐’는 거죠. 지역 자체 콘텐츠를 활용해서 자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면 지역 경제, 지역 소멸, 관광 자원까지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거예요. 우선 내가 잘하는 음식 콘텐츠로 지역을 살려보고 싶었던 거죠.”

지역 자생력이 살아난다면 한국을 찾는 외국인도 서울 중심의 관광에서 벗어나 우리 시골 콘텐츠를 즐길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가 프랑스 남부 시골 마을이나 일본 지역 특산물을 먹으러 발품을 팔아 찾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머릿속이 궁금해진다. 어떻게 해야 죽어가는 전통시장을 살릴 수 있을까.

“일단 지역 특산물이나 이야깃거리가 담긴 새로운 레시피, 그곳에 가야 먹을 수 있는 매력적인 음식이 필요해요. 그다음은 대중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재래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깨나가는 것이죠. 위생이라든가, 불투명한 정찰제, 신용카드 사용 불가 같은 시장에 대한 불신을 말이죠. 인식이 바뀌는 건 쉽지 않겠지만 상인과 관광객 모두 오랜 설득의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예산 시장에는 백종원의 손길이 느껴지는 가성비 만점 음식으로 가득하다. 멸치국수와 파기름 국수가 4천원 대다. @sunny_with_2cats 제공

예산 시장에는 백종원의 손길이 느껴지는 가성비 만점 음식으로 가득하다. 멸치국수와 파기름 국수가 4천원 대다. @sunny_with_2cats 제공

그가 리모델링한 예산시장은 ‘지역 음식점은 비싸다’는 기존 관념을 깼다. 가히 백종원다운 가성비 넘치는 음식으로 가득하다. 멸치국수 4000원, 파기름 국수 4500원이다. 고기가 땡긴다면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 시장 내 ‘불판빌려주는 집’에서 휴대용 가스버너와 불판을 빌리고 야채 등을 사서 먹거리 광장에서 직접 구워먹으면 되는 시스템이다. 국내산 삼겹살이 200g 4900원, 뒷고기가 300g 5000원으로 저렴하다.

“지역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서울보다 지역이 비싼 이유를 해명하자면 수요가 없으니 그만큼 음식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도시 사람으로서는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뜨내기라 바가지 씌운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백종원이 제시한 ‘가성비’ 만점 가격은 그와 뜻을 같이해 입점한 상인들도 망설이게 했다. 그가 “한 달만 해보고 힘들다면 가격 조정을 하자”고 그들을 설득해 만들어낸 음식값이다. 예산시장에는 국숫집, 식육식당, 닭고기 바비큐 그리고 예산 특산물인 꽈리고추를 이용한 닭볶음탕 가게가 있다. 모두 그의 컨설팅을 거쳐 만들어진 음식점이다. 이미 시장에 입점해 있던 중식당, 칼국숫집, 치킨집, 피자집도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백종원 컨설팅’을 받았다.

■칭찬은 백종원도 춤추게 한다

그가 첫 번째 프로젝트 장소로 예산을 선택한 이유는 자신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제 고향이잖아요. 지자체도, 상인들도 알음알음으로 아는 사람이 있어서 설득이 쉬웠어요. 그리고 저도 절실했던 것이 제가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들이 여기 있잖아요. 학생 수가 줄다 보니 학교도 없어지겠구나, 위기감이 생긴 거죠.”

2012년 백종원은 그의 조부가 창립한 학교법인 예덕학원(예산고·예화여고)의 제11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재단 산하 학교에서 제공되는 푸짐한 급식과 특식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시장 살리기가 사회 공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는 엄연히 수익형 사업이라 강조한다.

“지역 공헌이라는 게 지역에 무언가를 거저 드리는 것도 있지만 지자체가 귀한 세금을 적절하게 잘 쓸 수 있도록 컨설팅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지자체라도 저희 힘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언제든 달려가죠. 돈 벌 건데 좀 좋은 일도 하고 ‘폼나게’ 벌어보자는 거죠.”

예산시장만큼은 빠른 사업 진행을 위해 기획부터 리모델링에 들어간 모든 비용은 더본코리아에서 지출했다. 새로 개설한 매장은 백종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예덕학원에서 매입했다. 이유 있는 매입이었다. “<골목식당>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던 점은 손님이 많아지면 나중에 임대료가 올라서 결국 음식값을 높일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생긴다는 거였어요.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하죠. 저희가 매장을 갖고 있으면 시장이 활성화돼도 임대료를 조절할 수 있다는 판단에 아예 매입했습니다. 사학재단에는 수익용 재산이라는 것이 있거든요. 내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재산이고 도교육청에 열띤 설득을 통해 허가를 받았습니다.”

이번 프로젝트 이름이 ‘백종원 시장이 되다’이다. 게다가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포부가 진짜 정치인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 혹시 지자체장 등 정계 진출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 국민 호감도만 생각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백 대표에게 정계 진출 여부를 묻자, 손사레를 친다. 그는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자 행복”이라 말한다.

백 대표에게 정계 진출 여부를 묻자, 손사레를 친다. 그는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자 행복”이라 말한다.

“에잇,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 따로 있는데 무슨 정치를 해요. 내가 좋아하고 돈 버는 일인데 남들이 알아봐 주고 칭찬해주니까 나는 너무 좋은 거죠. 내가 원래 착한 사람도 아니고 그냥 사업가인데 주변에서 ‘대단한 일 한다’ ‘좋은 일 한다’ 자꾸 말씀해주시니까 착한 사람처럼 변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뿐이에요.”

무엇보다 그는 마음먹은 것들이 눈앞에서 실현되는 그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엄청난 거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거 말이죠. 사람들이 ‘그게 되겠나. 미쳤나 보다’ 했는데 시간이 흐르니까 되잖아요. 직원들도 지자체 파견 보내고 할 때는 ‘안 될 거 같다’라고 엄청 투덜대거든요. 그런데 구상했던 것들이 실현되고 지역민들이 정말 고마워하니까 일이 즐겁고 신나는 거죠.”

시장을 레트로풍으로 바꾼다는 구상 역시 처음에는 회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개장하기도 전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확 바뀐 예산시장 이미지가 공유되며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치 영화 세트장 같다는 평이다. 예산시장의 전체 이미지 디자인은 tvN 예능 방송을 통해 인연을 맺은 미술감독의 도움을 받았다.

“섣불리 너무 옛날 느낌으로 했다가 망할 거라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공간 스케치를 해준 미술감독님도 완성한 것을 보더니 ‘실제로 해낼 줄 몰랐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처음 한 것 치고는 자연스럽게 잘됐죠?”

요즘 그의 별명은 ‘백 명의 종원’이다. ‘몸이 몇 개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언제 쉬느냐’ 물어 보니 “많이 먹어도 빨빨거리고 돌아다녀 살이 절로 빠진다”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쉬는 것”이라고 답한다. 일이 진행되는 것만 상상해도 피로가 싹 풀린단다.

최근 백종원은 출연하던 예능 프로그램을 모두 접고 개인 유튜브에 전념하고 있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 싶어서다. 한식을 널리 알리는 일도 그의 목표 중 하나라 전통주나 김치 홍보 영상도 있다. 제작 스태프만 해도 20여명. 소규모 제작사를 방불케한다.

“제 사주를 보면 역마살이 세 개라며 부모님께서 외교관이 되려나 내심 기대하셨다”고 말하는 백종원. 곳곳을 누비며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됐으니 틀린 예측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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