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 위한 두 번째 걸음···탈시설 장애인의 특별한 결혼식

이홍근 기자
신부 공선진씨(왼쪽)와 신랑 안태훈씨(오른쪽). 미디어필링 제공 사진 크게보기

신부 공선진씨(왼쪽)와 신랑 안태훈씨(오른쪽). 미디어필링 제공

신랑 입장 차례가 되자 신랑 안태훈씨(24)가 전동 휠체어 조종기를 오른손으로 꼭 쥐었다. 직전 결혼사진 촬영 때까지만 해도 함박웃음을 짓던 임씨였지만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사회자의 입장 신호가 떨어지자 안씨가 조종기를 앞으로 밀었다. 새신랑을 태운 휠체어가 식장을 힘차게 가로질렀다. 신부 공선진씨(28)가 가장 좋아하는 그룹 샤이니의 ‘원오브원’이 배경 음악으로 깔렸다.

신부의 입장은 더 여유로웠다. 하얀 드레스에 리본을 머리에 단 공씨는 입장 도중 휠체어를 한 바퀴 돌려 하객들에게 손 인사를 건네는가 하면,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손 대신 휠체어 조종기를 쥔 공씨는 신랑 옆에 선 뒤 환하게 웃어보였다.

19일 신랑 안태훈씨와 신부 공선진씨가 행진하고 있다. 미디어필링 제공

19일 신랑 안태훈씨와 신부 공선진씨가 행진하고 있다. 미디어필링 제공

지난 18일 오후1시 서울 강서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건물에서 뇌병변 장애인인 안씨와 공씨의 결혼식이 열렸다. 공씨가 거주하는 대한성공회유지재단 지원주택 주거지원센터(지원주택) 식구들과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들이 결혼식 준비를 도왔다. 친구들과 장애인단체 활동가들, 공씨와 안씨가 자란 시설 관계자 등이 하객으로 참석했다.

두 사람이 노조 건물에서 결혼식을 올린 이유는 화장실 때문이다. 결혼 준비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도운 지원주택 강자영 센터장은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결혼식을 올릴 공간이 없다”고 했다.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인 이들이 수천만원씩 하는 예식장 대여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뿐더러 장애인 화장실을 제대로 갖춘 예식장 자체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 일반 카페를 대관하려고 했지만 곳곳에 있는 문턱이 문제였다.

그런 이들에게 공공운수노조 건물은 훌륭한 대안이었다. 이 건물에 설치된 화장실은 ‘모두의 화장실’이다. 모두의 화장실은 성 정체성,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도록 공간이 넉넉할 뿐만 아니라 짚을 수 있는 지지대, 응급상황에 대비한 비상벨도 설치돼 있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1층 전체에 문턱이 없어 신랑과 신부, 하객들이 쉽게 돌아다닐 수 있다.

서울 강서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건물에 설치된 모두를 위한 화장실. 이홍근 기자

서울 강서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건물에 설치된 모두를 위한 화장실. 이홍근 기자

공씨에게 결혼은 아내가 되는 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2018년 평생을 살아온 장애인 시설을 박차고 지역사회로 나온 공씨는 결혼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성인이 된 뒤에도 시설에는 있기 싫고, 가족은 안 받아줄 거 같아서 탈시설을 선택했다”는 공씨에게 남편과 경제공동체를 꾸리는 일은 두 번째 자립인 셈이다. 이들은 LH의 신혼부부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할 예정이다. 강 센터장은 “장애인이 지원주택에서 나가는 경우는 사망해서 나가는 게 대부분”이라며 “결혼으로 자립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안씨에겐 공씨와의 결혼이 탈시설의 동기가 됐다. 공씨와 같은 시설에서 생활하던 안씨는 공씨가 시설을 떠난 뒤 “우울증이 심해졌다”고 했다. 코로나19로 면회조차 힘들어지자 안씨는 동거를 제안했다. 여동생의 입을 빌려 수줍게 건넨 첫 고백과 달리 당찬 프러포즈였다. 20번의 프러포즈 끝에 안씨는 공씨의 승낙을 얻어냈다.

이날 두 부부는 서로를 위한 성혼선언문을 낭독했다. 공씨는 육성으로, 안씨는 휴대전화 자판 음성 변환으로 서로에게 약속을 건넸다. “싸우지 않기. 혹시 싸우더라도 내가 먼저 사과하기. 더 넓고 안락한 집을 구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열렬히 사랑하기.”

[MV] 공선진 - ‘내 이름 공선진’ (with 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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