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酒食)탐구생활 ㉑

“핑크빛 동심, 푸릇푸릇 농심… 이곳에서 활짝 피어납니다”

속초 | 박경은 기자

속초 ‘과자의 성’ 조성조 대표

제주 오메기떡, 경주 황남빵, 통영 오미사꿀빵 등은 지역을 상징하는 전국구 명물 간식이다. 이 지역을 여행한 뒤 귀갓길에 오르는 여행자들의 손에 으레 들려 있게 마련인 먹거리다.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갖고 있는 데다 맛도 좋고 선물용으로도 손색이 없어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이 같은 제품의 역사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최근 몇 년 새 화제의 지역 기념품으로 떠오른 먹거리들도 있다. 뚜렷한 관광지로 명성을 떨치진 않지만 고유의 농산물을 가진 곳들이다. 해당 지역 특산물로 만들어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는 데다 앙증맞은 캐릭터 디자인까지 겸비해 소비자들의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것이 원주의 복숭아빵, 성주 참외빵, 고창 수박빵, 안동 사과빵 등이다. 관광객이 붐비는 지역은 아니더라도 해당 지역 방문자들에겐 여행의 추억을 더 해주는 의미가 있어 꾸준히 판매가 늘고 있는 제품들이다.

원주 복숭아빵

원주 복숭아빵

부산 사직야구장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부산 갈매기빵, 강원도 인제 황태덕장 인근에서 맛볼 수 있는 용대 황태빵, 봉투를 뜯자마자 샤인머스캣 향이 진동하는 영천 샤인머스캣빵 등도 지역에서 가파르게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 캐릭터 빵들이다.

각 지역의 농특산물을 활용한 이 제품을 만드는 곳은 강원도 속초에 있는 ‘과자의 성’이다. 이곳에서 제조자 설계·생산(ODM) 방식으로 생산하는 캐릭터 빵은 30여 종에 이른다. 구미 멜론빵, 진도 유자빵, 군위 자두빵, 칠곡 꿀벌빵, 소래 꽃게빵 등 지역을 대표하는 웬만한 특산물 빵은 아우른다고 보면 된다. 지금도 여러 지자체에서 지역 농수산물을 활용한 제품 개발 의뢰가 이어지고 있다.

직원 40여 명 규모인 지방의 작은 회사치고는 상당히 탄탄한 성과를 쌓은 셈이다. 1988년생인 조성조 대표는 9년 전 가업을 이어 창업에 나섰다. 그의 아버지는 단풍잎 모양에 팥소를 넣은 ‘설악산 단풍빵’을 개발해 작은 빵집을 운영했다.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빵은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대학에서 제과제빵을 전공했고 일본 명문 요리학교로 꼽히는 츠지 제과학교에서 공부했다. 언뜻 보기엔 상당한 자산을 물려받은 것 같지만 그는 “맨땅에 헤딩하며 패기만 갖고 시작했다”고 말한다. 원래는 일본에서 공부를 마친 뒤 현장에서 경력을 쌓을 계획이었으나 가세가 급격히 기울면서 계획 수정이 불가피했다. 다행히 청년창업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프로그램들이 제법 있어 창업의 디딤돌로 삼을 수 있었다. 조 대표는 “부모님이 만들었던 빵을 좀 더 발전시키고 여기에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서 지역색을 드러내 보자는 초기 콘셉트는 일본에서의 경험을 통해 대략적인 가닥을 잡았다”면서 “창업 당시에 그런 콘셉트의 제품을 찾기 쉽지 않았던 터라 막연한 희망은 있었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나온 첫 결과물은 강릉 커피빵이었다. 당시 강릉은 커피의 성지로 자리잡고 있었으며 안목항 커피거리는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드는 명소가 됐다. 강릉을 대표하다시피 하는 보헤미안 커피 원두로 만든 앙금을 넣은 커피빵은 큰 인기를 얻었다.

‘과자의 성’ 조성조 대표가  다양한 캐릭터 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과자의 성’ 조성조 대표가 다양한 캐릭터 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운이 좋았어요. 지금이야 여러 가지 커피빵이 생겨났지만 그때는 많은 분들이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이셨어요. 커피빵이 잘 되고 소문이 나니 자연스럽게 영업이 되더라고요. 다른 지자체나 단체에서 이런저런 캐릭터빵을 만들어보자는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지요.”

강원도 농업기술원에서 의뢰해 개발했던 원주 복숭아빵은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치악산의 복숭아와 강원도의 쌀을 활용해 만든 이 제품은 복숭아를 닮은 앙증맞고 귀여운 모양 때문에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뜨겁게 달궜다. 서울국제식품산업대전을 비롯해 여러 식품상을 수상하며 맛과 디자인을 인정받았다. 원주를 대표하는 캐릭터 상품이 됐음은 물론이다.

과자의 성에서 생산하는 캐릭터빵은 초창기엔 밀가루를 이용했지만 지금은 100% 쌀가루를 사용한다. 글루텐이 없는 쌀가루로 캐릭터빵 모양을 구현하기는 쉽지 않다. 개발과정에서 버려야 했던 빵은 수만 개에 이른다.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90일 정도 유통기한을 유지하는 비법은 특수포장 기술에 있다.

“고창 수박빵의 까만 줄은 직선이 아니라 지그재그로 표현되어 있어요. 이런 작은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색깔을 표현하는 기계를 새로 개발해야 했죠. 지난 9년 동안 그런 식으로 타협을 고민해야 하는 순간이 꽤 있었지만 미련한 쪽을 선택해 온 편이에요. 그런 더딘 걸음이 우리 기술이자 경쟁력으로 쌓인다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강원도 속초 ‘과자의 성’ 외부 전경.                                              서성일 선임기자

강원도 속초 ‘과자의 성’ 외부 전경. 서성일 선임기자

2021년에는 속초 한화리조트 앞에 3층 규모로 과자의 성을 세웠다.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 찰리와 초콜릿공장의 콘셉트를 조금씩 녹여낸 체험공간이자 제조공장이다. 1층은 보이는 빵공장과 판매장, 2층은 사무실, 3층은 체험공간과 카페로 구성되어 있다. 흥미로운 구경거리에다 쿠키와 빵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 때문에 자녀를 동반한 가족들에게는 필수 방문코스로 소문이 났다.

“굳이 농산물을 직접 사용하는 대신 과일의 향과 맛을 표현하는 부재료를 사용하라는 권유도 많았어요. 당장은 편하고 쉬울지 모르지만 그건 저희 회사의 취지나 정체성과는 맞지 않는 길이예요. 방문객 중 ‘우리 지역 빵은 왜 없냐‘고 서운해하는 분들을 보면 고맙고 뿌듯하죠.”

강원도 속초 ‘과자의 성’ 1층 매장. 각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한 캐릭터 빵을 판매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강원도 속초 ‘과자의 성’ 1층 매장. 각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한 캐릭터 빵을 판매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1층 매장에서 제품을 구경하는 방문객들이 자주 하는 질문 중 하나는 ‘부산 갈매기빵에는 뭐가 들어가 있느냐’는 것이다. 과일이나 농작물 이름이 들어간 다른 빵과 달리 내용물을 떠올리기 쉽지 않아서일 텐데, 이 빵에는 초콜릿 크림이 들어간다.

올해 새롭게 내놓을 빵은 제주 농업기술원과 함께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제주 바나나빵, 그리고 속초 방울토마토빵이다. 조 대표는 “그동안 다른 지역의 캐릭터빵을 주로 만들다 보니 정작 속초의 좋은 농산물을 알릴 수 있는 제품은 제대로 개발하지 못했다”며 웃었다.

과자의 성에서 만드는 다양한 캐릭터 빵

과자의 성에서 만드는 다양한 캐릭터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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