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왠지 모르게 연상되는 ‘그것’

박경은 기자

(5)‘음란 마귀’ 소환하는 소시지

넷플릭스 콘텐츠 목록을 탐색하다 한 제목에 눈길이 머물렀다. ‘소시지 파티’. 혹자는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머릿속 ‘음란 마귀’를 흔들어 깨우며 민망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제목. 맞다. 지금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 의미다. 무대는 대형마트의 식품매장. 주인공은 길쭉한 프랑크 소시지 ‘프랭크’와 그의 여자친구인 핫도그번 ‘브렌다’이다. 인간들에게 선택돼 마트 밖으로 나가는 것이 천국의 삶이라고 믿고 있는 식료품들에게 어느 날 천국의 실체가 까발려지면서 이에 맞선 식료품들의 파란만장한 모험기가 펼쳐진다. 앙증맞은 캐릭터가 나선 애니메이션 영화이긴 하나 B급 유머와 질펀한 ‘섹드립’이 판을 친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과격한 난교 장면에서 쏟아지는 대사들을 듣고 있노라면 어질어질할 정도다.

[음담패설 飮啖稗說]아…왠지 모르게 연상되는 ‘그것’

이 영화의 원래 제목도 ‘Sausage Party’다. 영화적 재미로 만든 단어인가 싶어 사전을 찾아봤더니 남성이 주류인 모임을 지칭하는 속어라는 설명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배우 스칼릿 조핸슨이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소시지 파티’를 언급했다는 소식이 보도된 적이 있었다. 마블의 여성 히어로 ‘블랙 위도우’로 활약했던 그는 촬영 현장에 대해 “초창기엔 대규모 소시지 파티 같았다”는 농담 섞인 지적을 했다. 한동안 국내 영화계에서 남성 중심 서사에 남성 출연자 일색인 작품이 반복됐던 것을 두고 비판적으로 일컫던 ‘알탕 영화’란 말과 같은 맥락에 있는 단어다.

음식에 신체 부위 빗댄 건 오랜 관습
소시지를 남성 성기로 지칭한 표현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도 확인돼

금욕적 과거 기독교 중심 사회에선
‘성적 방종’ ‘체제 전복’ 낙인에 박해

고기 먹기도, 저장도 쉽지 않던 시절
‘월동 식품’으로 서민들 사랑 한몸에

신체 특정 부위를 음식에 비유하는 습성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소시지로 남성 성기를 지칭한 역사는 꽤 오래됐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이런 표현이 통용됐다. 역사작가 캐스린 페트라스는 <몸으로 읽는 세계사>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대 그리스인들도 신체 기관을 칭하는 음란한 속어를 사용했는데 그중에는 꽤 친숙한 것들이 많다. 이를테면 소시지, 고기, 덩어리 … 등이 그렇다”고 쓰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원초적인 감각은 비슷했던 셈이다.

소시지의 역사는 길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도 소시지를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 등장한다. 염소 창자에 기름과 피를 잔뜩 채워놓은 것을 불에 굽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그것이다. “여기에 기름과 피를 가득 넣은 염소 창자가 화덕 위에 몇 개 놓여 있습니다.”(<오디세이아>, 아름다운날)

국제 식품영양과학저널(2009년 2월)이 발표한 ‘소시지의 역사’를 보면 5000년 전 수메르 문명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동물의 내장 껍질, 혹은 돼지 창자에 혼합한 고기를 넣어 먹었다는 것이다. 모양이나 세부적인 재료가 다를지는 몰라도 내장 속에 고기 따위를 채워 넣었다는 점은 비슷하다.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아힘 베케라르가 정육점의 풍경을 담은 ‘The Butcher’s Shop’.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아힘 베케라르가 정육점의 풍경을 담은 ‘The Butcher’s Shop’.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소시지는 대중적으로 사랑받은 음식이었다. 냉장고는 고사하고 식품 가공 기술도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절, 소시지를 만드는 것은 그나마 음식을 안전하게 오래 보관하며 먹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게다가 살코기가 잔뜩 붙은 뼈를 들고 뜯지 않더라도 고기가 내는 그 황홀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대규모 축제에서 맛있는 음식은 빠질 수 없다. 초기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오던 ‘루퍼칼리아 축제’는 로마의 건국자인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탄생을 기념하는 동시에 다산을 기원하는 축제였다. 남녀가 자유롭게 만나 흥청거리며 서로를 탐하던 이 축제에서 사람들이 즐겼던 음식은 소시지였다. 쾌락과 자극의 역치는 갈수록 높아지는 법. 해가 거듭될수록 광란의 정도는 짙어졌다. 이 같은 분위기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이후 기독교가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아가면서 달라진다. 축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해졌고 급기야 소시지까지도 금지되기에 이른다. 성적 방종을 상징하는 음식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음란함을 상징한다는 이유로 금지됐던 소시지가 다시금 박해를 받았던 것은 1000년이 더 흐른 뒤다. 이때는 종교적·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체제를 전복하려는 불온세력이라는 의미로 낙인이 찍혔다. 전말은 이랬다. 종교개혁 바람이 유럽을 휩쓸던 16세기 초반이었다. 1522년 어느 날 스위스 취리히에서 성경 출판 인쇄업자 크리스토프 프로샤워가 사순절 기간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소시지를 먹었다. 그런데 이게 뭐 어쨌길래. 일명 ‘소시지 사건’의 발발이었다. 금욕적인 기독교 문화가 지배하던 당시 유럽에서는 사순절 기간에 육류를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고기뿐 아니라 버터 같은 유제품도 못 먹게 했을 정도이니 고기 부산물이 들어간 소시지는 말할 것도 없는 섭취 금지 품목이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소시지를 먹은 일은 대놓고 교회의 권위에 도전한 사건이었다. 게다가 이 자리에는 사제도 함께했다. 말하자면 사제가 주도해 엄격한 교회법에 반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벌인 것이다. 그 사제가 바로 스위스 종교개혁의 불꽃을 피워올린 츠빙글리다.

고기의 작은 부산물 조각까지 알뜰하게 먹을 수 있는 데다 보존성도 좋은 소시지는 유럽 여러 지역에서 애용되어온 식료품이다. 월동 식품으로 특히 각광받았다. 귀족이나 지배계급은 육식을 원하면 언제든 즐길 수 있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 가축의 살코기를 제외한 각종 부산물과 내장, 피 따위를 넣은 소시지는 살코기를 먹지 못하는 하층민들에게 요긴한 단백질원이기도 했다.

소시지를 만드는 데는 주로 돼지가 쓰였다. 가뜩이나 농업 생산성이 낮았던 중세시대에 겨울철을 나려면 한정된 사료는 소와 말에게 먹여야 했다. 자연히 돼지는 겨울을 앞두고 도축할 수밖에 없었다. 도축한 뒤 오랫동안 저장·보존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한 소시지는 유럽 전역에서 저마다의 형태로 발달했다. 수많은 소시지 종류는 지역의 기후나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음식사가 게리 앨런은 <소시지, 글로벌 역사>라는 저서에서 “유럽 남부에서는 고기를 건조시키기 쉬우므로 건조 소시지를, 유럽 북부는 춥고 습하기 때문에 생소시지나 훈제한 소시지를 더 많이 먹는 경향이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살라미 소시지를 많이 볼 수 있지만 영국식 살라미 소시지는 좀체 찾을 수 없다”고 썼다.

소시지 하면 떠오르는 나라가 있다. 독일이다. 지역별로 다양한 소시지가 발달해 1500여종에 이른다. 연간 150만t의 소시지를 먹어 치우는 독일은 세계 최대 소시지 소비 국가다. 독일에서 소시지가 다양하게 발달한 것 역시 지리적·역사적 환경과 관계가 깊다. 독일은 프랑스 등 인근 유럽 국가에 비해 경작지가 적다. 그나마 많이 생산되는 작물도 호밀이나 홉처럼 거친 환경에서 자라는 것들이다. 중세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동안 독일은 30년 전쟁의 무대이자 여러 세력이 오랫동안 각축을 벌이는 공간이었다. 황폐해진 땅에서 그나마 잘 자라는 것은 감자였고 이를 주로 먹는 것은 돼지였다. 생육 기간이 짧고 새끼도 많이 낳는 돼지를 활용해 여러 방법으로 소시지를 만드는 것은 늘상 굶주림에 시달리던 독일 사람들에게 최적의 선택지였다. 프랑크푸르트의 ‘프랑크푸르터 뷔르스트헨’, 뉘른베르크의 ‘뉘른베르거’, 바이에른의 ‘바이스부르스트’ 등 지역마다 특징을 가진 대표 소시지가 제조됐다. 한독상공회의소 마틴 헹켈만 대표는 “독일의 다양한 소시지는 독일 지역주의와 전통의 상징인 동시에 숙련되고 세심한 장인 정신과 제조 방식을 대표한다”고 설명했다.

영국에선 소시지를 ‘뱅어(banger)’라고 칭하기도 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고기도 부족해지자 소시지 크기를 키우기 위해 물을 첨가했다. 이 때문에 소시지를 튀기거나 높은 온도에서 구울 때 ‘빵(bang)’ 하고 터지는 경우가 잦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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