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을 앞둔 친구에게 가장 먼저 물어본 건 그 사람 “카톡 프사가 뭐야?”였다. 프로필 사진은 종종 소개팅용 신상 정보보다 그 사람에 관한 더 많은 걸 말해준다. 만약 프로필 사진이 귀여운 동물 사진이면 난 꽤 단호하게 말한다. “진국이네.” 정작 나 자신은 친구의 인생 사진을 찍고는 말한다. “이거 프사각. 당장 이걸로 바꿔.”
프로필 사진은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증명사진’과는 역할이 다르다. 내가 지명하지 않은 누군가가 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선택된 프로필 사진은 증명 대신 설명을 한다. 내가 아끼는 것, 하고 싶은 말 혹은 내가 엄선한 나의 모습을 담는다. 아무 의미나 의도가 없는 사진을 골랐다는 선택 자체도 그 사람의 성향을 반영한다. 페이스북이 대중화시킨 디지털 ‘프로필 사진’ 덕에 디지털 세계에 자신의 정체성을 이미지로 등록하는 이 설정에 모두가 익숙해졌고, 프로필 사진의 역사성은 프로필 사진의 장르와 코드를 만들었다. ‘무관심’ ‘부지런’ ‘아리송’ ‘표출형’ ‘개그’ ‘힙스터’ 등 다양한 프사 코드가 존재한다.
‘프사’가 개인의 정체성을 완전히 대변할 수는 없지만, ‘보여지고’ 싶은 나의 모습을 설정하는 장치임은 확실하다. 모두가 온라인 세계에 ‘프로필’ 사진을 경유하여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에 프로필 사진이 지닌 무거운 존재감을 가볍게 승화시킨 단어가 바로 ‘프사각’이다. 프사각은 ‘프로필 사진이 되기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그 이미지가 우리 사회에서 선호하는 인물상에 부합한다면 클리셰를 따르는 프사각이고, 본인이 추구하는 자아상을 반영하는 이미지와 유사하다면 오리지널리티를 담은 프사각이다. 안정적 클리셰에 충실하든 도전적 오리지널리티를 지향하든, 내가 ‘보여지고 싶은 나’를 기획하고 편집해 선보인다는 점에서 프사각을 따르는 프로필 사진을 설정하는 일은 자신과 사회를 탐구하는 창작 활동이다.
그러고 보면 친구 소개팅 상대의 프로필 사진을 장르적 특성을 바탕으로 독해하고, 오리지널리티를 발굴해가며 ‘이 사람은 이런 성향일 거야’라고 판단하고 추측하는 나의 모습은, 현대미술 작품 앞에서 작가의 의도를 추측하던 모습과 꽤 닮았다.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쓴 오자키 테츠야는 현대미술의 3요소를 ‘임팩트, 콘셉트, 레이어’라 정리했는데 이들 요소는 프사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에 딱 알맞다. 프사각을 만족하는 이미지 역시 명확한 ‘콘셉트’ 기획, 그 콘셉트를 효과적으로 드러낼 ‘임팩트’, 시의적이며 개인적인 ‘레이어’가 내포되어 있다.
만약 우리의 프로필 사진이 현대미술과 좀 더 공통점을 넓혀가는 방식으로 발전한다면 어떨까? 인증과 표현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프사각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말이다. 피카소가 인물을 정확히 묘사하는 걸 목표하던 기존 자화상의 작법을 완전히 깨부수고 내적 갈등이나 복잡한 감정까지 고스란히 담아내며 새로운 자화상의 틀을 개척했던 것처럼 프로필 사진계에도 유쾌한 혁명이 일어날 수 있을까? ‘잘 나왔거나 그럴듯하거나’를 전시 목표로 삼지 않는 새로운 프사각이 존재할 수 있을까? 있어 보이지도, 더 나아 보이지도 않는 ‘나’를 통해 ‘임팩트 있는’ 프사각을 세울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최선의 프사는 ‘강아지 사진’인 것만 같지만, 나보다 더 위대한 혁명가가 그 각을 열어준다면 난 기꺼이 따라보고 싶다.
2015년부터 빅데이터로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를 분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넥스트밸류>(공저), <말의 트렌드>(2022)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