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20대들 사이에선 ‘우정 불황’이란 말이 유행이다. 2020년대 초반 북미에서 유행하던 ‘프렌드 리세션(friend recession)’과 유사한 개념으로, 실질적으로 교류하는 친구 수가 줄어드는 현상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팔로어 수와 유튜브 구독 채널은 늘어도 정작 실생활에의 ‘관계’는 기피하게 되는 우정 불황은 전 세계적으로 외로운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통계와도 이어진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연결’되지만 정작 ‘관계’는 불황이라는 지금, 우리 시대의 ‘관계’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세 가구 중 한 가구가 1인 가구이며, 출생률은 전 세계 꼴찌인 대한민국 통계는 우리 사회의 ‘관계’ 역시 위기를 마주했음을 암시한다. 허나 관계에 위기는 있어도 소멸은 아직이다. 달라진 시대에 맞춰 새로운 관계와 그에 걸맞은 관계의 언어가 생겨난다. 온라인 소통만으로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관계의 유연함은 ‘인친’(인스타친구)으로, 관계의 대상이 사람에 한정되지 않는 관계의 무경계성은 ‘애착 인형’으로, 관계의 위계가 달라졌음은 ‘식집사’(식물을 모시는 사람)로 드러난다. 다양한 관계의 양식이 새로이 등장하고 자리 잡았지만 지금 우리가 주목할 관계는 언뜻 전혀 새로울 것 없어 보이는 ‘엄빠랑’이다. 1인 가구가 주류고 더 이상 가족을 원하지 않는 시대지만 ‘가족’은 여전히 관계의 중심이다. 혼자 살아도 결혼을 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가족’은 있다. 그 폭넓은 공감대 때문인지 틱톡의 2024년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가족 콘텐츠’가 가장 많이 증가했다고 한다.
‘엄빠랑’의 주요 화자는 잘파세대(Z세대+알파세대)다. 그들의 일상이 궁금하다면 SNS상에 ‘엄빠랑’을 검색해보라. ‘엄빠랑’은 ‘부모님 모시고’와는 사뭇 다르다. 요즘 ‘엄빠’는 세대 구분으로는 X세대~초기 밀레니얼세대로 과거 찐하게 좋아해 본 아이돌, 게임, 애니메이션이 존재하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의 태동과 성장을 목격하며 디지털 콘텐츠의 문법과 뉘앙스를 체득한 이들이다. 이 때문에 자녀와 관심사와 취향을 두루 공유한다. 이들은 주말이면 ‘힙’한 카페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아이돌 팝업스토어를 함께 가는 ‘덕질메이트’로서의 부모다. 오픈 서베이의 한 조사에 따르면 ‘나는 부모님과 잘 통한다고 생각한다’는 질문에 밀레니얼의 37%가 그렇다고 응답한 반면 Z세대의 56%가 그렇다고 답했다. 게다가 ‘부모님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대답한 밀레니얼이 55%인데 반해 Z세대의 비중이 10%로 낮은 것 역시 ‘엄빠랑’의 관계가 전과 다름을 시사한다.
‘가족’. 이 고전적이고 원시적 관계가 지금 두 세대를 잇는 관계의 언어로 떠오르는 이유는 관계의 가장 기초적 순기능인 ‘함께’와 ‘공감’ 때문이다. 새로운 관계의 언어들이 많이 등장했고 사람들은 동물, 식물 심지어 인형과도 유연하고 자유롭게 연결되지만 ‘함께’와 ‘공감’은 여전히 희소한 가치다. 그저 사소한 일상과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엄빠랑’에 ‘우정’이 깃든 것처럼 우리에겐 누군가와 ‘함께 공감’하는 순간이 너무나 필요하다. 함께 공감할 대상이 꼭 ‘엄빠’일 필요는 없다. 유튜브 속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잠시 끄고, 가까운 사람이랑 ‘함께’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공감’하면 좋겠다. 오월의 바람과 햇살은 함께 공감하기 딱 좋은 재료다. 계절을 찬양하는 사랑스러운 소란이 우리에게 우정 호황기를 불러와 주길 바란다.
2015년부터 빅데이터로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를 분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넥스트밸류>(공저), <말의 트렌드>(2022)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