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서 더 강하다…로테르담의 ‘꺾이지 않은 의지’를 닮은 차 ‘미니’

정우성

미리 만난 뉴 올 미니 일렉트릭

영국 태생의 자동차 브랜드 미니(MINI)가 최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뉴 올 미니 일렉트릭 라인업을 공개했다. 네덜란드는 유럽연합 내에서 전기차 충전기가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영국 태생의 자동차 브랜드 미니(MINI)가 최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뉴 올 미니 일렉트릭 라인업을 공개했다. 네덜란드는 유럽연합 내에서 전기차 충전기가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약 23시간 만에 호텔 앞에 내렸을 때 어디선가 물 냄새가 났다. 언뜻 둘러보니 거대하고 모던한 다리가 눈에 들어왔고, 몇층인지 한눈에 헤아리기도 어려운 유람선이 물 위에 떠 있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이제 막 로테르담에 내린 참. 하얗고 모던한 다리의 이름은 ‘에라스무스’였다. 네덜란드 건축가 벤 판베르컬의 작품으로 1996년에 완공됐다. 거대하지만 위압적이지 않고, 날렵하고 모던한 형태의 현수교로, 이 세련된 도시의 첫인상을 정의하고 있었다. 그 모양이 백조를 닮아 ‘백조(De Ewaan)’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골목 어귀에서 뒤를 돌아보니 또 익숙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데 로테르담(De Rotterdam)이라는 이름의 웅장한 건물이 기하학적인 세 덩어리로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네덜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의 작품이었다. 사실상 시선이 닿는 곳마다 심상치 않았다. 산도 언덕도 없는 도시에 눈이 닿는 곳마다 멋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언뜻 봐도 무표정한 건물이 별로 없었다. 로테르담을 말할 때 “도시 전체가 현대 건축의 박물관”이라 부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서울에서도 렘 쿨하스의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태원 리움미술관과 서울대학교 미술관이 바로 렘 쿨하스의 작품이다.

하루 종일 도시 전체를 산책하면서 건물들만 둘러봐도 흥미진진했겠지만, 이번 일정은 도시 건축 관광이 아니었다. 영국 태생의 자동차 브랜드 미니(MINI)와의 일정이 앞으로의 며칠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미니는 미국과 유럽, 중국에서 다양한 분야의 인플루언서들을 로테르담으로 초청했다. 한국에도 곧 출시할 뉴 올 미니 일렉트릭 라인업들을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왜, 이곳 로테르담이었을까? 영국 DNA를 간직한 브랜드이니 영국 어딘가의 한적한 도시라도 좋았을 것이다. 지금은 BMW 소속 브랜드이니 뮌헨 어딘가에서의 드라이브라도 그 차의 성능을 가늠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이 일정의 깊은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로테르담이 어떤 도시인지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로테르담이 현대 건축의 살아 있는 박물관이 된 데에도 배경과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 중반 고유가 위기 대응해
연료 소모 줄이려 작게 만든 차체에
성인 네 사람 탈 수 있는 공간 확보
몬테카를로 랠리 3연패의 성능까지

‘위기’ 가운데 태어난 혁신의 아이콘
65년 만에 순수 전기차 라인업 꾸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새롭게 일어선
긍정과 창의의 도시에서 다시 선봬

1940년 5월. 전 유럽은 2차 세계대전의 폭염에 휩싸여 있었다. 로테르담도 예외가 아니었다. 5월14일 오후 4시20분은 로테르담 전체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독일 공군 소속 폭격기 90대가 무려 97t의 폭탄을 로테르담 도심에 집중 투하했다. 로테르담 전역이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다. 마침 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약 2.6㎢, 78만6500평의 토지가 수평으로 바뀌었다. 건물 2320동, 교회 24채, 학교 62채, 주택 2만4978채가 전소됐다. 884명이 죽고 7000여명이 다쳤다.

“로테르담은 멋진 건축의 도시입니다. 자전거의 도시이기도 하죠. 하지만 무엇보다 이 도시는 캔 두 스피릿(Can-do Spirit)의 도시입니다. 이런 점이 미니와 매우 잘 어울리죠.”

새로운 미니 패밀리를 공개하는 행사를 진행하던 MC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로테르담에서 느낄 수 있는 현대적, 창의적인 분위기의 배경에는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긍정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의미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의 상처를 극복해 온 로테르담의 역사가 바로 그 정신의 방증이었다. 로테르담은 좌절하지 않았다. 머무를 생각도 없었다. 오히려 새로워지기로 했다. 제로(0)가 된 도시 위에 매우 새롭고 참신한 도시를 재건하기로 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적극적인 도시 재건이 이뤄졌다. 1980년대부터는 시의회 주도로 건축 정책을 펼쳤다. 눈 닿는 곳마다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는 도시 분위기는 그렇게 조성된 것이었다. 융성하던 도시가, 갑자기 전쟁의 불길에 휩싸여 파괴된 후, 다시금 일어선 증거였던 것이다.

[정우성의 일상과 호사]작아서 더 강하다…로테르담의 ‘꺾이지 않은 의지’를 닮은 차 ‘미니’

미니가 태어나던 당시의 영국 분위기도 전쟁과 깊은 연을 맺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영국 경제는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상태였다. 이후의 노력은 회복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1956년 10월, 또 하나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해 7월 쿠데타로 집권한 이집트 나세르 대통령이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한 것이었다. 수에즈 운하는 유럽으로 통하는 석유가 통과하는, 유럽 교역의 핵심 항로이기도 했다. 이곳이 막히자 석유값이 급등했다. 영국 경제는 또다시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영국 서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진 것이었다.

미니는 이런 시국에 등장했던 자동차였다. 일단 차체 크기를 최소한으로 했다. 그래야 기름을 적게 쓰니까. 그러면서도 성인 네 사람이 타고 가까운 교외로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정도의 공간도 필요했다. 그 공간 안에 영국 사람들의 여가와 라이프스타일을 담고 싶었던 것이다. 이 불가능한 미션을 현실화한 사람이 바로 ‘미니의 아버지’ 앨릭 이시고니스경이었다. 이때가 1959년이었다. 인기도 대단했다. 가히 문화적 혁명이었다. 뭣보다 가장 작고 경제적으로 설계한 차가 귀엽고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영국 디자이너 메리 퀀트는 앨릭 이시고니스의 미니에서 영감을 받아 미니스커트를 디자인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미니스커트의 모티프가 바로 미니였던 셈이다.

미니는 작지만 당차게 달릴 줄 아는 실력파이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3년 연속 우승했다. 이제 미니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작지만 아름답고 강력한 주행성능까지 지닌 시대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폴 매카트니, 데이비드 보위 등 셀러브리티의 맹목적인 사랑을 받았던 자동차이기도 했다. 영국 코미디 시리즈 <미스터 빈>에서의 미니는 빠질 수 없는 코미디와 창의성의 모티프이기도 했다. 세상에 이런 자동차가 또 있을까?

세상 모든 도시에 각자의 역사가 있는 것처럼, 어떤 자동차에서는 자동차 이상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로테르담은 폭격의 폐허에서 현대 건축의 전시장으로의 도시 재건에 성공했다. 미니는 전쟁의 상흔과 경제적 어려움을 가장 사랑스러운 방식으로 타개한 자동차였다.

뭣보다 중요한 건 그 이면의 정신 혹은 무드일 것이다. 좌절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새로워지려는 시도.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일상과 도시를 가꾸겠다는 의지. 다른 어떤 도시 혹은 자동차와도 다르게,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겠다는 강력한 개성과 자존감 같은 것들. 게다가 네덜란드는 유럽연합 내에서 전기차 충전기가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미니가 로테르담에서 새롭게 선보인 것도 뉴 올 미니 일렉트릭 패밀리였다. 그야말로 기술과 역사, 인문학과 마케팅이 만나 하나의 스토리로 완성되는 순간.

1959년에 태어난 미니가 2024년, 65년 만에 매혹적인 순수 전기차 라인업을 갖췄다. 1960년대에 몬테카를로 랠리를 호령하던 그 성능과 재미 그대로. 1959년에 그 담백하고 심플했던 디자인도 여전히 그대로다. 로테르담 시내, 미니를 어떤 항구에 만들어놓은 트랙에서 신나게 운전해본 결과…. 뉴 올 일렉트릭 미니 패밀리의 성능과 캐릭터 또한 만만치 않다. 여전히 재미있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감각을 잔뜩 품고 있다. 전기차 시대에 걸맞은 주행 느낌으로 다시 한번 새로워졌다.

자동차를 고르는 기준은 다양할 수 있지만, 한국이 유난히 좋아하는 기준 몇 가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조용하고 넓고 승차감이 좋아야 한다. 미니는 그런 차가 아니었다. 당찬 소리를 내고, 상대적으로 조그맣고, 승차감은 주행 성능에 걸맞게 단단했다. 완전히 새로워진 미니도 정확히 같은 맥락 위에 있다. 그 흐름 위에서 다시 한번 혁신한 것이다. 누군가에겐 여전히 어려운 선택지. 하지만 미니를 선망하고 아는 사람들에겐 거부할 수 없는 선물이 될 것이다. 뭣보다 미니는 약속한다. 전기차의 시대에도 미니는 변함없이 재미있을 거라고. 그러니 미니와 함께하는 매일의 일상이야말로 새롭고 창의적일 거라고.

■정우성

[정우성의 일상과 호사]작아서 더 강하다…로테르담의 ‘꺾이지 않은 의지’를 닮은 차 ‘미니’

유튜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더파크’ 대표, 작가, 요가 수련자. 에세이집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은 당신이 알려주었다> <단정한 실패> <산책처럼 가볍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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