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대림역에 붙은 독수리 초상화를 보다

이다|일러스트레이터

“저게 왜 저기에 있지?”

가끔 거기에 있으면 안 되는 것들을 전철역에서 발견한다. 아니, 꽤 자주다. 오늘도 발견했다. 멋지게 돋아난 하얀 깃털에 날카롭고 선명한 동공, 날렵하게 호선을 그리는 노란 부리. 더없이 잘생긴 독수리(엄밀히 말하면 흰머리수리)의 얼굴이 대림역 엘리베이터 상단에 붙어있다.

지하철에서 아이돌 생일 광고는 맨날 보지만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독수리 초상화가 붙어 있는 것은 처음 본다. 잘생긴 배우의 프로필 사진 같기도 하다(이 사진을 썼다면 당장 합격이다). 심지어 크기도 크다. A4용지 4장에 부분 인쇄해 코팅한 후 모자이크타일처럼 이어붙였다. 덕분에 독수리의 얼굴은 거의 가로 40㎝, 세로 60㎝에 육박하는 존재감을 뽐낸다.

[이다의 도시관찰일기](6) 대림역에 붙은 독수리 초상화를 보다

“이따 보고 지금은 가자, 이다야.”

내 친구 모호연은 이런 상황에 익숙하다. 나랑 같이 걸으면 20m를 똑바로 걷지 못한다. 내가 자꾸 “뭐지?”하면서 멈추고 이상한 걸 찾아내기 때문이다. (불쌍한 녀석!) 오늘도 친구들과 양꼬치를 먹으러 대림역에 온 건데, 산만한 이다가 웬 독수리 증명사진에 꽂혀 약속 시간에 늦게 생겼다. 이럴 때 목덜미를 잡아끄는 것이 모호연의 역할이다.

다행히 약속에 늦지 않았고 친구들과 맛있게 양꼬치를 먹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아직도 역에 붙은 독수리 사진이 떠돌고 있다. 테이블 아래로 몰래 검색해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는다. (검색어: 대림역 독수리 사진)

모임을 끝내고 대림역으로 다시 왔다. 이번엔 반대쪽 엘리베이터에 가봤다. 그곳엔 하늘을 나는 독수리 사진과 부엉이 사진이 붙어있다. 이들도 A4용지 4장에 인쇄해 커다랗게 붙어있다. 엘리베이터 상단에 붙어있어 사람들에게 흔히 보이는 위치도 아니다. 누굴 보라고 여기에 이걸 붙인 걸까?

대체 뭐지? 내가 모르는 무슨 미신인가? 음양의 조화를 맞춰야 한다거나 그런 건가? 아니면 대림역장의 취미생활인가? 아니면 대림역에서 일하는 누군가가 새 ‘덕후’인가? 아니면 여기서 독수리가 열차에 치여 죽은 적이 있어서 추모하는 의미로? 별별 생각을 다 해본다. 오랜만에 도시의 미스터리를 마주하자 아드레날린이 펑펑 솟구친다.

진짜 궁금하다. 너무너무 궁금하다. 하지만 인터넷에 올리지 않았다. 혹시나 인터넷에 올렸다가 뭔가 문제가 되어 사진이 철거당할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이미 나는 혼자서 ‘역에서 일하는 누군가의 탐조 취미생활 및 자기가 찍은 새 사진 자랑’으로 결론을 낸 상태였다.

그러다 6개월 후, 트위터에서 낯익은 장면을 봤다. 합정역 1번 출구로 들어가는 계단참 상단에 독수리 증명사진이 또 붙어있었다. 내가 대림역에서 본 건 측면 사진이었는데, 이번엔 정면 사진이다. 그야말로 ‘지켜보고 있다’ 그 자체다. 해당 트윗은 벌써 5000번 넘게 리트윗됐다. 인용 창을 열어보자 수많은 사람의 트윗이 보인다.

“저 독수리 사진 뭐임.” “저거 독수리 아니고 흰머리수리인데요.” “미국하고 연관 있는 거 아님?” 그중 드디어 눈에 띄는 답을 발견했다. “아마도 비둘기 쫓으려고 붙인 것 같음.”

딩동댕!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갔다. 지하철역에는 비둘기가 들어오는 일이 많다. 특히 지상에 있는 전철역은 비둘기가 거의 살다시피 한다. 비둘기가 승객들과 같이 승강장에 우뚝 서 있다가, 객차에 뚜벅뚜벅 걸어서 탔다는 도시 전설이 있을 정도다.

비둘기들은 대부분 맹금류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매나 독수리, 부엉이 같은 맹금류 사진을 붙이면 비둘기가 퇴치될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음, 역신을 쫓기 위해 처용의 초상화를 붙이던 신라 사람들 마음이 이런 걸까?

‘이런 걸로 퇴치가 되겠냐!’라고 생각했지만 이 방법은 제법 유명한 모양이었다. 검색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독수리 사진을 공유하고 프린트해서 붙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외국에는 독수리나 부엉이 모형을 비둘기 퇴치용으로 팔고 있다. 360도 회전을 하고 눈에 불이 켜지고 심지어 울음소리까지 낸다고 한다.(약간 갖고 싶다)

비둘기는 어디에나 있다. 광화문 처마 위에도, 불광천 다리 밑에도, 응암역 골목길에도, 구청 건물 창문에도,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도. 게다가 한 번에 몇십마리씩 떼를 지어 다닌다. 밖에 나가면 매일 비둘기를 100마리 넘게 보게 된다. 약간의 자리만 있으면 비둘기는 어디나 둥지를 틀 수 있다. 그래서 마릿수도 많다. 비슷한 유명세를 가진 까치가 매해 지붕과 출입구까지 갖춘 번듯한 둥지를 짓는 것과 달리 비둘기 둥지는 둥지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나뭇가지를 몇개 올리고 그 위에 바로 알을 낳는다. 특히 좋아하는 곳이 아파트 에어컨 실외기와 건물 처마 밑이라 사람들을 곤란하게 한다. 귀소본능이 강한 비둘기는 한번 둥지를 틀면 그 자리를 대대손손 기억하기 때문에 아무리 쫓아내도 소용이 없다.

강인한 생존력과 지독한 번식력,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정이 합쳐져 비둘기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새가 됐다. 까치나 참새도 도시에 많이 살지만 대접이 다르다. 신분으로 따지면 비둘기는 최하층 천민이다.

사람들은 길에 비둘기가 걸어가면 마치 쥐를 본 것처럼 혐오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깜짝 놀라 길을 돌아가거나, 욕을 하며 발을 구르는 사람들도 있다.

웬만한 동물은 다 좋아하는 나조차도 비둘기는 그리 호감이 들지 않는다. 슬쩍 보기에도 더러워 보이는 깃털은 색깔도 우중충한 회색인 데다 대부분 도시 공기에 때가 타서 거무튀튀하다. 한마디로 땟국물이 줄줄 흐른다. 그런 와중에도 눈은 짙은 빨간색인 것이 조금 무섭다. 이렇게 비둘기에게 호감이 없으니 아무리 호기심 천국인 나라도 관찰을 할 리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비둘기 두 마리가 내 앞에 나타났다. 정말 추운 겨울날이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덜덜 떨며 버스를 기다리는데, 바닥에 누군가 떨어뜨린 만두 반쪽이 있었다. 아마 만두를 포장해 집에 가는 길에 한 개를 주섬주섬 꺼내먹다 흘린 모양이다. 1분도 안 되어 비둘기 두 마리가 날아오더니 바로 만두를 부리로 공격했다.

아니, 저게 먹을 거로 보이나? 꽝꽝 얼어 돌멩이랑 별 차이도 없어 보이는데 신기하게 먹을 거라고 알아본 모양이다. 심지어 김치만두인데….

[이다의 도시관찰일기](6) 대림역에 붙은 독수리 초상화를 보다

자꾸 보아야 궁금하다 비둘기도 그렇다

지저분한 이미지 ‘비호감’ 낙인…지하철역선 출입 막으려 맹금류 사진 부착
추운 겨울 만두 쪼아먹는 두 마리 지켜보다 정들었는데…
다 똑같이 보이던 존재가 개체마다 달라보이게 되는 ‘관찰’의 힘

비둘기 두 마리는 부리로 힘들게 만두를 쪼아먹기 시작했다. 협동이란 것은 없고 경쟁뿐이다. 평범한 인간의 생각으로는 한 마리가 발로 잡고 다른 한 마리가 쪼면 될 것 같은데, 서로 쪼려고 하다가 상대방 머리에 ‘빵꾸’를 내질 않나, 아스팔트 바닥에 부리를 박질 않나, 심지어 부리에 찍힌 만두가 공중에서 한 바퀴 멋지게 돌아 착지하는 모습엔 헛웃음까지 나왔다.

그런데 계속 관찰을 해보니 신기하게도 두 마리의 행동이 달랐다.

회색 비둘기는 ‘나는 쫀다’가 머리에 입력된 기계처럼 마냥 쪼기만 했다. 그런데 검은 비둘기는 그냥 쪼는 게 아니라 상황을 보며 쪼았다. 회색 비둘기가 무작정 힘차게 만두를 쪼아 방향이 불편하게 바뀌자, 검은 비둘기가 부리로 만두의 방향을 조절했다. 게다가 회색 비둘기가 먹지 못하게 자기 쪽으로 조금씩 만두를 이동시키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영민한 검은 비둘기가 만두를 다 차지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검은 비둘기가 만두를 효과적으로 쫄 때마다 안에 든 김치며 돼지고기 간 것이 조금씩 튀어나왔고 회색 비둘기는 그것을 부지런히 주워 먹었다. 둘은 기어코 물 한 모금도 없이 김치만두 반쪽을 완전하게 먹어 치웠다.

그 모습을 보자 이상하게 약간의 정이 생겼다. 둘은 이제 그냥 비둘기가 아니라 단순하고 포기를 모르는 회색 비둘기와 영민하지만 실속 없는 검은 비둘기라는 캐릭터로 인식됐다. 그러자 길가에 있는 다른 비둘기들과 달라 보였다. 에피소드가 생기자 앞으로 둘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둘은 계속 같이 다닐까, 아니면 제 갈 길을 갈까?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이는 것도 궁금해하다 보면 어느새 애정이 생긴다. 이상한 일이다. 있는 그대로 관찰만 했을 뿐인데 예전과는 다르게 보인다. 개성이라고는 없이 다 똑같이 보이던 비둘기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비둘기 입장에선 억울할 것이다. 모든 개체가 다 더럽고 병균투성이인 것도 아닌데 비둘기라면 그저 더럽다는 편견을 안고 본다. 만약 나를 그냥 ‘한국 사람’으로 뭉뚱그려 본다면, 또는 ‘여자들이란 다 그렇지’ 하며 일반화한다면 당연히 기분 좋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개별적인 존재다. 만두를 무작정 쪼고 보는 회색 비둘기와 자기 쪽으로 몰아서 쪼는 검은 비둘기가 다른 것처럼.

둘에게 남모르게 이름을 지어봤다. 회색 비둘기는 몽롱이, 검은 비둘기는 똑실이다. 몽롱이와 똑실이를 다음에 다시 보게 될까? 보게 된다면 그때는 지금과 다를 것이다. 그냥 비둘기에서 ‘내가 아는 비둘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다의 도시관찰일기](6) 대림역에 붙은 독수리 초상화를 보다

▶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저서로는 <이다의 자연관찰일기> <내 손으로 치앙마이><걸스토크> 등이 있다. 그림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는 것이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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