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전문의 김희진 교수가 전하는 ‘젊은 뇌’ 비결은?

이유진 기자
책 <느리게 나이 드는 기억력의 비밀>의 저자이자 한양대학교병원 치매 전문의 김희진 교수는 기억력은 좋은 습관과 삶에 대한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강조한다. 권도현 기자

책 <느리게 나이 드는 기억력의 비밀>의 저자이자 한양대학교병원 치매 전문의 김희진 교수는 기억력은 좋은 습관과 삶에 대한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강조한다. 권도현 기자

백세 시대.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한 신체와 온전한 정신으로 사는 ‘슈퍼에이저’의 삶이 중요한 때다. 슈퍼에이저란 신체 나이보다 20~30년 젊은 뇌를 가진 사람들로 기억력과 인지능력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느리게 나이 드는 기억력의 비밀>의 저자이자 치매 전문의 김희진 교수는 기억력은 좋은 습관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슈퍼에이저로 가는 길, 그의 가방 속에 답이 있지 않을까?

■“내 삶은 실패의 역사”

김희진 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의 집무실을 방문했다. 한 성악가 출신 가수의 앨범이 가득 쌓였다. 그의 심상치 않은 ‘덕질’은 그의 고등학생 시절 이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국어고등학교 재학 시절 음악 선생님의 권유로 성악을 시작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치명적인 문제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신을 ‘실패 역사의 산물’이라고 소개하는 이유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성악으로 방향을 튼 후 6개월이 지났는데 습관성 턱관절 탈구가 생긴 거예요.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된 거죠. 2년간 마음이 붕 떠서 방황하다 결국 입시도 망쳐버렸죠.”

김 교수는 재수 끝에 생물학과에 입학했다가 결국 다시 공부를 시작해 의대로 편입학했다. 남들보다 조금 늦었지만 차곡차곡 수련 과정을 밟아 신경과 전문의가 됐다.

“제가 전공을 생각할 당시에는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가 인기였어요. 저는 산부인과를 지원했는데 떨어졌죠. 그러다 임상교수 시절 교수님의 권유로 신경과를 전공하게 된 거예요. 지금 보면 백세 시대 딱 맞는 전공을 찾았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냥 실패로 비롯된 결과라고 봐도 무방해요.”

김희진 교수는 치매를 예방하는 여러 가지 생활 습관 중 단 하나만 꼽아달라는 질문에 ‘걷기’라고 답했다. 그도 하루에 최소 1만4천 보 걷기를 실천한다. 잘 걸어야 질 좋은 수면도 취할 수 있다. 권도현 기자

김희진 교수는 치매를 예방하는 여러 가지 생활 습관 중 단 하나만 꼽아달라는 질문에 ‘걷기’라고 답했다. 그도 하루에 최소 1만4천 보 걷기를 실천한다. 잘 걸어야 질 좋은 수면도 취할 수 있다. 권도현 기자

실패의 산물이 아닌, 실패해도 다시 힘을 낸 최선의 산물이 지금의 치매 전문가 김희진을 만든 것이다. 치매 역시 그렇다. 과거의 트라우마에 연연해 부정적인 생각에 지배되는 것은 뇌 건강에 결코 좋지 않다.

“치매로 의심되는 80대 어르신이 오시면 꼭 여쭤보는 것이 있어요. 어린 시절 기억이에요. 가정환경은 어땠는지, 잘 못 먹거나 못 배우거나 환경적 어려움은 없었는지에 관한 질문이죠. 12세 이전의 트라우마는 뇌 건강에 큰 영향을 줍니다. 그럴 때마다 말씀드리는 것이 과거는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니 나쁜 생각은 빨리 잊고 극복하는 것이 뇌 건강에 좋다는 거예요.”

김 교수는 우연히 선택한 전공이지만 치매 전문의가 적성에 딱 맞는다고 말한다. 환자에게 정성을 기울이면 환자가 화답해준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 대소변을 스스로 가리지 못하는 중증 알츠하이머 환자라도 치료를 꾸준히 받으면 10명 중 8명은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호전된다고 그는 말한다. 김 교수 본인도 치매 환자를 치료하면서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시간은 모든 사람 앞에서 평등하다는 걸 절실히 느껴요. 결국 나이가 들면 너나 나나 다 똑같아지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잖아요. ‘작은 일에 슬퍼하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뇌 건강을 망칠 뿐이에요.”

누구나 노화에서 노쇠를 겪기 마련이다. 특히 노쇠의 대표 질병인 치매는 노년에게는 입 밖으로 낼 수 없을 정도로 두려운 존재다. 김 교수는 ‘되돌릴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건강 적신호를 자각했을 때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몸은 언제든 회복해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어요. 빨리 진단받고 치료하는 것이 그 기회입니다.”

김 교수는 생활 속 걸음 수를 늘리기위해 자가용도 처분했다. 그만큼 가지고 다니는 짐도 많아져 ‘보부상’ 생활 중이다. 권도현 기자

김 교수는 생활 속 걸음 수를 늘리기위해 자가용도 처분했다. 그만큼 가지고 다니는 짐도 많아져 ‘보부상’ 생활 중이다. 권도현 기자

■‘치매 전문가’ 김 교수의 가방 속은?

김 교수는 치매를 예방하는 여러 가지 생활 습관 중 단 하나를 꼽으라면 ‘걷기’라고 단언했다. 노화 방지를 위한 운동은 집중적인 고강도 운동이 아닌 ‘하루 30분 걷기’라고 말했다.

“2000년대 이후 여러 연구를 통해 운동이 인지력을 높이고 알츠하이머병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운동이 뉴런의 수를 많이 늘려서 그 결과로 똑똑해진다는 거죠.”

그는 하루 1만4000보에서 2만보를 걷도록 노력한다. 걷기 위해 차도 없앴다. 보조배터리에 모기약, 왕빗까지… 만만치 않게 많은 소지품을 갖고 다니는 보부상이지만 걷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대중교통만 이용해도 하루 8000보에서 1만보는 걸어요.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저녁 6~7시쯤 밖에 나가 채우죠. 뇌 건강에 운동만큼 중요한 것이 수면이거든요. 운동해야 또 푹 잘 수 있어요. 잠을 푹 자야 뇌도 쉬면서 기억이 저장되고 노폐물 배출도 원활해지니까요.”

질 좋은 수면을 위해 커피를 하루 한 잔으로 줄이고 대신 물이나 카페인 없는 차를 자주 마신다. 수면의 질과 운동량을 매일 점검해주는 스마트링(반지)도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이다.

“제가 (스마트링을) 써보니까 수면 단계를 감지하는 데 최적화됐더라고요. 운동량, 심장 박동의 불균형성도 알 수 있어서 뇌 건강에 관련된 신체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늘 사용해요. 많은 분이 스마트워치를 쓰긴 하지만 아무래도 밴드를 손목에 차고 자는 건 불편하니까요.”

한양대학교병원 기획조정실장과 성동구치매안심센터 센터장을 역임 중인 김희진 교수. 일부러 걷지 않아도 하루 2만 보 걷기는 기본이다. 권도현 기자

한양대학교병원 기획조정실장과 성동구치매안심센터 센터장을 역임 중인 김희진 교수. 일부러 걷지 않아도 하루 2만 보 걷기는 기본이다. 권도현 기자

오전 6시30분에 출근해 회진으로 하루를 시작할 정도로 활동량이 많은 김 교수는 가끔 몸이 처진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스마트링이 감지한 어제의 일상을 돌아본다. 원인은 모두 그 안에 담겨 있다.

“걸음 수가 적었거나, 유튜브를 많이 봐서 스크린 노출량이 많거나… 몸이 처지는 것에는 이유가 있어요. 그럴 때는 다이어리에 간단하게 전날에 대한 반성을 쓰고 내일의 건강을 위해 오늘을 다져요.”

새로 운동을 시작하거나 갑자기 식단을 바꾸는 것은 낯설고 어려운 일이다. 그는 “오늘은 새로운 일이겠지만 그것이 열흘까지 이어지면 습관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 몸은 상상 이상으로 회복력이 뛰어나고 뇌는 변화에 대한 가소성이 크다는 것.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부터 시작하자고 그가 강조하는 이유다.

“운동선수들이 실전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반복한다고 하잖아요?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의 뇌를 FMRI(기능자기공명영상)로 찍어보면 그 순간에는 뇌가 엄청나게 활성화되거든요. 긍정적인 생각은 곧 건강한 습관으로 이어지고 좋은 습관은 바로 슈퍼에이저가 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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