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뭔가 찾는다면 나부터 돌아보세요

정우성
[정우성의 일상과 호사]나만의 뭔가 찾는다면 나부터 돌아보세요

약 15명의 사람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만의 취향을 찾는 법’이라는 강연을 듣기 위해서였다. 강연자는 좀 머쓱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오늘 무슨 얘기를 듣고 싶어서 오셨어요? 취향이라는 걸 왜 찾고 싶으세요? 딱히 방법이 있는 건 아닌데.”

강연자도 늘 고민이었다. 취향이 뭘까. 날카롭고 고급한 취향을 다루는 것으로 정평이 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에서 10년을 넘게 일했어도, ‘취향’이라는 말에는 어쩐지 신비하고 불확실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객석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있었다.

8월 중순 즈음, 스타필드 수원 4층 스템커피에서 열린 작은 강연에 강연자로 참여했던 어느 날의 이야기다. 그날 주제가 바로 취향이었다. 시작할 땐 안갯속에 있는 것 같았는데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은 후 돌아오는 길에는 어떤 확신을 갖게 되었다. 취향을 찾고 싶어서 강연장을 찾은 사람들은 이미 자기만의 멋진 취향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완성된 취향이 아니라) 나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거라는 진리까지를.

사람들이 궁금해했던 건 취향의 역사와 근원을 파고드는 인문학이 아니었다.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처음으로 정립한 사람이 그 유명한 심리학자 알프레트 아들러였다거나, 산업혁명 이전에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말의 개념 자체가 희미했다는 건 이제 와서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았다. 방점은 조금 더 실용적인 관점에 찍혀 있었다. 좋아하는 자동차가 생겨서 기분이 너무 좋다거나 어떤 물건을 어떻게 사야 하는지 알고 싶다는 말. 그것이 나를 상징하는 물건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어떻게 가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취향이라는 이름의 망망대해. 작은 나침반 하나 정도가 필요한 상황이었을까. 최근 포르쉐에 빠졌다는 한 참가자가 물었다.

포르쉐 홈페이지의 ‘나만의 포르쉐 만들기’ 프로그램 이미지. 포르쉐 제공

포르쉐 홈페이지의 ‘나만의 포르쉐 만들기’ 프로그램 이미지. 포르쉐 제공

“홈페이지에서 ‘나만의 포르쉐 만들기’를 해보는 시간에 완전 빠졌어요. 정말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어떡하죠? 괜찮은 걸까요?”

“정말 훌륭한 시간을 보내고 계시네요”라고 말했다. 포르쉐는 ‘만인의 드림카’로 불리는 독일 스포츠카 브랜드다. 트랙을 지배할 수 있는 실력과 전통을 가졌으면서 일상에서도 탈 수 있는 몇 안 되는 스포츠카이기도 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는 드림카지만, 특히 중년의 우울 같은 정서적 위기를 치유하는 데는 포르쉐만 한 게 없다는 우스개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될 정도다. 그런 브랜드를 좋아하고 꿈꾸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브랜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특정 모델을 골라 보디 스타일이나 최고 출력, 구동 방식 등의 필터링을 적용해 마음대로 꾸며볼 수 있는 페이지가 있다.

“괜찮은 걸까요?”라고 물었던 이유는 역시 가격일 것이다. 모델에 따라 2억원을 훌쩍 넘어간다. 옵션은 또 얼마나 많고 예쁜지. 취향에 따라 넣고 빼고 하다 보면 한계 없이 치솟기도 한다. 누구나 꿈꿀 수 있지만 아무나 가질 수는 없다. 여기서 또 한 번 묻고 싶어졌다. 집 한 채 값의 자동차를 꿈꾸는 게 죄가 되나? 열심히 살아서 포르쉐 한 대를 통해 언젠가 꿈을 이루는 일이 나쁜가? 그게 사치일까?

즐겨찾은 안경에서, 삶의 태도에서
취향은 여행처럼 경계가 없지만
수많은 고민·선택이 쌓여 만들어져
결국 나를 살필 때 찾을 수 있어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반드시 큰돈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나만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목돈을 쓰는 일에는 왜 나도 모르게 인색해지는 걸까? 자동차 시장에서 취향을 찾는 일은 그래서 어렵다. 가성비, 주변 시선, 합리성 같은 걸 따지다 보면 결국 가장 잘 팔리는 흰색 차를 고르게 된다. 베스트셀러에는 늘 합당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지만, 그럴수록 어쩐지 ‘나만의 취향’으로부터는 멀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한 대의 차’를 사는 데에도 작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세상에서 보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브랜드를 하나 갖게 되었다는 건 얼마나 설레는 일일까?

“그냥 즐거운 것 같아요. 벌써 100대는 넘게 만들어본 것 같아요. 스트레스도 풀리고.”

좋은 취향은 이런 역할을 한다. 삶의 활력이자 목표가 된다. 탐구하고 고민하는 동안 벼려진다. 결국 나만의 뭔가를 갖게 된다는 뜻이다. 그럼 다음 질문.

“다른 사람들이 저를 떠올렸을 때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물건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혹시 그런 물건이 있으신가요? 어떻게 하면 그런 물건을 찾을 수 있을까요?”

두 가지 물건이 떠올랐다. 4년째 소유 중인 미니쿠퍼 S 컨버터블과 11년째 쓰고 있는 안경 브랜드 모스콧의 대표 모델 렘토시. 일단 미니쿠퍼 S 컨버터블은 몇 가지 취향의 허들을 넘어야 가까스로 선택할 수 있다. 마이너의 마이너랄까. SUV도 아니고 세단도 아니다. 1959년, 중동전쟁으로 인한 고유가 시대를 타개하기 위해 영국에서 만든 차. 당시 ‘성인 네 명이 타고 여행할 수 있는 크기’를 목표로 디자인한 철학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왔다 해도 넉넉하지는 않다. ‘거거익선’이 지배하는 한국 자동차 시장에선 참 어려운 모델. 게다가 지붕을 열 수 있는 컨버터블이다. 하나하나 쉽지 않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니를 좋아하는 사람도 존재하는 법. 그게 미니의 매력이다. 두루두루 만족시키기보다 하나에 꽂히는 매력의 차라는 뜻이다.

취향에 반드시 큰돈이 필요한 건 아니다. 고민하는 사이에 벼려지고, 탐구하며 진화하는 동안 취향은 ‘나’와 가까운 맥락을 찾기 시작한다.

모스콧의 제품 이미지. 모스콧 제공

모스콧의 제품 이미지. 모스콧 제공

모스콧은 1915년에 뉴욕에서 시작해 대를 이어온 안경 브랜드다. 렘토시 모델은 영화배우 조니 뎁이 즐겨 쓰는 안경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다양한 사이즈로 보다 친절하게 얼굴형에 맞춰 쓸 수 있는 이 안경을 참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사랑해서 이제는 완연한 클래식이 되기도 했다. 이 안경을 (잃어버린 것까지 더하면) 네 개나 갖고 있었다. 가장 오래된 건 벌써 10년 이상이나 내 얼굴과 함께했다.

이런 설명을 열심히 받아 적는 질문자는 동그랗고 얇은 금속 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얼굴형에 맞춤으로 어울렸는데, 다른 도시에서 갑자기 만나는 경우에도 그 안경 하나로 기억할 만한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 분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미 가진 게 아니었을까?’ 생각할 때 세 번째 질문을 받았다.

“회사에서 책상을 참 예쁘게 꾸미고 쓰는 동료들을 보다가 제 책상을 보면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깨끗하다고 해야 하나 썰렁하다고 해야 하나. 저는 취향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 그래요? 깔끔한 취향을 갖고 계신 게 아니라?”

질문자가 어딘가 불이 켜진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감사합니다.”

너무 비싼 자동차와 사랑에 빠진 사람은 조금의부담이 있었지만 그 즐거움을 충분히 누리고 있었다. 좋은 취향으로 나만의 물건을 찾고 싶은 사람의 얼굴에는 이미 멋진 안경이 걸려 있었다. 스스로 취향이 없는 것 같다던 그는 ‘깔끔함’이라는 단어 앞에서 답을 찾은 것 같았다. 나만의 취향을 찾는 방법을 구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이미 확고한 자기 취향의 단서를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혹시 인스타그램 같은 데 빠르게 올라오는 인플루언서의 완벽한 사진 한 장에 어느새 익숙해진 건 아닐까. 취향은 사진 한 장이 아니다. 흐르는 물, 고정되지 않는 라이프스타일에 가깝다. 좀처럼 완성되지 않는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사이에 벼려지고 진화하며 가까스로 ‘나’와 가까운 맥락을 조금씩 찾기 시작한다.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강연은 이런 말로 마무리했다.

“그래서 저는 취향을 찾는 건 결국 시시각각 나를 살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더 나은 선택을 하려고 애쓰고, 고민하고, 마침내 선택하는 그 모든 순간이 쌓여서 결국 취향이 되는 거 아닐까요.”

취향의 세계를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생각의 폭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계 없이 넓다는 점에서는 여행과 닮아 있다. 꾸준히 오래오래 가꾸다 보면 결국 나만의 뭔가를 찾게 된다는 점에서는 정원을 가꾸는 일과도 비슷할 것이다.

식물 하나를 심어 가꾸다 그와 어울리는 또 다른 식물을 정성스레 고르는 심정. 어딘가에 정성을 쏟을 줄 아는 일상은 쉽게 지치지 않는다. 삶을 가꾸고 지탱하는 힘. 어쩌면 그게 취향의 진짜 효용이자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정우성

[정우성의 일상과 호사]나만의 뭔가 찾는다면 나부터 돌아보세요

유튜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더파크’ 대표, 작가, 요가 수련자. 에세이집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은 당신이 알려주었다> <단정한 실패> <산책처럼 가볍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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