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미분양씨, 우린 어디 가서 살아요?

당신의 집은 친절합니까?

동영상 속 어느 남자가 아파트를 오른다. 조금 지루한 파쿠르(도시의 빌딩 사이를 뛰어 건너거나 아무 도구 없이 맨몸으로 기어오르는 등, 고난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신종 스포츠) 동영상이라고 생각하며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그 순간 남자의 눈동자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흔들리는 카메라 앵글이 남자의 눈동자를 비췄다. 간단한 등산 장비 하나에 몸을 맡겼지만 두려움 없이 곧은 눈빛이었다. 남자는 힘겹게 난간을 타고 어느 집으로 들어갔다. ‘누구를 위한 깜짝 쇼인가?’ 하는 생각도 잠깐, 집은 텅 비어 있다. 주방은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적 없는 듯 물기 하나 없이 말라있고, 화장실 변기에는 한 번도 내린 적 없는 물이 고여 있다.

출처 :  친절한 미분양 티저

출처 : 친절한 미분양 티저

‘왜?’라는 질문이 스쳤다. 텅 빈 아파트, 그리고 그 아파트를 오르는 남자. 도대체 이 둘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유일한 단서는 동영상의 배경이 경기도 군포시의 어느 LH 아파트라는 것과 친절한 미분양이라는 키워드뿐이었다. 작은 힌트라도 얻기 위해 열어본 댓글 창에는 ‘쉽겠네ㅋ 나도 하겠다ㅋ’, ‘재미ㄴㄴ’ 라는 댓글뿐이었다. 김이 팍 새는 댓글들을 보며 무심히 스크롤바를 내렸다. 처음의 궁금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특별한 놀람이나 여운 없이 아파트를 오르는 남자의 뒷모습은 잊혀졌다.

출처 : 친절한 미분양 티저

출처 : 친절한 미분양 티저

다시 ‘왜’라는 질문이 떠오른 것은 2월 22일, 친절한 미분양 1화가 공개된 날이었다. 페이스북 뉴스피드에 뜬 동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들어나 보자’라는 마음이었다. 일주일 만에 드러난 ‘친절한 미분양’ 실체에 웃음이 터졌다. 한국 사회의 가장 무거운 주제를 가장 가볍게, 그리고 가장 무식한 방법으로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집이 없으니 미분양을 찾아 나서겠다는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집이 없는 슬픔은 지방에서 올라와 1인 세입자가 된 동영상 속 주인공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평범한 소시민 대부분이 공유하는 아픔과 설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뉴스와 심야 토론 방송에 갇혀 있던 주거 문제를 발칙한 UCC로 가져 온 사람이 누구인지, 무슨 생각으로 내 집을 향한 기쁨과 슬픔을 왜 말해야 했는지, 왜 지금 시작했는지 궁금했다.

‘본격 청춘 다큐, 친절한 미분양’의 주인공인 이 모 씨(23)를 만난 것은 2월 25일 토요일 오전, 신촌의 작은 카페였다. 처음 인터뷰를 제안했을 때부터 익명을 써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시작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씨는 신비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니 양해해달라는 농담으로 대화를 시작했고 덕분에 인터뷰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출발하였다.

친절한 미분양씨, 우린 어디 가서 살아요?

-아파트를 오르던 동영상과 같은 차림이다.

인터뷰 후에 또 촬영이 있다. 등장하는 인물마다 하나의 콘셉트를 잡으려고 똑같은 옷을 입는다. 다큐 속 나는 악덕 주인 밑에서 일하는 소다. 주인이 시키면 아파트도 타고 천막도 친다.

-콘셉트를 잡고 이야기를 만들고 촬영, 편집까지 하는데 힘들지 않나? 이렇게 힘든 일은 무슨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

‘친절한 미분양’을 만드는 사람들 모두 평범한 대학생이다. 학점도 대충 챙겼고,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고 있으며, 인맥 관리를 위한 동아리 활동도 적당히, 그리고 취업을 위해 토플 공부와 인턴 활동까지 했다. 그때는 청춘의 패기가 있으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등록금과 주거비, 생활비는 청춘이니까 겪어야 하는 대가치고는 너무 컸다. 학업과 돈은 이중의 부담으로 다가왔고 내 꿈을 찾는다는 느낌보다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은 전세 가격이 올라 2년 동안 살았던 집에서 나와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다. 너무 막막해서 친구들에게 털어 놓았는데 그 친구들도 똑같은 상황이었다. 각자의 처지를 한탄하다가 한 친구가 주인 없는 집에 침낭 깔고 자면 누가 뭐라고 하겠나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농담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걸리면 어떡하나”, “전국에 그런 곳이 많으니까 하루에 한 곳씩 옮겨가면 돼지”로 발전했다. 이렇게 장난처럼 던진 말들이 모여 친절한 미분양이 탄생했다.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짜면서 친구들과 주거 문제를 공부하고 고민을 나누면서 ‘집’에 대한 고민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하면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주거 문제들을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심각한 이야기라도 즐거운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고민 끝에 지금의 다큐 형식이 나왔다.

-평소 20대 주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나?

자신만의 공간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세대를 가리지 않고 똑같을 것이다. 20대가 자신의 공간을 얻기 위해서는 등록금, 집안 사정, 생활비 등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살’ 공간을 기대했지만 지금은 자기만의 공간조차 없다. 노력한 만큼 삶의 공간의 보장받고 싶지만 집 값은 20대가 부담하기에 너무 비싸다.

이러한 고민의 출발은 고등학교 친구가 군대에 가고 난 후 시작되었다. 그 친구는 가정 형편 때문에 등록금, 주거비, 생활비 모두를 혼자 조달했다. 어느 날 새벽 갑자기 그 친구가 연락을 해 왔다. 친구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어진 아르바이트 때문에 너무 힘들고 자기도 다른 친구들처럼 대학 생활을 즐기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도와달라는 말도, 도와준다는 말도 못하고 헤어졌고 친구는 얼마 뒤 군에 입대했다. 그 후 개인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무력감에 시달리다가 문득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20대들이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기대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교 학생’이라는 공간, 신분적인 한계 때문에 이러한 고민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한정되어 있었다. 기존의 방법이 가지고 있던 대중성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시작한 것이 친절한 미분양이다. 다큐를 직접 찍고 있는 순간마다 그 친구가 생각난다. 친구가 군대에 갈 때 마음속으로 ‘친구가 전역하기 전까지 무언가 바꿔야 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막연한 다짐이었지만 다큐를 찍을 때마다 되뇌며 힘을 얻는다.

-현재 한국 사회의 주거 문제는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청년층 주거 문제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1인 가구 정책 부재라고 생각한다. 1인 가구에 대한 수요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지만 공급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감당할 만한 가격의 집을 찾지 못해 대학가에 남게 된다. 그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신입생은 계속 들어온다. 결국 엄청난 수요 때문에 최저 주거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집마저도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실태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통계상 110%의 주택 보급률을 자랑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거 문제는 도전, 침체, 상대적 박탈감, 희망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기이한 형태로 굴러가고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아이러니 속에 살고 있다.

-동영상이 나가고 나서 반응이 어땠나?

생각보다 반응이 적다. (웃음) 아직까지 알려질 수 있는 통로가 부족한 탓인 것 같다. 친절한 미분양이 부동산 업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재테크, 부동산 업체에서 친절한 미분양의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한 일도 있었다. 사람들이 주거 문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서 처음에는 공감을 얻기 힘든 것 같다. 동영상에 달린 댓글이나 SNS로 전해 듣는 반응을 보고서 집을 사는(buy) 곳에서 살(live) 곳으로 인식을 바꾸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동시에 주거 문제를 알리기 위해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어떤 기획이 있나?

친절한 미분양은 대학생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매 화별로 다른 세대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음은 20대의 자기 공간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점거한 집을 모텔로 바꿀 예정이다. 황금 유모차를 모는 30대라는 제목으로 30대의 문제도 이야기할 계획이니 기대해주길 바란다.

한국 사회에서는 단지 살기 위해 드는 비용도 ‘너무 비싸다.’ 전셋집 하나를 얻으려면 20년 동안 숨만 쉬며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모 개그맨의 말은 한국 사회의 주거 문제를 온 몸으로 느끼게 한다. 이제 막 가족의 품을 떠나 독립해 나가는 청춘들에게도 주거비용이란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존재다. 이런 상황에서 친절한 미분양은 직접 20대인 자신들과 사회의 주거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다. 친절한 미분양의 제작자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청춘의 이미지, 에라 모르겠다 일단 가보자’라는 날 것 그대로의 다큐로 표현했다. 제작자의 말처럼 지금 주거 문제가 지쳐있는 사회에 필요한 것은 날 것 그대로의 신선한 이야기들이 아닐까 생각해보며 이러한 시도들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황선주/인터넷 경향신문 대학생 기자(웹場 baram.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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