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도, 협찬도 아냐…우리는 ‘앰배서더’

이유진 기자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직접적이나 한정적인 활동을 하는 ‘광고 모델’보다는 다소 느슨한 관계로 여러 미디어 노출이 가능한 브랜드 ‘앰배서더’ 마케팅이 선호되고 있다. 각 브랜드 제공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직접적이나 한정적인 활동을 하는 ‘광고 모델’보다는 다소 느슨한 관계로 여러 미디어 노출이 가능한 브랜드 ‘앰배서더’ 마케팅이 선호되고 있다. 각 브랜드 제공

‘○○○, △△브랜드 앰배서더 발탁.’

메일함을 열 때마다 하루에도 수차례, ‘어떤 스타가 무슨 브랜드의 앰배서더로 선정됐다’는 내용의 보도자료 메일을 받는다. 주로 해외 패션업계, 스포츠 구단을 비롯한 특정 집단에서 쓰던 앰배서더(홍보대사)라는 용어가 이제 국내에서도 당연한 듯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때로는 광고 모델과 앰배서더의 개념이 혼재되어 사용되기도 하고 명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앰배서더만 있나, ‘아타셰’ ‘뮤즈’ 같은 더욱 생소한 용어도 눈에 띈다. ‘대사’를 뜻하는 외교용어는 어쩌다 패션용어가 됐을까.

앰배서더, 도대체 뭐죠?

“오늘은 하트 없습니다. 생로랑에서….”

지난달 16일 오전 공항 출국길 포토타임. 평소 일명 ‘K하트(손가락 하트) 자동 생성기’로 불릴 만큼 해당 포즈를 자주 취하던 그룹 세븐틴의 멤버 정한이 기자들의 하트 포즈 요구에 웬일인지 곤란한 표정으로 주뼛거렸다. 계속되는 ‘하트 요구’에 어딘가에서 “오늘은 하트가 없다”라는 묵직한 외침이 날아들었다.

해당 현장에서는 요즘 스타들의 포토타임 ‘디폴트 포즈’라고 할 수 있는 K하트가 금지됐다. 왜일까? 정한은 글로벌 브랜드 생로랑의 2023 FW(가을·겨울 시즌) 남성복 컬렉션에 초대받아 프랑스 파리로 출국하는 참이었다. 애교와 귀여움의 상징인 K하트는 차갑고 이지적인 감성을 내세운 생로랑 브랜드와 이미지가 부합하지 않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요즘 말하는 앰배서더를 설명하는 하나의 장면이다. 앰배서더는 브랜드의 ‘대표 소비자’로 그가 갖는 이미지와 분위기가 브랜드에 부합해야 한다.

데뷔 때부터 샤넬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는 블랙핑크 제니. 샤넬 제공

데뷔 때부터 샤넬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는 블랙핑크 제니. 샤넬 제공

전문 패션 홍보대행사 직원 A씨는 광고 모델과 앰배서더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광고 모델은 광고 캠페인에서 단 하나의 제품을 홍보하는 데 초점을 두지만, 홍보대사인 앰배서더는 브랜드의 이미지 자체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브랜드와 소비자 간 관계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제품 광고 모델은 한 명으로 한정되지만 앰배서더는 글로벌, 아시아·퍼시픽(태평양), 코리아(로컬) 등으로 세분화되어 여러 명이 선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글로벌 브랜드 셀린느의 경우 ‘셀린느 보이’ ‘셀린느 걸’이라는 명칭으로 여러 나라의 다양한 연예인, 인플루언서(해당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를 선정한다. 앰배서더에 선정되면 해당 브랜드의 의류를 착용하고, 화보를 찍고 브랜드 쇼에 참여한다. 그리고 이런 활동을 주로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노출하고 브랜드는 이를 자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며 알린다. 소위 협찬에 가깝지만 더 ‘높은’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앰배서더다. 광고 모델은 대개 단기 계약으로 광고 송출이 끝나면 종료되지만 앰배서더는 서로 이해관계가 맞는다면 장기 계약도 가능하다. 한 패션 잡지의 편집장 B씨는 글로벌 브랜드와 앰배서더가 홍보 계약을 맺는 것을 두고 이해관계가 맞은 브랜딩 효과라고 설명한다.

글로벌 브랜드 디올의 앰배서더를 맡고 있는 블랙핑크 지수. 디올에서 받은 선물을 SNS에 인증했다. SNS 캡처

글로벌 브랜드 디올의 앰배서더를 맡고 있는 블랙핑크 지수. 디올에서 받은 선물을 SNS에 인증했다. SNS 캡처

“‘인간 구찌’ ‘인간 샤넬’이라는 말이 유행이죠? 브랜드는 유명 앰배서더의 영향력을 이용해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앰배서더도 글로벌 하이엔드(최고급) 브랜드의 이미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다 보니 서로 상호이익 마케팅이 되는 거죠. 또 앰배서더 계약은 광고 모델 계약만큼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가지는 않거든요. 대신 앰배서더를 해외 이벤트나 쇼에 초청하고 협찬 개념으로 브랜드 제품을 제공하죠.”

이렇다 보니 앰배서더 계약은 광고 계약보다 조금 더 복잡하다. 제품 광고를 찍지 않지만 패션 매거진과 화보를 찍고, SNS 콘텐츠로 브랜드를 노출하는 정도에 따라 계약 양식이 달라진다. 개런티(출연료)의 금액은 해당 앰배서더의 활동 범위, 영향력, 인지도에 따라 각기 다르게 책정된다.

앰배서더보다는 프랑스어 표기인 ‘아타셰’를 써달라거나 ‘너무 커머셜하다(광고스럽다)’는 이유로 OOO 보이, OOO 걸 같은 브랜드 자체 용어를 만들어 사용해달라고 요청하는 곳도 있으나 유의미한 차이는 없어보인다. 또 ‘뮤즈’는 앰배서더나 아타셰보다 ‘상위 개념’이라 할 수 있는데 해당 제품을 디자인하는 과정부터 ‘뮤즈’에 해당하는 유명인을 두고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앰배서더, 아타셰, 뮤즈 그리고 모델까지 구별 없이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다.

추호정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는 앰배서더에 대해 “새로 생긴 호칭은 패션계에서 합의된 공식 용어라기보다는 생겼다가 사라지기도 하는 트렌드 용어에 가깝다”며 “앰배서더는 마케팅의 변화로 자연스럽게 유행하고 있는 단어”라고 정의한다.

“‘앰배서더 마케팅’은 브랜드의 인지도 제고와 매출 증가를 위해 유명 인사나 전문가 집단 등을 선정해 다양한 홍보 활동을 펼치는 마케팅 방법입니다. 다양한 소셜미디어 매체가 생겨나면서 직접적이고 한정적인 ‘광고 모델’보다는 ‘앰배서더’ 같은 다소 느슨한 관계를 통해 젊은 세대에게 다방면으로 다가가기 쉽게 하지요.”

글로벌 앰배서더 아이돌 전성시대 포문을 연 이는 빅뱅 지드래곤을 꼽는다. 지드래곤과 샤넬 디자이너 고(故) 칼 라거펠트.

글로벌 앰배서더 아이돌 전성시대 포문을 연 이는 빅뱅 지드래곤을 꼽는다. 지드래곤과 샤넬 디자이너 고(故) 칼 라거펠트.

왜 K팝 아이돌 전유물이 됐을까?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글로벌 브랜드들이 젊은 K팝 스타를 두고 ‘앰배서더 모시기’ 경쟁을 벌이는 이유는 무얼까? 추 교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유럽 패션 브랜드는 ‘젊음’이란 이미지를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며 “10·20대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글로벌 K팝 스타를 앰배서더로 선정하면 그들의 영향력으로 ‘올드’한 감성은 사라지고 브랜드를 다시 젊게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매력적인 전략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이 K팝 아이돌의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시점은 2015년 빅뱅 멤버 지드래곤이 샤넬 컬렉션 쇼에 앰배서더로 초청받으면서부터다. 당시 지드래곤의 앰배서더 활동은 ‘아시아 스타 최초’라는 수식이 따라붙었다. 이후 K팝 아이돌과 손을 잡는 브랜드들이 늘어나며 주로 할리우드 배우들이 맡았던 글로벌 브랜드 앰배서더 역할을 K팝 아이돌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인지도와 영향력이 큰 만큼 멤버별로 유력 브랜드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활동 중이다. RM은 보테가 베네타, 슈가는 발렌티노, 제이홉은 루이비통, 지민은 디올과 티파니, 뷔는 셀린느, 정국은 캘빈클라인의 앰배서더가 됐다. 블랙핑크 멤버들도 제니는 샤넬, 리사는 셀린느, 지수는 디올, 로제는 생로랑과 손을 잡았다. 떠오르는 신예 K팝 그룹들도 앰배서더 유망주다. 있지(ITZY)는 버버리, 에스파는 지방시, 뉴진스는 멤버별로 구찌, 루이비통 등 다양한 브랜드의 앰배서더를 맡고 있다.

패션지 편집장 B씨는 “K팝 아이돌이 패션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뒤로 밀려난 집단이 바로 배우”라고 말한다.

<오징어게임> 출연 이후 미우미우 앰배서더가 된 배우 이유미.

<오징어게임> 출연 이후 미우미우 앰배서더가 된 배우 이유미.

“배우에 대한 앰배서더 선정 척도는 글로벌 스트리밍 넷플릭스 순위입니다. 세계 순위권 안에 든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도 아이돌만큼이나 활발하게 글로벌 앰배서더로 선정되고 있어요. 예를 들어 글로벌 성적이 좋았던 <스위트홈>의 송강, <사내맞선>의 김세정, <오징어 게임> 정호연과 이유미가 글로벌 브랜드 앰배서더를 맡고 있어요.”

할리우드 배우보다 K팝 아이돌이 앰배서더로 더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들이 가진 다양한 채널 덕분이다. 단편적인 광고 인쇄물이나 캠페인에 국한되지 않고 자신이 가진 채널을 통해 다양한 국적과 연령대 사람들과 제한 없이 브랜드를 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매체 ‘보그 비즈니스’ 수석에디터 카티 치트라콘은 “다양한 디지털 매체에 정통한 K팝 스타들이 브랜드 앰배서더로 활약하는 이유는 당연하다”고 말한다.

“K팝 스타는 만능 엔터테이너들입니다. 할리우드 배우는 레드카펫에서만 그 브랜드 옷을 입는다. 반면 K팝 스타는 TV쇼, 드라마나 영화 촬영, 안무 연습 그리고 일상 브이로그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옷을 소화하고 팬들에게 노출해요. 그들의 활동은 다양한 플랫폼으로 많은 나라의 팬들에게 다가갈 수도 있죠.”

게다가 K팝 스타가 소유한 강력한 글로벌 소셜미디어의 경우 댓글이나 ‘좋아요’로 브랜드 이미지에 대한 반응을 세계 각지에서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으로 꼽힌다. 마케팅 플랫폼 레프티(Lefty)의 자료에 따르면 블랙핑크 리사는 인스타그램에서 9090만명 이상(3월 말 현재)의 팔로어를 가지고 있으며 파급력의 기준인 팔로어 참여율은 10%다. 그에 비해 글로벌 최고 패션 인플루언서라고 평가받는 이탈리아 치아라 페라그니의 팔로어는 2900만명, 참여율은 3%에 불과하다. 또 BTS의 뷔는 개인 계정 인스타그램의 모든 게시글이 1000만건 이상 ‘좋아요’를 기록해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뷔의 게시물 한 개의 광고 효과는 1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전 세계 최고가이다.

소비자들과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최고의 마케팅 기법으로 통하는 시대다. 충성도 강한 팬덤을 기반으로 성장한 K팝 아이돌이 자연스럽게 SNS에 노출하는 앰배서더 활동, 즉 광고 아닌 광고가 부흥기를 맞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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