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여? 말아?”…‘니플밴드’는 어쩌다 남성의 매너가 됐을까

강은 기자

‘니플밴드’의 사회학

남성의 유두에 붙이는 ‘니플밴드’ 판매량은 증가 추세다. 여름철 옷차림이 얇아지면서 티셔츠 속이 비칠까 봐 신경 쓰는 남성들이 많다. | 정지윤 선임기자 사진 크게보기

남성의 유두에 붙이는 ‘니플밴드’ 판매량은 증가 추세다. 여름철 옷차림이 얇아지면서 티셔츠 속이 비칠까 봐 신경 쓰는 남성들이 많다. | 정지윤 선임기자

숨바꼭지, 방탄꼭지, 눈치꼭지, 찌못미, 꼭지오디, 꼭지우개, 티안나밴드, 젠틀핏….

이름만 봐도 용도를 짐작할 수 있다. 옷 위로 유두가 드러나지 않도록 붙이는 ‘니플(nipple·젖꼭지)밴드’ 제품명들이다. “부드러운 부착감” “가장 중요한 커버력” “민감한 피부도 안심하고 사용” “통기성과 방수성” 등 저마다 장점을 다양하게 홍보하지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하나로 요약된다.

‘가리고 다녀라. 민망하니까.’

■“여름이면 젖꼭지 스트레스…겨울만 기다려”

대학원생 신호용씨(30)는 몸집이 큰 편이다. 키 181㎝, 몸무게 110㎏ 정도다. 옷차림이 얇아지는 계절이 되면 외출할 때마다 고민이다. 티셔츠 바깥으로 유두가 비칠까봐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한창 살이 쪘을 때는 눈이 4개나 마찬가지인 느낌이었죠.” 신씨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젖꼭지를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옷을 입으면 친구들에게 ‘뭐라도 붙여라’ ‘너만 생각하냐’ ‘참 당당하다’라고 놀림 섞인 말이 돌아왔다”고 했다. 주변 시선에 무감각한 편인 신씨가 처음 니플밴드를 붙여본 건 그래서였다.

평균 체격에 가까운 안동혁씨(31)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꼴로 니플밴드를 붙인다고 했다. 주로 흰색 셔츠를 입고 출근하는 날이다. “몇년 전만 해도 젖꼭지가 티 나면 안 된다는 생각 자체가 별로 없었어요. 아주 가끔, 꼭 필요할 때 반창고를 붙이는 정도였죠. 요즘은 가리는 게 기본 매너가 된 것 같아요. 동성이든 이성이든 만나는 상대에게 단정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 아닐까요.”

‘니플밴드’는 밴드형, 패브릭형, 실리콘형 등 판매사별로 종류가 다양하다. | 정지윤 선임기자 사진 크게보기

‘니플밴드’는 밴드형, 패브릭형, 실리콘형 등 판매사별로 종류가 다양하다. | 정지윤 선임기자

니플밴드 거래량은 증가 추세다. 패션쇼핑 플랫폼 무신사에 따르면, 니플밴드로 분류된 제품 항목의 거래액은 2022년 상반기(1~6월) 대비 2024년 상반기에 20배(1935%) 가까이 증가했다. 무신사 관계자는 “브랜드별로 다양한 사이즈와 다양한 질감(밴드형, 패브릭형, 실리콘형 등)의 니플밴드가 출시되면서 거래량도 늘었다”고 말했다.

가리는 정도로 해결되지 않아 수술에 나선 이들도 있다. 유두 성형 전문병원에도 남성들 발길이 모인다.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의 한 남성의원에서 만난 김기찬씨(38·가명)는 “헐렁하고 어두운색 계열의 옷만 입는 편”이라며 “여름만 되면 젖꼭지 스트레스 때문에 겨울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산다”고 말했다. 남성 유두의 평균 지름은 4.5~5㎜ 정도다. 통상 6㎜가 넘으면 큰 유두로 인지되기 쉽다고 한다. 이 의원 원장은 “대놓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유두 크기로 고민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다”면서 “하루 평균 2건 정도 수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완벽한 몸’이 아닌 자, “가려라”

숨기고 가려야 하는 건 여성만의 일이 아니게 됐다. ‘찌셔츠’ ‘꼭지남’ ‘민폐남’ 등 유두가 돌출된 남성을 비하하는 말도 생겼다. 10여년 전 ‘매너밴드’라는 이름으로 업계에 등장한 니플밴드는 남성 그루밍 제품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니플밴드는 왜 남성의 매너가 됐을까. 남성의 유두는 언제부터 ‘부끄러운 것’이 됐을까. 니플밴드를 사용하는 남성들과 업계 관계자, 섹슈얼리티 연구 전문가 등에게 물었다. 이들 설명을 종합하면 ‘니플밴드 현상’에는 피트니스 문화의 확산과 영양 증가에 따른 체형 변화, 이상적인 몸을 전시하는 미디어, 여성에게만 꾸밈을 요구하던 성별 규범의 해체 등이 얽혀 있다.

신윤철씨(29)는 헬스 트레이너다. 서울 성북구의 한 PT숍에서 일한다. 그는 “피트니스 산업이 발달하면서 남성들의 평상시 옷차림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른바 ‘머슬핏’(muscle-fit)으로 불리는 딱 붙는 옷차림이 보편화돼 유두를 의식하는 일도 전보다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는 “헬스장에서 밝은색 운동복을 입고 운동하는 남성 중 절반가량은 니플밴드를 쓰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성의 유두에 붙이는 ‘니플밴드’ 판매량은 증가 추세다. 여름철 옷차림이 얇아지면서 티셔츠 속이 비칠까 봐 신경 쓰는 남성들이 많다. | 정지윤 선임기자 사진 크게보기

남성의 유두에 붙이는 ‘니플밴드’ 판매량은 증가 추세다. 여름철 옷차림이 얇아지면서 티셔츠 속이 비칠까 봐 신경 쓰는 남성들이 많다. | 정지윤 선임기자

“저도 사실 짝짝이거든요. 한번은 달라붙는 흰색 운동복을 입었는데 한쪽만 너무 신경 쓰이는 거예요. 급한 대로 투명 테이프를 붙여봤는데…. 도중에 보니까 테이프가 바닥에 떨어져 있더라고요(웃음).”

피트니스 시대의 영향은 헬스장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몸은 그 자체로 성공과 성취의 상징이 됐다. 살찐 몸, 근육 없는 몸, 젖꼭지가 튀어나온 몸은 더 쉽게 실패한 몸으로 여겨진다. 직장인 심모씨(43)는 “비만율이 증가하면서 뱃살, 가슴살이 나오는 이들은 많아지는 한편 운동을 해서 ‘벌크업’을 하려는 남성들도 많아지고 있다”면서 “어느 쪽이든 가슴 부위가 도드라지는 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연구논문 ‘남성의 외모관리 허용 수위와 외모불안 지대’(2005)를 쓴 임인숙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니플밴드 현상을 남성의 몸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봤다.

임 교수는 지난달 25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남성들은 근육질 몸이 아이디얼 보디(ideal body·이상적인 몸)로 인식되기 때문에 니플이든 다른 것이든 돌출되는 것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있다”면서 “군살에 대한 혐오 감정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말했다. 그는 “‘식스팩’의 복근은 고사하고 유두가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다면 이상적인 몸의 기준에 완전히 어긋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미디어에서 남성의 유두 이미지를 이용해온 방식도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짚었다.

미디어에서 남성의 유두는 꾸준히 ‘개그 소재’로 활용됐다. 방송인 유재석은 유두의 위치로 인해 MBC <무한도전> 멤버들의 놀림감이 되곤 했다. 남들보다 유두가 낮은 곳에 있어 ‘저쪼아래’라는 별명이 붙었다. 전현무도 JTBC <비정상회담>, MBC <나 혼자 산다> 등에서 ‘젖꼭지남’ ‘유두천사’라고 조롱받았다.

유튜브 채널 ‘뉴민상’ 화면 갈무리 사진 크게보기

유튜브 채널 ‘뉴민상’ 화면 갈무리

유튜브 채널 ‘MBCentertainment’ 화면 갈무리 사진 크게보기

유튜브 채널 ‘MBCentertainment’ 화면 갈무리

■어깨뽕, 보정속옷, 키높이…남성들의 ‘미세 꾸밈’

김준호씨(25)는 니플밴드 현상의 이면에 ‘남성도 자기관리가 필요하다’는 인식 변화가 자리한다고 본다. 자신을 가꾸는 남성, 이른바 ‘그루밍족’의 등장과 맥을 같이한다는 의미다. “얼마 전 여자친구가 저를 보더니 니플밴드 좀 붙이고 다니라고 하더라고요. ‘바람 불면 젖꼭지가 보이지 않느냐’면서요. 신경 좀 쓰라는 거죠. 요즘은 남성들도 외모에 관심이 커진 시대잖아요.” 안동혁씨도 “남성들도 제모하기 시작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면서 “과거에는 남성이 겨드랑이털을 밀지 않았다고 해서 ‘불결하다’고 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털을 관리하는 이들도 꽤 생겼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이 국내 여론조사 플랫폼 더폴에 의뢰해 지난달 18~21일 30대 이상 남성 476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남성의 꾸밈(자기관리)에 대해 ‘필요하다’는 응답이 46.14%, ‘매우 필요하다’는 응답이 15.85%였다. ‘보통이다’라고 답한 비율은 25.87%, ‘불필요하다’는 6.36%, ‘매우 불필요하다’는 5.78%였다. 이런 경향은 30대부터 70대 이상까지 전 연령대에서 일관되게 나타났다.

경향신문이 국내 여론조사 플랫폼 더폴에 의뢰해 지난달 18~21일 30대 이상 남성 476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사진 크게보기

경향신문이 국내 여론조사 플랫폼 더폴에 의뢰해 지난달 18~21일 30대 이상 남성 476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니플밴드 판매사들도 자기관리 필요성을 강조하며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 온라인 광고물에는 “센스 있는 남자들의 필수품” “아저씨와 오빠는 니플밴드 한 장 차이” “꼭지남 탈출, 매너남 등극” 등 센스 또는 매너에 대한 직간접적인 언급이 어김없이 담겨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자꾸 내 상의를 쳐다보며 수군거린다면” 등 가꾸지 않은 몸에 대한 불안을 자극하는 방식도 많았다.

관리 좀 한다는 남성들을 위한 ‘그루밍 아이템’은 종류가 더 다양해지고 더 세분화되고 있다. ‘어깨뽕’과 ‘가슴근육패드’가 들어간 내의부터 뱃살을 가려주는 속옷, 키높이 양말까지. 모두 이상적인 몸을 구현하도록 신체를 보정하는 용도다. 키높이 양말을 신을지 고민했다는 직장인 이진철씨(39·가명)는 “양말 속에 실리콘 쿠션이 들어간 게 너무 부자연스럽고 신발을 벗었을 때 티가 날 것 같아서 실제로 사용하진 않았다”면서 “남성들의 관리에서는 노골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게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토록 한국적인…‘니플 민주화(?)’

‘니플밴드’ 브랜드 중 하나인 ‘찌못미’ 온라인 광고물 일부. | 신세계몰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사진 크게보기

‘니플밴드’ 브랜드 중 하나인 ‘찌못미’ 온라인 광고물 일부. | 신세계몰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신호용씨는 니플밴드 열풍을 “한국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유독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잖아요. 제가 아일랜드와 파키스탄에서 일하며 지낸 적이 있는데요. 거기선 아저씨들이 젖꼭지가 티 나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요. 여성들도 마찬가지고요. ‘노브라’를 보는 시선이 훨씬 자연스러웠죠. 그런데 내가 사는 곳이 달라지니까 상황에 따른 반응도 달라지는 거예요.”

2017년 폭발적 관심을 끌었던 ‘탈(脫)코르셋’ 운동은 몸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불러왔다. 화장이나 성형 등 ‘꾸밈노동’을 거부하는 이 운동을 계기로 많은 이들이 여성과 남성의 몸에 적용되는 기준과 잣대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가슴은 왜 남성의 가슴과 다른가.’ ‘남성과 달리 여성의 가슴만 성적 대상으로 보는 것은 차별적이다.’ 온라인에 여성 연예인들의 노브라 사진이 올라오고 댓글에서 논쟁이 붙을 때마다 이런 비판이 등장했다.

니플밴드는 코르셋의 ‘오묘한 확장’일까. 직장인 박모씨(33)는 “남성의 유두에 대해서도 더럽다고 생각하거나 혐오스럽게 보는 인식이 점차 생겨난 것 같다”면서 “가릴 거면 너희부터 가려라, 이런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꾸미는 건 여성의 일’이라는 성별 규범에 균열이 일어나면서 남성도 기초적인 관리와 꾸밈은 매너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이다. 여성에게만 학습됐던 ‘부끄러움’을 완전히 해체하는 방향보다는 부끄러움의 대열에 남성도 합류하는 식으로 흘러왔다는 분석이다.

다시 신씨의 말이다. “물론 외국에서도 노브라가 완벽하게 자유롭진 않았어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적어도 우리보다는 훨씬 젖꼭지에 대해 자연스러웠다는 점이에요. 한 1억배는 말이죠(웃음).”


Today`s HOT
칠레의 모아이석상, 다시 한 번 사람들의 관심을 받다.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더운 날 인도의 간디 추모식 허리케인 헬레네로 인한 미국의 마을 모습
미국도 피해가지 못한 허리케인 헬레네 베네수엘라의 10월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미국 경마의 선두주자, 베이즈와 그의 말 슈가 피쉬 멕시코의 여성 대통령 클라우디아 세인바움
이스라엘의 공습.. 손상된 건물과 차량 파키스탄에서 열린 반이스라엘 시위 홍수가 발생한 후의 네팔 카트만두 곧 태풍 크라톤이 상륙할 대만 상황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