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츠인마이백(15)

‘파쿠르 1세대’ 김지호 코치의 가방 속에는…

이유진 기자
국내 1세대 파쿠르 선수인 김지호씨에게 파쿠르는 수련의 길과 같다. 서성일 선임기자 사진 크게보기

국내 1세대 파쿠르 선수인 김지호씨에게 파쿠르는 수련의 길과 같다. 서성일 선임기자

담을 뛰어넘거나 건물 사이를 넘나드는 액션 영화 속 파쿠르는 잔재주가 아닌, 어엿한 익스트림 스포츠다. 국제체조연맹이 여덟 번째 기계체조 종목으로 공식 채택했으며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논의 중이기도 하다.

국내 1세대 선수이자 아시아 최초 국제 공인 파쿠르 코치인 김지호씨에게 파쿠르는 ‘수련’이다. 파쿠르(Parkour)는 프랑스어로 길, 여정을 뜻하는 단어 ‘Parcours’에서 파생됐다. 그에게는 주변 환경, 지형지물과 상호작용하며 자신의 고유한 길을 개척하는 움직임의 예술이자 수련의 길이다. 누구보다 진지하게 ‘담을 넘는’ 김지호 코치의 가방에는 무엇이 있을까?

파쿠르 ‘우리가 잊고 있던 태초의 움직임’

얼마 전 김 코치는 친구 셋과 함께 제주도 234㎞를 걷는 도보 여행을 했다. 길을 걷다가 자연스럽게 파쿠르를 하고 다이빙도 하며 한껏 제주도를 즐겼다. 그에게 파쿠르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다.

최근 유튜브 등의 미디어를 통해 고층 건물 사이를 오가는 아찔한 해외 파쿠르 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그는 위험천만하고 자극적인 영상이 파쿠르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키운다며 안타까워했다.

“미디어는 파쿠르를 단 1%밖에 담아내지 못했어요. 파쿠르 선수들은 대중에게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화려한 익스트림에 도전하죠. 사실 파쿠르는 길거리의 사소한 방지턱, 낮은 벤치 등을 활용하는 손과 발의 보행 운동에 가까워요.”

파쿠르라는 단어가 이미 오염됐다고 여기는 그는 ‘어반 로코모션(locomotion)’이라는 새 단어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로코모션은 라틴어 Locus(지형, 장소)와 motio(움직임, 운동)의 합성어로 ‘도시 속 보행 운동’이란 뜻을 담았다.

“파쿠르 수업을 한다고 하면 ‘너무 위험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먼저 나와요.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기 어렵더라고요. 대신 낯선 단어로 새롭게 정의해보니 오히려 호기심을 갖고 받아들여요.”

인류는 생산성이란 명분으로 불필요한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살아왔다. 그는 이런 실용적 움직임이 인간 스스로를 도구화한다고 생각한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은 쓸모없는 움직임들을 통해 즐거움을 찾는다. 이와 더불어 창의력도 살아난다고 그는 말한다.

“아이들과 성인을 함께 가르치고 있는데 큰 차이가 있어요. 아이들은 설명이 필요 없어요. 따라 하고 움직이는 것만으로 즐거움을 찾아요. 성인들은 ‘왜 해야 하고 어디에 좋은지’ 설명을 곁들여야 그제야 움직이죠. 인간이 야생성을 잃고 사회화되면서 얼마나 즐기지 못하며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학교 교단을 뛰어넘은 것이 그의 첫 파쿠르였다. 서성일 선임기자 사진 크게보기

학교 교단을 뛰어넘은 것이 그의 첫 파쿠르였다. 서성일 선임기자

파쿠르를 배우러 오는 이들은 대부분 도전과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김 코치는 오히려 불안하고 예민해 심리적으로 위축된 이들에게 파쿠르를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불안감과 스트레스에서 얼마나 빨리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는 정도를 회복 탄력성이라고 하죠. 파쿠르로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점진적인 단계를 통해 괴로움과 고통에 대한 인내심을 기를 수 있어요.”

김 코치는 놀이터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개구쟁이 초등학생이었다. 2m 높이의 구름사다리를 건너는 것은 기본, 그냥 뛰어내리는 것도 다반사였다. 중학교에 진학하며 자연스럽게 놀이터와는 멀어졌다. 학교-학원-집 생활을 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본 영화 <야마카시>를 보고 어린 시절 행복했던 ‘모험’이 떠올렸다.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마음으로 학교 교단을 뛰어넘은 것이 그의 첫 파쿠르였다. ‘야마카시’는 파쿠르의 창시자가 활동했던 프랑스 팀의 이름으로 영화 제목에 사용되며 국내에서는 한때 두 용어가 혼용되기도 했다.

김 코치는 아시아 최초이자 세계에서 스물두 번째로 국제 공인 파쿠르 코치 자격증(A.D.A.P.T) 레벨3을 취득했다. 필기시험과 20여개의 체력 검정, 8가지 기술 검정을 통과해야 하는 어려운 시험이다. 그의 다음 목표는 파쿠르를 글로 기록하는 일이다.

“파쿠르가 언어 기반이 빈약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힘들어 비주류 스포츠로 머물러 있는 것 같아요. 제 다음 목표는 파쿠르를 스포츠 심리학 관점으로 기록해 남기는 거예요. 지금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에서 파쿠르 논문을 준비 중입니다.”

김지호 코치의 가방 속에는…

그의 가방에서는 각종 파쿠르 관련 용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서성일 선임기자 사진 크게보기

그의 가방에서는 각종 파쿠르 관련 용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서성일 선임기자

김 코치의 백팩은 스키 선수들이 주로 쓰는 브랜드 제품이다. 해당 브랜드의 후원으로 선물받았는데 가볍고 내구성이 좋아 애용하고 있다. 예상대로 그의 가방에서는 각종 운동용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동네 체육 시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봉을 이용해 맨몸 운동을 즐긴다. 여러 가지 맨몸 운동에 활용도가 좋은 고무밴드는 굵기별로 두 종류를 갖고 다닌다. 굵은 고무 밴드는 철봉에 매달려 상체를 봉 높이까지 끌어올리는 머슬업 동작을 할 때 난도를 낮출 수 있다. 얇은 고무밴드는 운동 전 몸 풀 때 하는 회전근개 스트레칭 동작에도 유용하며 동료들과 점프나 레슬링 놀이를 할 때도 활용한다. 파쿠르를 하고 난 다음날에는 근육에 피로도가 쌓이기 마련이다. 근막 마사지에 좋은 지압 볼도 늘 지참한다. 테니스공도 여러 개 가지고 다닌다. 저글링 연습을 위해서다. 파쿠르와 저글링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제가 축구, 농구, 배구같이 공을 갖고 하는 단체 운동에 약해요. 남들과 경쟁하는 상황에 놓이는 걸 싫어하거든요. 혼자 하는 운동을 선호하다 보니 테니스공을 이용해 저글링 연습을 해요. 파쿠르에는 손으로 벽을 잡는 기술이나 순간 판단력, 반사신경이 꼭 필요한데 저글링이 훈련으로 제격이에요. 평소 식기를 잘 떨어뜨리는 분이 계신다면 저글링 운동을 추천하고 싶어요.”

파쿠르 연습 초창기에는 피부가 갈라지거나 상처가 났을 때를 대비해 바셀린 연고와 로션을 챙겼지만, 요즘은 잘 지참하지 않는다. 파쿠르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다면 시간 싸움인 ‘스피드런’ 종목이 생길 것으로 예상한다는 그는 초시계도 반드시 휴대한다. 파쿠르 코스를 설계할 때도 필요하다.

파쿠르에 속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른 자세다. 자신의 동작을 촬영하고 기록하기 위해 스마트폰 지지대도 늘 가지고 다닌다. 아직 파리 올림픽이 한창이지만, 김 코치의 시간은 이미 2028년을 향해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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