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5월 광주를 지킨 그 건물이 물었다…“나가 어찌케 살믄 좋겠어요?”

글·사진 고귀한 기자

금남로·충장로 걸으며 건물 이야기 듣는 ‘콘크리트 보이스’

기존 5·18사적지 탐방과 다른 ‘울림’…신개념 답사 기대감

5·18민주화운동 당시 부상당한 시민군들을 돌본 광주 천변우로 415 옛 적십자병원 건물 벽면에 새겨진 문구. 이 문구는 5·18 주요 사적지를 배경으로 하는 이동형 공연 <콘크리트 보이스> 프로젝트팀이 5·18의 가치를 되새기고자 새겨넣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부상당한 시민군들을 돌본 광주 천변우로 415 옛 적십자병원 건물 벽면에 새겨진 문구. 이 문구는 5·18 주요 사적지를 배경으로 하는 이동형 공연 <콘크리트 보이스> 프로젝트팀이 5·18의 가치를 되새기고자 새겨넣었다.

“1980년 5월 피투성이 된 시민들을 군화로 잘근잘근 밟는 계엄군의 모습을 지켜봤어. 헬기와 눈도 마주쳤지. 그런데 난 오래된 아파트라 곧 헐릴 거야. 내 기억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5·18민주화운동을 지켜본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인근의 오래된 콘크리트인 무등파크가 말을 건넸다. 무등파크는 1977년 광주에서 최초로 지어진 10층 고층 아파트로 5·18의 참혹한 현장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목격자다. 사람들은 무등파크의 목소리에 귀를 열고, 낡은 건물을 한참 바라봤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주요 사적지를 무대로 하는 이동형 공연 <콘크리트 보이스>의 한 장면이다. <콘크리트 보이스>는 관람객들이 광주 금남로를 중심으로 한 5·18 현장에 남아있는 오래된 건물(콘크리트)들의 대화를 들으며 5·18 가치를 고민하게 한다.

지난 21일 시범공연이 있었고 22일과 23일 4차례에 걸쳐 진행된 공연은 5·18사적지 답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남로와 충장로를 모두 무대로 활용하는 특별한 공연을 기자가 직접 체험했다.

5·18 당시 계엄군 헬기 사격의 흔적을 품고 있는 금남로 전일빌딩 245 옥상에 모인 관객들은 먼저 헤드폰을 착용했다. <콘크리트 보이스>는 이곳에서 시작해 금남로와 충장로 일대를 80여분 동안 걷는다. 건물들과 도로의 보도블록, 5·18 이후에 지어지거나 주목받지 못했던 금남로 지하상가(1988년), 민주광장 맞은편 기념비, 폐업한 웨딩의거리 빈 점포 등이 어린아이, 노인 등의 목소리로 관람객들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건물을 통해 듣는 5·18 이야기는 그동안 해설사가 관람객들에게 직접 설명해오던 ‘5·18사적지 탐방’과는 전혀 다른 울림을 줬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역사적 공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5·18 현장이 낡았다는 이유로 개발 논리에 밀려 사라지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는 의문 등이다. 한 관람객은 “유리벽 안에 놓인 전시물을 바라보는게 아닌, 생생한 현장을 통해 5·18의 과거와 현재를 보고 미래를 고민하게 한다는 게 이 공연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1980년 이후 세대들에게 건물을 통해 어떤 5·18 기억을 전달할 것인지 고민한 공연팀은 5·18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을 직접 들었다. 특히 해당 건물에서 5·18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했다. 문다은 <콘크리트 보이스> 프로젝트 팀장은 “5·18에 대한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어떻게 하면 각각 개인의 의식 속 역사를 되살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공연을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연을 본 관람객의 95%는 ‘만족한다’고 답했다. 5·18기념재단은 내년부터 더 많은 시민들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콘크리트 보이스>를 ‘오월길 탐방 콘텐츠’로 개발하는 등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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