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 ‘굿판 왕릉’…문무왕 노하실라

글·사진 김현수 기자

경주 대왕릉 ‘기도방’ 난립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문무대왕릉 인근 횟집에 지난 12일 기도방을 대여한다는 광고판이 걸려 있다.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문무대왕릉 인근 횟집에 지난 12일 기도방을 대여한다는 광고판이 걸려 있다.

10년 전 ‘기도발’ 소문에
무속인들 해안가서 제사
횟집에선 ‘방생고기’ 팔아
사적 훼손…단속 안 통해

지난 12일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에 위치한 문무대왕릉. 국가 지정 사적이자 세계 유일 바다 위 수중왕릉으로 알려진 이곳에 꽹과리와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소리는 10여곳의 횟집 중 한 곳에서 들렸다. 바다가 보이는 작은방 식탁 위에는 떡과 돼지고기, 과일 등 음식과 양초가 놓여 있었다. 무당으로 보이는 한 남성은 소복 차림으로 연신 절을 해댔다. 옆에서는 60대로 보이는 남성과 여성이 두 손을 정성스레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이날 찾은 문무대왕릉 인근 횟집들에는 ‘활어회’ 대신 ‘방생고기’ 판매를 안내하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방생은 불교에서 사람에게 잡혀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 물고기 등을 풀어줘 공덕을 쌓는 것을 말한다. 기도용품이나 오색천·조상 옷 판매와 기도방 대여를 알리는 광고문구를 붙인 횟집도 많았다.

인근에서 건어물을 파는 한 상인은 “문무대왕이 동해의 수호신이 됐다는 이야기 때문에 무속인들 사이에는 이곳이 ‘기도발’이 센 곳으로 통한다”며 “장사가 예전 같지 않은 횟집 공간을 기도방으로 빌려주고 돈을 받는 상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바닷가에서는 돗자리를 펴고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문무대왕릉은 통일신라 제30대 문무왕의 능으로 해변에서 약 200m 떨어진 바다에 있다. 1967년 사적 158호로 지정된 이 능은 대왕암이라고도 불린다. 문무왕은 불교 법식에 따라 화장한 뒤 동해에 묻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은 용이 돼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에 굿판이 늘어선 것은 10여년 전이다. ‘기도발’이 좋다는 소문에 무속인들이 모여들면서 일종의 무속산업이 형성된 것이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씨(60대)는 “집안에 우환이 있는 이들이 특히 많이 찾는다”며 “자녀의 결혼을 기원하는 굿을 벌일 때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국가 사적지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경주시는 해변 곳곳에 제사에 쓰고 남은 음식과 제사용품 등이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또 일부 바위에서 불을 피우거나 페인트 등으로 낙서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문화재보호법은 지정 문화재 보존에 영향을 미칠 무허가 행위를 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무속인의 강한 반발에 관할 지자체의 단속은 쉽지 않다.

경주시는 2020년 8월 굴착기 등 중장비를 동원해 무허가 굿당 30여곳을 철거했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무속인들이 흉기를 휘두르기도 했다. 철거한 굿당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들어섰다. 경주시 관계자는 “담당 부서에서 청원경찰 등과 함께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저항이 워낙 거세다”며 “계도 위주로 단속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굿판을 철거해 달라는 주민 민원은 급증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발길을 되돌리기도 한다. 대구에서 온 한수민씨(34)는 “경주에 온 김에 세계 유일의 수중왕릉을 구경하러 왔는데 곳곳에서 굿판이 벌어져 을씨년스러워 무섭기도 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무속신앙을 경주만의 문화자원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경주시 관계자는 “문무대왕릉 인근에 대규모 역사관을 세울 계획”이라며 “주변 정비를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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