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신부대기실 박차고 신랑과 함께 하객 맞았어요”

허남설 기자

서울 성평등지원센터 ‘바꿔야 할 의례문화’ 수상작 공개

성평등활동지원센터가 제작한 ‘이제는 바꿔야 할 의례문화’ 카드뉴스.

성평등활동지원센터가 제작한 ‘이제는 바꿔야 할 의례문화’ 카드뉴스.

신부는 상자 속의 바비인형?
대기실 박차고 하객에 인사

할머니 영정 손자가 들어야?
추억 많은 손녀, 못 들어 씁쓸

결혼식 사회, 신랑 측 남성?
말솜씨 좋은 신부 친구 맡아

# 서울 용산구에 사는 윤모씨(29)는 한 친구의 결혼식을 특별하게 기억한다. 청첩장부터 남달랐다. 엽서보다 작은 명함만 한 크기의 청첩장엔 신랑 이름보다 신부 이름이 앞에 적혀 있었다. 결혼식 당일, 친구와 그 신랑이 각자 부모님 곁에서 하객을 맞는 모습도 인상 깊게 봤다. 윤씨는 “답답한 바비인형 상자 같은 신부대기실을 박차고 나온 친구가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 양모씨(33·종로구)는 할머니 장례식에서 씁쓸한 경험을 했다. 집안 어른들은 손주가 영정을 들어야 한다며 남동생에게 그 역할을 맡겼다. 양씨는 생각했다. ‘영정을 손주가 들어야 한다면, 할머니와 가장 오래 함께했고 가장 많은 추억이 있는 내가 제일 어울리지 않을까.’

서울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가 주최한 ‘이제는 바꿔야 할 의례문화’ 수기공모전에 접수된 사연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이다. 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는 지난 5~6월 공모전을 열어 윤씨와 양씨 작품을 포함한 수필 21편을 선정해 시상했다고 6일 밝혔다.

서울시가 공개한 수상작 내용을 보면 참가자들은 의례를 진행하면서 성차별적 요소를 곳곳에서 맞닥뜨렸다.

최모씨(33·영등포구)는 결혼식 사회자가 보통 신랑 측 지인이며 남성이란 공식을 깼다. 최씨는 “내 결혼식 사회자는 친구 중에 말솜씨가 뛰어난 여성인 친구에게 맡겼다”며 “사회 보는 도중 성차별적인 이상한 농담을 하지 않을 것 같아 믿고 요청할 수 있었다”고 썼다.

김모씨(40·서대문구)는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딸들은 부고를 작성할 수도, 상주 노릇을 할 수도 없다는 이야기에 황당했던 일을 적었다. 김씨는 “딸만 넷이어서 내가 (부고를 작성하러) 가겠다고 하니 (장례식장 직원이) 사위를 보내라고 했다”며 “우리 자매는 모두 결혼을 하지 않아 사위가 없다고 재차 말하자 ‘정말 아들도 사위도 없냐’며 ‘요즘 그런 집들이 생겨서 곤란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주로 20~30대 여성들이 토로한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노·장년 남성들의 이야기도 있었다.

“딸이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아버지로서 딸아이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순간이 벅차기는 했지만, 딸아이는 ‘내가 신랑 쪽에 물건처럼 넘겨지는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돌이켜 생각하니 신랑·신부 모두 성인인데, 친정아버지가 사위에게 딸의 손을 건네주는 건 남성 중심 가족 문화에 기반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딸은 자신의 의지로 ‘결혼하는’ 것이지, ‘시집 보내는’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김모씨, 72·마포구)

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는 이날 공모전 수상작들을 재구성한 카드뉴스 ‘이제는 바꿔야 할 의례문화’를 홈페이지(www.seoulgenderequity.kr)에서 발행했다. 이달 말엔 수상작을 엮은 책을 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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