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임대차보호법 ‘구멍’ 이대로 괜찮나

이성희 기자

서울시, 관련법 개정 건의

상가 임대차보호법 ‘구멍’ 이대로 괜찮나

월세 5% 넘게 올려도 주인 바뀌니“점포 빼라”
분쟁조정 신청했는데 상대가 거부한다고‘각하’

증액한도 물가상승 연동에 분쟁조정 의무참여 등 제안

임차인 A씨는 보증금 3000만원, 월 임대료 200만원에 지하 실내낚시터를 운영하기로 2016년 10월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2년 후 재계약 때는 월 임대료를 220만원으로 올려 줬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 임대료 인상률은 기존의 5%를 초과할 수 없지만, A씨는 임대인 B씨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개업 당시 초기 투자금을 많이 들였던 만큼 이 건물에서 오래 영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1년 후 B씨가 해당 건물을 매도하면서 빚어졌다. 재건축하기 위해 건물을 사들인 새 임대인은 A씨에게 2020년 10월까지 점포를 빼달라고 했다. A씨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B씨를 상대로 재계약 시 5% 초과 인상한 임대료를 반환하라고 서울시 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 조정신청을 제기했다. 그러나 B씨는 초과분에 A씨도 합의한 것이라며 조정을 거부했다. 결국 이 분쟁은 각하로 종결 처리됐다.

A씨 사례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등 현행 법률이 임차상인 권리를 보호하는 데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현행법상 임대료 증액 상한요율을 알지만, 건물주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임대료를 올려주는 임차인이 많다. 거액을 투자했어도 임차인 의지와 상관없이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서울시는 임차상인 권리를 개선하고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최근 법무부와 국토교통부에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과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의 개정을 건의했다고 9일 밝혔다. 이번 건의는 서울시가 운영 중인 상가임대차상담센터와 분조위에 접수된 내용을 토대로 마련했다.

개정 건의안은 현행 법률의 사각지대 해소에 초점을 맞췄다. 예컨대 현재 임대료 증액 한도는 지역에 상관없이 기존 임대료의 5%로 고정돼 있는데, 이를 전년도 물가상승률 2배 내에서 시·도 조례로 정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 다른 지역보다 임대료가 월등히 높아 상승률 5%도 상당한 임대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전망한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1% 수준이다.

상가 임대차보호법 ‘구멍’ 이대로 괜찮나

건의안에는 분쟁조정 절차 참여 의무화도 담겼다. 현행법상 상가 임대차 분쟁 조정은 강제성이 없어 계약 당사자 모두 동의해야 진행된다. 상대방이 조정 참여를 거부할 경우에는 각하로 종결 처리된다. 2019년부터 올해 10월까지 분조위에 접수된 분쟁 조정 507건 중 39.8%(202건)가 상대방의 참여 거부로 각하됐다. 이럴 경우 신청인은 소송을 통해서나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분쟁 유형은 올해 접수된 135건 중 임대료 조정이 31.1%(42건)로 가장 많았다. 이어 계약해지 28.8%(39건), 수리비 26.6%(36건), 계약갱신 5.9%(8건), 권리금 5.1%(7건) 등의 순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분쟁 조정 접수 후 피신청인의 분쟁 조정 참여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건의에는 계약갱신 요구 거절 사유 제한과 권리금 회수 기회 확대 등 임차인 보호를 위한 개선안도 들어 있다. 현행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최대 10년간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을 인정하지만, 임대료 3개월치를 연체한 적이 있다면 연체 시기와 관계없이 건물주가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가령 임차인이 계약 기간 8년 동안 임대료 3개월치를 한 번이라도 미지급한 적이 있다면 계약갱신을 거절당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시는 “계약갱신요구권을 배제할 수 있는 사유 중 ‘3기의 차임액에 이르도록 차임을 연체한 경우’를 ‘최근 2년간 3기의 차임액에 이르도록 차임을 연체한 경우’로 기한을 한정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임대료 연체 기한을 최근 2년 내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임대료 연체로 임차인이 행사하지 못한 계약갱신요구권은 권리금 회수 기회 박탈로 이어진다. 현행법에서 3개월치 임대료를 연체한 임차인은 권리금 회수 기회 보호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임차인이 임대료를 연체한 사실이 있는 경우에도 권리금을 지급받는 것을 임대인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규정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 밖에 상가임대차 실거래가 신고 의무제도 도입해야 한다고 서울시는 제안했다. 주택 부문은 지난 6월부터 임대차계약 신고 의무제가 도입됐지만, 상가건물은 해당 사항이 아니다. 시는 “상가 임대료에 관한 정보가 없어 최초 계약 시 적정 임대료를 인지하지 못해 피해가 발생하고 계약갱신 시에는 임대인이 임대료를 과도하게 요구해도 비교대상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영희 서울시 노동·공정·상생정책관은 “서울시가 상생할 수 있는 건강한 임대차 시장 조성에 힘을 쏟고 있지만, 현행법이 임차상인의 권리를 보호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아 어려움을 호소하는 상담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며 “현행 법률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관련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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