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별세

한대광 기자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2020년 8월 서울 신도림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2020년 8월 서울 신도림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3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71세.

이 전 장관은 학림사건으로 투옥돼 7년 4개월을 복역하다 가석방된 뒤 전 주간노동자신문·노동일보를 창간해 발행인을 맡았다. 김대중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다. 최근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의 총탄에 숨진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 윤상원 열사를 기리는 윤상원 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이태복장례위원회는 4일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평생 현장에서 답을 찾아 실천했던 휴머니스트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께서 2021년 12월 3일에 영면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고인은 1950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서울 성동고와 국민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박정희 정권이 1971년 10월 15일 ‘위수령’을 발동하면서 학생운동 인사 180여명과 함께 군대에 강제징집됐다.

1977년 출판사 ‘광민사’를 차렸다. 첫 출간 서적인 <유한계급론>을 비롯 <한국노동문제의 구조>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등을 출간했다. 그는 서울 구로공단을 비롯 인천 부평공단 부산 사상공단 등을 다니며 노동운동 활동가들과 만났다. 용산시장 청과물시장에서 지게꾼 일도 하면서 노동법, 항일운동 시기의 노동운동 등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그는 1970년 말 양승조 청계피복 노조위원장을 비롯 전국의 활동가들과 전국민주노동자연맹(전노련)을 결성했다. 당시 중앙위원 중 한 사람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대변인을 맡았던 고 윤상원 열사였다.

1981년 전노련을 인사들을 상대로 한 학림사건으로 경찰에 연행됐다. 2달 동안 ‘고문기술자’ 이근안 등으로부터 고문을 당했다. 이후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86년에는 국제사면위원회에서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됐고, 7년 4개월을 복역하다 1988년 가석방됐다.

1988년 12월 국제사면위원회 등의 청원으로 특별사면돼 대전교도소에서 출소했을 당시의 이태복 전 장관.|경향신문 자료사진

1988년 12월 국제사면위원회 등의 청원으로 특별사면돼 대전교도소에서 출소했을 당시의 이태복 전 장관.|경향신문 자료사진

1989년 주간노동자신문을 창간했다. 10년 뒤인 1999년에는 노동일보를 창간했다. 2001년 3월 청와대 복지노동수석직을 맡았고, 다음 해 1월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지냈다. 2007년 국민생활의 안정을 위협하는 기름값, 휴대전화비, 카드수수료, 약값, 은행금리 인하 등을 요구하는 ‘5대거품빼기범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아 활동했다. 2013년에는 5.18 민주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저서로는 옥중 서한집 <세상의 문 앞에서> <노동자의 논리와 희망의 노래> <전환기의 노동운동> <도산 안창호 평전> <윤봉길 평전> 등이 있다.

발인은 오는 7일, 빈소는 서울 고려대학교구로병원 장례식장 201호실(070-7606-4197)이다. 장지는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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