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이 ‘내년에는 해방되겠지’하며 (일제강점기) 36년을 버텨온 것처럼 지금 우리 국민들도 하루하루 버텨나간다. 이게 민주주의의 현주소다.”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한 대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헌법학자인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과의 기조 대담에서 “87년 체제 이후 민주주의는 겉으로 발전했는지 모르겠으나 사실상 상당히 퇴보했다”며 “지역·세대·빈부 등 여러 갈등이 온 것은 민주주의가 잘 작동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 전 총장도 “정치헌법학 이론에서 (한 나라가) 평화적 정권교체를 두 번 하면 외형적으로 민주주의가 정착한 것”이라며 “네 번의 정권교체가 이뤄진 한국은 외형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성공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으로는 승자 독식 구조를 꼽았다.
이 이사장은 “(대선에서) 한 표라도 더 얻으면 정권을 잡으니 야당은 절대로 협치하지 않고, 여당은 모든 권한을 행사한다”며 “지금의 제도는 ‘대통령이 되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에 싸우게 되면서 민주주의의 위기가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외교·통일·국방은 대통령에게, 국내 정치는 국무총리에게 권한을 주는 것을 개헌의 가닥으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개헌은 장기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 이사장은 “당장은 국정을 어떻게 풀어나가냐가 급하다”며 “정부가 여대야소의 구조를 타개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안을 내놓고 임기 말에 다음 정권에서 분권할 수 있도록 헌법을 고치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성 전 총장은 “여야가 합의한 내용이라면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더라도 헌법을 개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그간 지지부진한 헌법 개정을 가능케 하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현행 선거제도를 고쳐야 한다고도 했다.
이 이사장은 “지금처럼 권력을 잡은 사람이 공천한다면 당과 정부 권력자들이 개입하게 되고 갈등과 분열이 생긴다”며 “갈등과 분열이 생기는 제도, 권력에 줄을 대는 사람이 공천을 받는 제도 아래서는 민주주의가 정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 50%는 야당에, 45%는 여당에 투표했지만 의석수 차이는 28%까지 벌어진 점을 들었다.
그는 “(선거 결과가) 국민의 뜻과는 다른 것”이라며 “현행 소선거구제로는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 한 선거구에 4명을 뽑는 대선거구제로 바꿔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