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은 이미 ‘난방비 폭탄’에 쑥대밭…등유 때는 일상은 ‘울상’

고귀한 기자

전남 장성군 하우스농가 가보니

1년새 연료비 500만원 더 지출

“2도 낮춰 토마토 품질 떨어져도 어쩔 수 없어”

26일 오전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한 농장에서 이회식 대표가 방울토마토를 수확하고 있다. 고귀한 기자

26일 오전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한 농장에서 이회식 대표가 방울토마토를 수확하고 있다. 고귀한 기자

“방울토마토가 맛있게 익으려면 영상 14도를 유지해야 하지만 2도나 낮춰 겨우 12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것도 힘이 듭니다.”

26일 오전 전남 장성군 황룡면 방울토마토 농장에서 만난 이회식씨(73)는 요즘 농사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당장 출하를 앞둔 방울토마토를 따 바구니에 옮기다가도 한숨을 내뱉었다.

이씨는 “농사는 시기와 때가 있는데 올해는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 것 같다”면서 “주변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욕을 해서라도 말리고 싶다”고 했다.

이씨는 7930㎡ 크기의 비닐하우스 3개 동에서 방울토마토를 키우고 있다. 20년 넘게 시설하우스 농장을 운영해온 그에게 이번 겨울은 가장 큰 고비다. 최대 영하 20도에 달하는 한파가 계속되고 있는 데다 고유가로 시설하우스 재배에 따른 난방비 부담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하우스 온도를 2도 정도 낮추면 보일러 등유 사용량을 절반 정도 줄일 수 있다”면서 “토마토 품질이 떨어질 게 뻔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주유소 거래내역을 보면 지난해 비닐하우스 난방을 위해서만 등유 1만6600ℓ를 사용했다. 등유를 구입하는데 지출한 금액만 해도 1840만원에 달한다. 농민들이 사용하는 등유는 ‘면세유’다. 이미 세금이 빠져있기 때문에 정부의 유류세 인하 대상도 아니다.

지난해부터 가파르게 오른 등유 가격은 고스란히 농민들의 부담이다.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해 1월1일만 해도 면세 등유 1ℓ 평균가격은 924원이었지만, 지난해 11월16일에는 ℓ당 1398원까지 치솟았다. 최근 농업용 등유는 1ℓ당 1400원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이씨는 이번 겨울을 나면서 지난 겨울보다 500만원 정도를 더 비닐하우스 난방에 지출하고 있다. 그는 “도시에서는 최근 ‘난방비 폭탄’이라며 난리던데 농민들은 이미 1년 전부터 고통을 겪고 있다”면서 “그런데도 정부는 시설하우스 농민들을 위해서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고 했다.

비닐하우스 온도를 낮췄지만 농사를 포기할 수 없었던 이씨는 최근 보조난방기로 전기보일러를 설치했다. 전기보일러 설치에는 300만~400만원이 추가로 들었다.

하지만 방울토마토 출하 가격은 반토막이 났다. 지난 겨울 ㎏당 4500원 정도였던 방울토마토 가격은 올해 점차 하락하더니 이번 주에는 2500~3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비료값도 크게 올랐다. 지난해 상반기 20㎏ 1포대에 1만6000원 하던 질산칼슘은 지난해 12월 3만1000원으로 50% 가량 올랐다. 황산가리와 질산가리도 각각 2만7000원에서 4만원, 5만2000원에서 6만5000원이 됐다.

이씨는 농사를 포기해야 할지 고민한다. 그는 “주변 대부분 농장들이 원가를 빼고 나면 손에 쥐는 게 거의 없지만 마지못해 출하하는 실정”이라면서 “농민들이 희망만이라도 잃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농장을 나오는 길, 문이 잠시 열리자 들판의 칼바람이 비닐하우스로 들이닥쳤다. 이씨가 빠르게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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