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부모가 이혼하고 경제적 어려움이 찾아오면서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부모 밑에서 자라지 못했다는 이유로 양육이나 가르침이 부족한 존재라는 편견과 마주해야 했다. 단체생활 또는 낯선 어른과의 생활, 그 과정에서 오는 심리적 고통과 정서적 불안정에 맞서며 10여년을 버텼다. 마음의 상처는 아물 틈도 없이 성인이 됐다. ‘자립준비청년’ A씨의 이야기다.
자립준비청년들은 경제적 지원보다 ‘심리·정서적 지원’을 더 필요로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단순 일자리와 주거 지원 등 정책에 앞서 사회적 가족과도 같은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직접 당사자들의 외침이다.
지난 12일 광주광역시의회 5층 예산결산특별위원회실에서는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정책과 제도 보완 토론회’가 열렸다. 자립준비청년에게 실질적인 정책을 마련하고 제도적 보완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토론회는 당사자인 자립준비청년들이 중심이 돼 진행됐다. 이들은 토론회를 위해 2달 전부터 자료조사를 하고 사례를 모아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이해’, ‘실질적 자립방안과 역할’ 주제의 기조발제문을 직접 작성하고 발표했다.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회적기업 브라더키퍼의 대표 김성민씨는 “17년 간의 보육원 생활을했고, 현재도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해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지만 깨닫게 된 것은 후원만으로는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광주에서 자립준비청년 2명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들의 유서에는 ‘삶이 너무 가혹하다’ 등 내용이 적혀있었다. 보건복지부의 자립수당 지급 내역을 보면 2021년 기준 수당 지급 대상자는 모두 7270명인데 이 중 20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 14명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김씨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고통스러워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자립준비청년들 여전히 많다고 했다. 그는 “일주일에 평균 두 번 정도는 듣는 것 같다”며 “자립준비청년에게 일자리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먼저 회복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3년 차 자립준비청년인 박태양씨는 “대부분의 자립준비청년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외로움과 고독감”이라면서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좋지만 아픈 상처를 돌아보고 치료해주는 따뜻한 사회적 가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4년 차 자립준비청년인 김남중씨(바람개비 서포터즈 호남권역 회장·GT컴퍼니 교육팀)는 사회적 지지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릴 적 작은 시골마을에서 할머니와 생활했다는 김씨는 “할머니가 일 때문에 늦게 올 때면 마을 주민들이 저를 걱정해 매번 끼니를 챙겨주고 보듬어줬다”며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지역사회 전체가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따뜻한 마을이 돼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들은 공동생활가정과 가정위탁, 아동양육시설 등 자라난 보호 환경에 따라 개인별 성향과 사회적응력 차이가 커 섬세한 정책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자립지원 전담기관의 실태조사를 통한 개별 정책욕구 파악, 지역 자립 준비 청년을 위한 생애 주기별 지원정책 안내서 마련, 사회기여형 자조모임 형성 지원, 자립전담요원 확대 등을 제안했다. 자립준비청년들의 목소리는 광주시 정책에 반영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