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로 가는 길, 기울어진 법정

(2)미국선 ‘AI·알고리즘 담합’처럼 명확한 합의 없어도 처벌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담합’ 어떻게 막을 수 있나

‘우버’ 미국서 가격담합 집단소송…알고리즘 사용해 높은 가격 유지

가격 같아진 결과·맞추려 한 행위 모두 담합으로 문제삼아 규제해…한국은 ‘계약 수준’ 행위 입증해야

“미, 기소·민형사 법무부가 독점 검찰이 나서야 제대로 잡힌다”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글로벌경쟁포럼에 참석한 대법원 공정거래 담당 연구관 출신 손동환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오른쪽에서 두번째)가 2013년 대법원의 5개 음료회사 담합 파기 판결을 설명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는 캐나다 연방법원장, 남아프리카 경쟁항소법원장, 유럽연합법원 총괄연구관, 칠레 경쟁위원장 등이 각국의 공정거래 판례 등을 소개했다. OECD 홈페이지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글로벌경쟁포럼에 참석한 대법원 공정거래 담당 연구관 출신 손동환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오른쪽에서 두번째)가 2013년 대법원의 5개 음료회사 담합 파기 판결을 설명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는 캐나다 연방법원장, 남아프리카 경쟁항소법원장, 유럽연합법원 총괄연구관, 칠레 경쟁위원장 등이 각국의 공정거래 판례 등을 소개했다. OECD 홈페이지

“카르텔이 유지되고 성공하려면 담합을 약속한 상대 회사의 가격 인하를 즉시 파악해 보복해야 한다. 이런 역할에 알고리즘과 같은 자동화 시스템이 크게 기여한다.” 유럽연합(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인 마르그레테 베스타거는 지난해 알고리즘 담합에 대처가 필요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무렵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테렐 맥스위니 상임위원은 베스타거 위원장 발언에 공감한다면서 “기술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도 이를 기획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고, 따라서 독점규제 대상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 알고리즘 담합도 규제하는 미국·유럽

알고리즘 담합은 이미 규제되고 있다. 미국 법무부(DOJ)는 2015년 알고리즘을 이용해 가격담합을 벌인 아트닷컴 데이비드 톱킨스 이사를 처벌했다고 밝혔다. 온라인 장터인 아마존 마켓플레이스에서 영화 포스터를 판매하는 아트닷컴은 경쟁사와 공모해 2013년 9월부터 2014년 1월까지 특정 포스터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높게 유지했다. 아트닷컴과 경쟁사는 같은 알고리즘을 사용해 가격을 높게 설정하고 서로의 가격을 감시해 담합을 유지했다. 톱킨스 이사는 법무부에 혐의를 인정하고 벌금 2만달러를 내기로 했다.

플랫폼 자체가 담합으로 소송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승객과 운전기사를 스마트폰으로 연결해주는 플랫폼인 우버를 상대로 한 가격담합 손해배상 재판이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플랫폼을 운영하는 우버와 운전기사가 우버 알고리즘을 사용키로 담합해 운전기사 사이의 가격경쟁을 제한, 우버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집단소송이다. 뉴욕남부지법은 중재를 해달라는 우버의 주장을 기각하고 집단소송 원고 적격을 인정했다. 지금은 연방항소법원에서 심리 중이다.

사람의 지시나 개입 없이 알고리즘이나 인공지능(AI)이 스스로 담합하는 경우도 현실화하고 있다. 김경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자체적으로 학습하는 알고리즘은 학습을 통해 인간의 지시가 없어도 데이터를 분석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면서 “알고리즘이 독자적으로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모니터링해 공급자에게 최적의 전략을 도출해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쉽게 인지하지도 못하고 특정인을 비난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을 제한하는 결과가 초래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민주화로 가는 길, 기울어진 법정](2)미국선 ‘AI·알고리즘 담합’처럼 명확한 합의 없어도 처벌

■ 계약하듯 담합해야만 인정하는 한국

미국 등 외국에서는 담합에 이렇게까지 엄격한데 한국에서는 왜 눈에 보이는 담합도 방치하는 것일까. 법조계 관계자는 “대법원이 경제 특별법인 공정거래법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꾸만 대등한 입장의 계약을 강조하는 민법적 사고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담합이란 게 기본적으로 숨겨가며 하려는 것인데 가장 명확한 합의인 계약 수준의 입증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어느 정도의 의사교환을 담합으로 인정할지 판정하는 기준이 한국에서만 유난히 엄격하다. 미국이나 EU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당초 담합을 왜 금지하기 시작했는지 생각하면, 증거가 풍부한 담합마저 취소하는 대법원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권오승 서울대 교수와 서정 변호사가 함께 집필한 <독점규제법> 등에 따르면 담합은 ‘경쟁의 부재’를 가져온다. 시장경제가 기능하지 못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를 방지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가격이 같아진 ‘결과’를 규제하는 것과 가격을 맞추려 한 ‘행위’를 문제 삼는 것이다. 그래서 가격을 맞추려 한 행위를 규제하더라도 가격이 같아진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이 그런 식이다. 그러나 한국 대법원은 자꾸만 명확한 증거를 요구한다. 가격담합 행위 없이 가격만 같아지는 AI 담합이 나왔지만 한국은 여전히 가격을 맞추려 한 행위가 있어야만 규제하려 하고 있다. 대법원이 제도의 목적을 외면하고 민법만 부여잡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대법관의 보수적인 성향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법원 관계자들은 “피해자가 보이지 않는 범죄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가 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친다는 공안 사건이고 다른 하나가 국민 경제를 훼손하는 담합 사건이다. 담합 사건의 피해자는 법정에 불려나온 대기업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다수의 소비자다. 하지만 대법관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 반대로 공안 사건에서는 법정에 나온 피고인을 피해자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 김앤장에 무기력한 공정위

라면, 소주, 음료 3대 담합 사건에서 취소 판결을 받아낸 대리인 명단에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빠지지 않고 있다. 다른 로펌도 대기업 대리인에 이름을 올렸지만 모든 사건에 참여한 것은 김앤장이다. 라면 사건은 법무법인 KCL과, 소주 사건은 법무법인 율촌과 함께, 음료 사건은 단독으로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로펌을 내세우고 전직 헌법재판관을 대리인으로 세웠지만 결과는 완패였다. 김앤장은 대법관 출신의 손지열, 이임수 변호사를 대리인 명단 가장 앞에 올렸다.

이에 따라 담합 사건에는 검찰이 독자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라 검찰은 담합을 포함한 공정거래법 위반 범죄를 독자적으로 수사할 수 없다. 공정거래법의 특별법 격인 하도급법, 대규모유통업법, 가맹사업법, 대리점법, 표시광고법도 마찬가지다. 미국·유럽에서는 처벌하지 않는 불공정거래 등 모든 규제를 형사처벌이 가능하게 만든 대신 수사는 공정위의 고발로만 가능하게 했다. 수사에 따른 경제적 영향을 공정위가 판단해 형사처벌 시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를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이라고 한다.

■ “심각한 형사범죄로 담합 다뤄야”

공정거래법과 검찰 내부에 정통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나서야 담합이 제대로 잡힌다. 미국이 대표적인 사례 아니냐”고 했다. 적어도 담합 사건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공정거래법 집행을 법무부 독점금지국과 연방거래위원회가 함께하는 구조인데 기소를 비롯한 형사와 민사 절차는 법무부가 독점하고 있다.

전속고발권 폐지에 관해 공정위도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공정위는 지난달 발표한 ‘공정거래 법집행체계 개선 최종보고서’에서 “전속고발제 폐지와 관련한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요약하면 공정위와 검찰 간 협업을 통해 상호 전문성을 극대화하면 중복조사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므로 전속고발권을 전면 폐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속고발제를 없애면 담합을 적발하는 핵심 수단인 자진신고가 작동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 따라서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가격이나 입찰을 짬짜미하는 경성담합에 한해 폐지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이를 위해서는 공정거래법을 개정해야 한다.

다른 제도는 그대로 두고 전속고발권만 없앤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자백을 해도 벌금형이 나오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처벌을 무겁게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같은 사안으로 형사재판과 행정재판이 동시에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공정위의 고발로 검찰이 기소해도 형사 1심을 맡은 지방법원 형사단독판사와 2심을 맡은 지방법원 형사항소부가 과징금 사건을 담당하는 고등법원 행정부의 판결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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