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수 신임 대법관(사진)이 “노동사건 판례들을 전체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 신임 대법관은 “언론노동자 근로조건에 공정방송이 포함되는지, 교육노동자에게는 그 조건이 어디까지인지 등이 재검토되어야 한다”면서 “(노동 관련 사건 가운데) 시급히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부터 훑어볼 예정”이라고 했다.
김 대법관은 국회 임명동의가 통과된 다음날인 지난 27일 경향신문과 만나 이 같은 포부를 밝혔다. 그는 “모두의 기대에 부응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느라 잠을 못 이루고 있다”고 부담감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30년 재야 변호사와 6년 대법관의 입장은 같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 관련기사 3면
그는 “민변 시절에는 앞장서서 모든 형태로 주장하고 요구했다. 하지만 대법관은 그런 입장이 아니다. 실정법의 테두리에서 판단해야 한다”며 최고법원 법관으로서의 역할을 명확히 했다. 낡고 오래된 판례에 문제를 제기하겠지만, 사법부 특유의 소극적·보수적 성격은 지키겠다는 뜻이다.
김 대법관은 지난 30년 수많은 사건을 맡아 판례를 바꾸고 법률을 개정시켰다. 골프장 캐디 등 특수고용노동자, 서울대병원 법정수당 사건 등 통상임금, 대학 교수의 부당한 재임용 탈락, 콜트·콜텍의 정리해고, 공무원노조 문제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피의자가 변호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검사 조서는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도 이끌어냈다. 김 대법관은 다음달 2일 취임한다.
■ “인권 감수성 바탕, 의미 있는 사건에 정확한 논리 내겠다”
김선수 신임 대법관이 다음달 2일 6년 임기를 시작한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판검사를 거치지 않은 변호사 출신에 의미를 둔다. 이런 형식적인 규정으로는 ‘김선수의 대법원 진입’을 모두 설명하지 못한다. 그의 등장은 민법의 특별법인 노동법을 현장에서 다뤄본 첫 대법관이라는 의미가 있다. 시민법으로도 불리는 민법은 당사자의 자유로운 계약에 따라 이상적인 사회가 실현된다는 아이디어를 담았다. 노동법에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약은 불평등하기 마련이므로 제도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
김 대법관은 저서 <노동을 변호하다>(오월의봄)에서 이렇게 밝혔다. “시민법에 기초한 근대 사법은 현실에서 강자에게는 명령의 자유, 약자에게는 복종의 자유로 양극화되면서 ‘법적 몽상’임이 증명되었다. (중략) 노동법은 시민법을 이러한 모순에서 구했다. 노동법은 개별적 차원의 형식적, 사적 자치를 집단적 차원의 사적 자치로 전환할 수 있게 해서 자기 함정에 빠진 시민법을 구원한다.” 민법의 영향이 압도적인 대법원에 그가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법조계는 주목한다.
국회 임명동의안이 통과된 다음날인 지난 27일 김 대법관을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무실 벽 책장에는 지난 30년간 수행한 사건 파일이 가득 꽂혀 있고, 바닥에는 변호사 생활을 정리하기 위한 상자들이 놓여 있었다. 김 대법관은 100분간 인터뷰에서 기존 대법관들이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용어를 썼다. ‘사회적 약자’ ‘인권 감수성’ 같은 말이 계속 등장했다.
변호사단체 등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도 김선수 변호사를 거듭 대법관으로 추천한 이유는 그가 진보적이어서가 아니다. 실력과 경험, 도덕성을 갖춘 사람을 그 말고는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보수 성향 하창우 전 대한변협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김선수라면 대법관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래서 추천하는 것”이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윤리와 실력을 겸비한 대법관의 탄생은 번민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물세 살에 사법시험 준비를 죄의식과 자책감을 가지고 시작했다. 당시 친구들은 우리 사회를 바꿔보자며 변혁 운동의 장으로, 노동 현장으로 향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노동변호사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시험공부를 시작해 2년 만인 1985년 수석 합격했다. 1988년 연수원을 수료한 뒤 판사 임용과 대형로펌을 마다하고 <전태일 평전> 저자이자 불세출의 인권변호사 고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했다. 지난 30년간 수많은 사건을 맡아 판례를 바꾸고 법률을 개정시켰다. 재야 생활을 마감하고 사법부 심장으로 들어가는 그의 생각을 전한다.
- 대법관 김선수가 성공하길 응원하는 법조인들이 많다. 현역 판사들조차 새바람을 넣어주길 기대한다. 어떤 조언을 많이 들었나.
“어깨가 무겁고 부담이 크다. 응원하시는 분마다 다양한 역할을 기대하는 것 같다. 대법원에 들어가서 대법관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메기 역할을 하라고도 하고, 대법원의 풍토를 개선하고 법리도 다른 각도에서 만들어내라고도 한다. 오랜 기간 공부하고 현장에서 닦은 경험을 활용해 기존 판례를 극복하고 대법원을 바꾸라고도 한다. 자칫 기존 논리에 동화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한다. 모두의 기대에 부응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느라 잠을 못 이루고 있다.”
- 변호사단체가 대법관 후보로 추천해온 이유는 노동법 전문가여서가 아니다. 기존 대법관들과 논쟁이 가능한 이론적 배경을 갖추고 있고, 그들은 잘 모르는 사회현실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출신과 법관 출신 사이에 견해차가 있을 수 있다. 토론을 통해 더 좋은 결론이 나오리라 믿는다. 결국 국민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법관은 일방 당사자가 아니다. 내가 2000년부터 중앙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으로 일했다. 이때도 한쪽을 대리하는 변호사로 주장할 때와는 다르게 사용자 얘기를 경청해 판단했다.”
- 대법관 한 사람이 연간 3000건 넘게 처리한다. 사회도 조망해야 한다. 쟁쟁한 법관 출신 대법관들도 소득 없이 퇴임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 관련 사건을 변론하면서 축적된 인권 감수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바탕을 두고 의미 있는 사건을 선별하고 그 부분에서 정확한 논리를 개발해 정치하게 전개해야 하지 않겠나. 박시환 전 대법관께서 대법관의 업무가 무엇인지에 관해 매우 상세하게 적어두신 글이 있다. 찾아서 참고하려고 한다.”
-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진보 성향 대법관 5명을 ‘독수리 5형제’라고 부른다. 좋은 의견도 냈지만 소수의견에 그쳤다는 평가도 있다. 대법관들을 설득해 다수의견을 끌어낼 자신이 있나.
“어느 시대에나 흐름이 있다. 나 혼자만의 의견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인 의견이 있다. 그리고 최근 취임하신 대법관들 중에는 사회적 소수를 위해 좋은 판결을 하신 분들도 많다. 반면 균형을 고려해 되신 (보수적인) 분들도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본래 다양하게 구성된다. 이런 바탕에서 토론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언론노동자의 근로조건에
공정방송이 포함되는지 등
개선 필요한 것들 훑어보려
- 대법관이 모든 사건에 집중할 수 없다. 교수 출신 양창수 전 대법관은 민법 분야, 검사 출신 안대희 전 대법관은 형사 분야에서 평소 문제의식을 풀었다. 염두에 둔 사건들이 있나.
“노동사건 판례들을 전체적으로 재검토해보려 한다. 시급히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부터 훑어볼 예정이다. 가령 헌법 33조 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돼 있다. 여기에서 근로조건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법원이 정하고 있다. 언론노동자의 근로조건에 공정방송이 포함되는지, 교육노동자에게는 그 조건이 어디까지인지 등이 재검토되어야 한다.”
-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사건에서 기각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김이수 재판관은 헌법재판소장 동의가 부결됐다. 똑같이 기각의견을 주장한 김선수 변호사는 대법관이 됐다.
“그 사건을 수임했다고 의뢰인의 노선까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변호사다. 의뢰인의 사회적 평판이 나쁘다는 이유로 수임을 거부해서는 안된다는 유엔 인권지침도 있다. 변호사는 법관을 설득해 의뢰인이 원하는 결론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법관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고 변호사가 예단해 주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결과적으로 우리 주장을 (김이수 재판관이) 소수의견으로 받아들였다.”
- 김선수 변호사가 왜 통진당 사건을 수임했는지 의아하다는 얘기도 많았다. 내란음모 혐의 형사사건은 통진당과 가깝다는 변호사들이 수임했는데, 정당해산 심판만 그쪽에서 맡지 않았다.
“통진당에서 정당해산 심판을 대리해달라고 연락이 와서 고민을 많이 했다. 당시 해야 할 업무도 많았는데 그렇다고 평소 교류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정당의 노선을 문제 삼는) 정당해산은 통진당과 무관한 사람에게 맡겨야 전략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헌재가 변론기일을 2주마다 잡는 바람에 1년 동안 다른 일은 거의 못했다. 청구인인 법무부는 자료조사도 용역을 맡겼지만 우리는 사무실을 유지하면서 이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법관 출신과 견해차 있다면
결국 국민 관점서 생각해야
나 혼자만의 의견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인 의견을 갖고
다른 대법관들과 토론할 것
- 지난해 시작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재판거래 의혹으로 번진 상태다. 사법부가 자체 해결하기에는 어려운 단계라는 지적이 많다.
“재심은 요건이 정해져 있는데 여기에 해당하는지 의문이다. 따라서 사회가 전체적으로 노력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원이 잘못했으니 법원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할 문제는 아니다. 당장 KTX 해고승무원 재판 문제도 일단은 법원 밖에서 해결이 됐다. 특별법으로 재심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도 국회가 움직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 대법관은 재판도 하지만 사법행정의 책임자이기도 하다. 대법관회의 구성원으로서 사법행정의 주요 사안을 결정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기획추진단장도 지냈는데.
“법관 임용 방식이 바뀌어 이제는 법조경력이 10년인 사람만 판사가 된다(2013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돼 2018년 현재는 경력 5년 이상). 이를 법조일원화라고 하는데 (미국, 독일 등 외국처럼) 판사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전보인사를 하지 않게 된다. 기존의 대법원장 인사권이 줄어들게 된다. 그러면 남는 문제는 법관 선발 부분이다. 과거와 같은 성적순 선발이 아니어서 공정성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재판거래 의혹 관련 사건들
사회 전체가 노력해 풀어야
민변 땐 앞장서서 주장·요구
이젠 실정법 테두리서 판단
- 1988년부터 30년 동안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소송은 물론이고 입법 촉구, 각종 성명까지 폭넓은 사회운동을 해왔다. 대법관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데.
“이제 대법원에 들어가면 활동영역도 축소된다. 각종 사회 부문 활동은 전혀 하지 않게 된다. 대법관으로서의 해석론에 관여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그나마도 (소극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민변 시절에는 앞장서서 모든 형태로 주장하고 요구했다. 하지만 대법관은 그런 입장이 아니다. 실정법의 테두리에서 판단해야 한다. 실정법이 헌법 위반이라고 의심되어도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을 할 뿐이다. 앞으로 6년 임기 동안 대법관으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