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정보 보고는 사법행정”…재판 개입 처벌 못한다는 법원

이혜리 기자

내로남불

정부 부처든, 대기업이든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면 수사가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뻗어나갈지 궁금해한다. 검찰 수사의 향배에 따라 그 조직은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을 수도, 큰 위기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이 무슨 수사를 하는지 밖에선 알 방법이 없다. 참고인이나 피의자의 검찰 진술 같은 세밀한 수사 정보들은 물론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으로 있으면서 영장 담당 판사들로부터 수사 정보를 넘겨받아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로 기소된 신광렬 판사 사건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이 사건이 발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법원’이기 때문이다. 헌법은 법관이 발부하는 영장에 의해서만 강제수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검찰은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판사에게 수사 과정에서 수집한 증거를 제출한다. 이 절차에 따라 법원은 어느 조직도 취득하지 못하는 수사 정보를 자연스럽게 취득한다.

‘정운호 게이트’ 관련 수사 정보
판사가 법원행정처에 보고
법관의 독립성 침해한 사건

이 수사 정보들은 마음대로 활용해도 되는 것일까.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는 지난 13일 신 판사와 영장 담당 판사들인 조의연·성창호 판사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수사 정보 보고가 ‘사법행정상 필요’에 의해 이뤄져 위법하지 않다는 게 무죄의 주요 이유다.

재판부는 사법부의 신뢰 저하를 막기 위해, 또는 국회와 언론에 대응하기 위해 수사 정보를 법원행정처에 보고할 수 있다고 했다. 법원이 말하는 사법행정상 필요는 무엇인가, 그 사법행정은 과연 시민을 위한 것인가.

■ 면죄부가 된 사법행정

재판부는 신 판사가 영장 담당 판사들에게 받은 일부 정보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고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정운호 게이트’ 관련 검찰 수사가 진행되던 2016년 5월 3건, 8월 1건이다. 문건에는 피의자와 참고인의 진술과 증거의 내용, 검찰의 수사 상황 등 정보가 적혀 있었다.

재판부는 수사 정보 보고가 ‘사법행정상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면서 판결문에 이렇게 적었다. “정운호 게이트 사건과 같이 전관 변호사 또는 비위 법관으로 인해 사법부의 재판권 행사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는 사건이 발생한 경우,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이나 담당자는 사건의 진상을 신속히 파악해 사법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거나 추락을 방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고 또한 그러한 업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

그러면서 사법행정권자가 취해야 하는 3가지 조치를 예로 들었다. ‘비위 법관의 직무배제 등 인사조치’ ‘언론이나 정치권 등에 대해 정확한 자료 제공’ ‘향후 재발방지 대책 수립’이다.

재판 과정에서 나타난 자료들에 의하면, 당시 법원행정처는 검찰 수사에 앞서 선제적으로 정보를 파악하고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검찰이 뇌물수수 의혹을 받던 김수천 판사 수사를 본격적으로 확대한 것은 그해 8월이다. 5월엔 최유정 변호사와 브로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됐다. 언론에서 법관 연루 의혹을 제기하기는 했지만, 검찰이 공식적으로 법원에 공무원범죄 수사개시 통보를 하진 않은 상황에서 신 판사는 임 전 차장에게 수사 정보를 보냈다.

임 전 차장이 기획조정실 심의관 김민수 판사에게 정운호 게이트 대응에 참고하라며 건네줬다는 ‘최민호 판사 사건 대응 최종보고서’ 문건에는 “면밀한 수사 상황 점검 및 상황 발생 시 신속한 대응전략 수립-윤리감사관실·기획조정실”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정작 법원 감사위원회는 2016년 5월17일 검찰 수사가 끝날 때까지 김 판사 등 3명에 대한 내부 조사를 미루자는 취지의 ‘조사 추정 권고’를 내렸다. 법원 감사위원회는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비위 법관 감사가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막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법원행정처도 비위 법관 의혹에 관한 국회 질문에 이 조사 추정 권고를 이유로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는 쪽으로 계획을 세웠다. 윤리감사관실 심의관이었던 서경원 판사가 국회 국정감사에 대비해 만든 예상답변 문건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대법원 입장으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법원에서 별도로 조사하는 것은 부적절한 측면이 있어 자체 조사를 자제해 검찰의 수사 진행 과정 및 결과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적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해 8월10일 윤리감사관실은 김수천 판사를 불렀다. 이때는 검찰이 김 판사를 한번도 부르지 않은 때였다. 김현보 당시 윤리감사관은 김 판사를 대면해 뇌물수수 의혹에 대해 물었다. ‘김 판사가 입건되기 전이라는 것을 몰랐느냐’는 검사 질문에 김 전 윤리감사관은 “언론에 계속 보도가 되고 있었고, 전체적인 상황을 저희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불렀다”고 했다.

윤리감사관실은 그해 8월9일자 김 판사에 대한 153쪽짜리 검찰의 수사보고서를 통째로 입수했다. 검찰은 이 수사보고서도 신 판사가 임 전 차장에게 줬다고 봤다. 윤리감사관실이 수사보고서를 토대로 자신에 대한 수사 상황을 모르던 김 판사를 조사했고, 이는 김 판사의 증거인멸 시도로 이어져 수사에 장애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김 판사는 윤리감사관실 조사를 받은 직후 브로커에게 자신의 딸 명의 계좌에 입금된 자기앞수표에 대한 허위진술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수사보고서는 신 판사가 임 전 차장에게 전달했다는 점 자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했다. 받은 사람은 있는데 준 사람이 없다는 이번 판결로 수사보고서 출처는 미궁에 빠졌다.

■ 수사기록 복사도 통상적?

영장 기록 복사해 넘긴 혐의
비밀누설죄 해당 안된다며
‘사법행정상 필요’ 무죄 선고

조·성 판사와 함께 2016년 영장을 담당했던 한정석 판사는 “(신 판사가 정운호 게이트 수사기록 중) 판사들과 관련된 부분을 알려달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한 판사는 수사기록 일부를 신 판사에게 직접 복사해줬다고 했다.

“증인은 신 판사가 자료를 달라고 요청해서 복사해줬던 것인가요, 아니면 증인이 알아서 신 판사에게 먼저 복사를 해줬던 것인가요?”(이주용 검사)

“(신 판사가) 복사를 해달라고 말씀하셨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제가 스스로 시간 절약을 위해서 (복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한 판사)

“검찰의 영장 청구기록이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돼 증인이 결정을 하기 전 기록 중 일부를 증인이 복사했다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휴일에 당직을 하면서 영장을 처리했던 박모 판사도 증인으로 나와 성 판사 요청으로 수사기록을 복사해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박 판사는 “(성 판사가) 김수천 판사 관련자들의 진술 내용을 복사해줬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한 기억이 난다”며 “조서를 복사해 성 판사에게 전달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 같은 정보 보고는 통상적일까. 다른 진술들도 있다. 신 판사의 직전 형사수석부장이었던 임성근 판사는 검찰 조사 때 영장 판사로부터 사건의 구체적 내용을 전달받아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저는 그런 방식으로는 보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 심의관으로 근무하며 주요사건 보고문건을 작성한 박성준 판사도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일선 법원의 재판부에 직접 연락해 자료 제공을 요청한 적은 없다고 했다. 법관 독립을 해친다는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이유가 무엇이든지간에 재판부에 특정 사건에 관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법원 내 불문율이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인 2018년 9월 대법원은 사건에 대한 정보보고의 근거가 됐던 ‘중요사건의 접수와 종국 보고 예규’를 전면 폐지하기도 했다. 예규에 의하더라도 수사 정보나 재판의 상세한 내용을 법원행정처에 보고할 수 있는 근거는 없지만, 대법원은 “내부적 재판 독립 침해에 대한 우려나 권위적인 사법행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돼왔다”면서 폐지를 결정했다. 이번 무죄 판결대로면 예규 폐지는 무의미한 셈이다.

■ 법관 독립 침해, 어떻게 처벌하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
독립성 침해 판결과 정면 배치
‘법관 피고인’ 제 식구 감싸기
죄형법정주의 원칙의 역설

일선 재판에 개입한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된 임성근 판사에게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송인권)는 지난 14일 무죄를 선고했다. 위헌적인 재판개입은 있었지만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이 판결은 ‘독립’과 ‘간섭’이 문제된 다른 사건들에 대한 법원 판단과 비교해볼 수 있다.

‘독립’이 문제된 대표적인 사건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청와대가 좌파 예술인 지원을 배제하라는 지시를 내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의 ‘독립성’을 침해한 행위에 직권남용죄가 적용됐다. 법원은 청와대의 지원 배제 지시가 예술위 등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위헌적이고 위법한 행위라고 했다. 각 정부 부처에 지시와 협조 요청을 할 수 있는 비서실장과 청와대 수석 등의 일반적 직무권한(직권)을 남용했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KBS 세월호 참사 보도에 ‘간섭’한 혐의(방송법 위반)로 유죄 판결을 확정받은 이정현 의원 사건도 있다. 이 사건에서 이 의원 측 변호인은 “31년 이상 한번도 적용된 적이 없고 의미도 애매한 법률조항 위반으로 기소해 현역 국회의원을 처벌하는 것은 정치적 반대파 죽이기에 이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가 호된 지적을 받았다. 법원은 “잘못된 상황을 그대로 버려둬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권력의 언론 간섭이 계속되도록 용납하는 것이야말로 이 사회 시스템의 낙후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임 판사 사건의 재판부는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직권이 존재해야 하는데, 법관의 독립 원칙상 사법행정권자에게는 재판업무에 관한 직무감독권이 없다는 논리를 댔다. 남용할 직권이 없으니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직권’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은 재판부마다도 다른 상황이다.

직권남용죄가 적용됐지만 무죄가 선고된 사례 중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기업에 특정인 채용을 요구한 행위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개인 기업인 자동차부품회사 다스의 소송 지원을 부하직원들에게 시킨 행위가 있다. 이 행위들은 사적인 이권 행위로 볼 여지가 있지만, 임 판사의 재판개입은 그와는 또 다르다.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사건은 과연 무죄로 끝내야 할까. ‘형벌은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은 법관 신분의 피고인에게만 너그러운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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