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윤석열 수사 선거 영향 없도록 하겠다' 약속···가능할까?읽음

박은하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 수사가 대선에 영향을 미친다는 논란이 없도록 하겠다는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의 약속은 실현가능할까. 김 처장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에서 “윤 전 총장 수사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지만 논란을 피할 구체적 방법은 말하지는 않았다. 윤 전 총장에 대한 정치권의 공세가 커질수록 ‘김 처장의 약속’에도 관심이 쏠린다.

김 처장의 기자회견 언급과 21일 공수처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 처장이 생각하는 정치 중립적 수사는 ‘조용한 수사’로 요약된다. 김 처장은 당시 회견에서 “수사대상이 누구이건 예단이나 선입견 없이 수사를 한 끝에 범죄혐의가 인정되면 공소제기를 하고, 혐의가 인정되기 어려우면 떳떳하게 불기소 결정을 하면서 국민 앞에 결론에 이르게 된 이유를 소상히 밝히는 것이 수사기관의 책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간수사 과정이 새어나가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는 대신 기소를 앞두고 기소 혹은 불기소 사유를 언론에 설명하겠다는 것이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17일 경기 과천 정부과천청사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17일 경기 과천 정부과천청사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 처장은 지난 2월 관훈클럽 포럼에서 “선거를 앞두고 영향을 미칠 만한 사건을 수사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는 ‘한명숙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과 같은 인지사건을 수사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검찰은 2009년 12월 한 전 총리를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수사했으나 재판에서 유죄 입증이 어려워지자, 이듬해 4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추가 수사했다. 한 전 총리가 민주당 후보로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하려는 시점에 임박해 한신건영 압수수색 사실이 밝혀졌다. 선거는 47.43%를 얻은 오세훈 당시 한나라당 후보(현 서울시장)가 한 전 총리(46.83%)를 가까스로 이겼다. 하지만 수사가 선거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미지수이다. 한 전 총리는 선거기간 내내 여론조사에서는 10%포인트 이상 뒤지는 것으로 나왔는데, 검찰 수사가 막판 민주당표를 결집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김 처장은 “공수처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사건을 모두 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했다. 이는 2007년 대선 기간에 벌어진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의 BBK 주가조작 및 횡령 사건 수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적극적 공세로 수사가 시작됐으나 검찰은 대선을 2주 앞둔 2007년 12월5일 BBK 전 대표 김경준씨를 횡령 등 혐의로 기소하고 이씨를 무혐의 처분했다. 선거를 앞두고 의혹에서 해방시켜준 것이다.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씨의 득표율은 48.7%를 기록, 당시 정동영 민주통합당 후보(26.2%)를 크게 앞질러 애초 BBK 의혹이 선거 변수가 되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br />BBK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은 김경준 전 BBK 대표의 누나 에리카 김이 지난 2011년 3월 조사를 받은 뒤 서울지검을 나서고 있다. 정지윤 기자


BBK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은 김경준 전 BBK 대표의 누나 에리카 김이 지난 2011년 3월 조사를 받은 뒤 서울지검을 나서고 있다. 정지윤 기자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수사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방법은 없다”며 “‘당락을 바꿀 정도의 영향력을 갖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의 경우 지지층이 ‘경제살리기’란 염원으로 부패 문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데다 뿌리 깊은 정당 지지가 바탕이 됐다”며 “윤 전 총장의 경우 ‘엄정하게 부패를 수사하던 공직자’ 이미지를 바탕으로 선거에 나선 데다 정당과 결합된 지지층을 갖고 있지 않아 수사 결과가 더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사가 당락의 변수가 될 정도로 크게 영향을 미친 사건은 ‘병풍 사건’을 들 수 있다. 2002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아들 이정연씨가 고의로 병역을 기피했다는 의혹 보도 이후 5개월 간 수사가 진행됐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선거는 노무현 전 대통령 승리로 귀결됐다. 병역문제라는 이슈 자체의 파급력이 컸던 것으로 평가된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윤 총장의 경우 고발사건이지만 직권남용 혐의인데, 해석이 크게 좌우된다”라며 “오히려 공수처에 역풍을 가져올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수사기관의 선거개입 논란이 있었다. 2016년 10월28일 대선을 11일 앞두고 제임스 코미 당시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이메일 스캔들’을 재수사하겠다고 발표하자 파장이 있었다. 민주당은 사실상 선거개입이라 반발했으며 박빙이었던 일부 주에서는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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