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리뷰, 검찰 vs 삼성

창과 방패 싸움 “국정농단의 10배 규모”

전현진 기자
지난해 9월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이복현 부장검사가 이른바 ‘삼성 불법합병 사건’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복현, 김영철, 최재훈 부장검사다. 김 부장검사는 이 사건의 공소유지를 전담하는 특별공판2팀장을 맡고 있다. 이·최 부장검사는 인사 이동했지만 재판 때마다 법정에 함께 출석한다. 김기남 기자

지난해 9월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이복현 부장검사가 이른바 ‘삼성 불법합병 사건’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복현, 김영철, 최재훈 부장검사다. 김 부장검사는 이 사건의 공소유지를 전담하는 특별공판2팀장을 맡고 있다. 이·최 부장검사는 인사 이동했지만 재판 때마다 법정에 함께 출석한다. 김기남 기자

■검찰의 창

서울고검 12층은 2012년 청사 신축 이래 특수부 검사들의 ‘별동대’가 자리 잡아 왔다. 2015년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 2016년 ‘부패범죄특별수사단’, 2019년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이 대표적이다. 지금은 서울중앙지검 특별공판2팀이 쓴다. ‘삼성 불법 합병 의혹 사건’을 맡고 있는 검사들이다.

특별공판2팀은 이 사건을 수사한 경제범죄형사부 소속 검사들이 전출자를 제외하고 그대로 이동해 꾸려진 팀이다. 수사 기록이 방대하고 피의자·참고인 조사가 수백명을 상대로 이뤄졌기 때문에 수사 검사들이 직접 공소유지를 담당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수사팀이 수사에 착수해 기소하기까지 1년 10개월이 걸렸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서 수사 중단·불기소 권고했지만 수사팀은 기소했다.

특별공판2팀이 12층으로 입주한 건 올해 2월이다. 지난해 9월 공소제기 이후 서울중앙지검 청사 곳곳에 검사들이 쪼개져 있었는데, 12층을 사용하던 ‘세월호 특별수사단’이 활동을 종료하면서 한 곳에 모이게 됐다. 재판이 본격화된 것도 그 무렵이다. 매일같이 팀장 김영철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3기)의 방에 모여 회의를 갖는다. 같은 층에 모여 있어 전처럼 낭비되는 시간이 줄었다.

특별공판2팀은 김 부장검사 등 검사 8명으로 이뤄졌다. 이복현 대전지검 형사3부장(32기)과 최재훈 춘천지검 원주지청 형사2부장(34기) 등 수사팀에 있다 인사발령이 나서 떠난 이들까지 10~11명의 검사들이 함께 재판을 준비하고 법정에 출석한다.

김영철 부장검사는 지난 2013년 서울중앙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 등에서 근무해 자본시장 관련 사건에 능숙하다. 자본시장의 복잡한 이슈들이 얽혀있는 삼성 불법 합병 의혹 사건은 그에겐 전문 분야인 셈이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참여한 바 있다. 그때도 삼성 관련 수사를 맡았다. 수사 당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이었던 이복현 부장검사도 자타공인 ‘특수통’이다. ‘국정원 댓글 수사팀’ ‘박영수 특검팀’에 파견됐다. 국정농단 사태 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맡았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의 공인회계사이다.

검찰에서 손꼽는 특수통들이 모였지만 특별공판2팀은 비직제 부서다. 사법농단 사건을 전담하는 특별공판1팀과 마찬가지로 검찰 정식 직제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재판이 끝날 때까지 유지될 지 장담할 수 없다. 법무부나 대검에서도 이 부서를 언제까지 유지해야 하는지 의견이 오간다. 조만간 있을 검찰 인사에서도 구성원들의 이동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의 방패로 나서는 막강한 변호인단과도 맞서야 한다.

김·장 법률사무소(김앤장)는 ‘삼성 불법 합병 의혹 사건’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변호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연합뉴스

김·장 법률사무소(김앤장)는 ‘삼성 불법 합병 의혹 사건’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변호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의 방패

삼성 변호인단에는 쟁쟁한 대형 로펌들이 모여들었다. 피고인 11명은 소속에 따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삼성물산·삼성바이오로직스 세 그룹으로 나뉜다. 김·장 법률사무소(김앤장)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지성 전 부회장, 장충기·김종중 전 사장 등 옛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간부를 변호한다. 여기에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등도 선임됐다. 삼성물산 관계자를 위해서는 법무법인 화우가 선임됐다. 김앤장과 법무법인 세종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변호한다. 매번 법정에 출석하는 변호인들만 30명 정도다.

선임계를 내지 않았더라도 로펌 별로 이 사건을 전담하는 인력이 추가로 투입된다고 한다. 기록 검토부터 자료 복사 등 재판 준비를 보조하기 위해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김앤장 같은 경우는 전체적으로 투입된 인력이 100명은 되지 않겠냐는 말도 나왔다. 김앤장 관계자는 “재판을 준비하는 인원은 수시로 변한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의 수는 검찰 공판팀보다 훨씬 더 많다. 검찰 특별공판2팀은 검사 8명과 수사관 4명, 여기에 인사로 전출된 검사 2~3명, 모두 합해도 20명이 채 안 된다.

변호인단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건 이재용 부회장 등을 변호하는 김앤장이다. 김앤장이 법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건 앉은 좌석 배치만 봐도 알 수 있다. 검사들과 마주보고 앉는 피고인석 맨 앞 줄의 변호인석에는 5~6명이 앉는데, 이 중 3~4명은 항상 김앤장 소속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김앤장은 삼성과 불편한 관계였다는 평가도 있었다. 2011년 애플과 삼성의 특허전쟁에서 애플을 대리해 삼성과 싸운 게 김앤장이었다. 2017년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이재용 부회장이 국내 1위 김앤장이 아니라 2위권인 태평양을 선임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어쨌든 지금 삼성의 방패는 김앤장이다. 법정에서 검찰과 공방을 벌이는 건 주로 김앤장의 김유진(22기)·하상혁(26기)·김현보(27기) 변호사다.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를 거친 엘리트 법관 출신이다.

하상혁 변호사는 지난 3일 4차 공판기일부터 시작된 변호인 측의 반대신문을 이끌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맡기도 한 법조계 원로인 하경철 변호사의 아들이다.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김현보 변호사에 대해서도 “연수원 성적 1위를 차지해 대법원장상을 받게 됐다”는 예전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두 사람은 2013년 무렵부터 서울고법 같은 재판부에서 근무했다. 같이 근무한 한 고위법관은 이들이 “형사·민사·행정 가리지 않고 잘 하는 ‘올 라운드 플레이어’”라며 “아주 샤프한(명석한) 분들인데, 법원 입장에서는 아까운 사람들이다. 옛날 말로 하면 법원장도 하고 대법관도 할 인재들”이라고 했다.

검찰은 ‘삼성 불법 합병 의혹 사건’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위법한 수단을 동원해 합병한 사건으로 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이 부회장이 검찰에 소환된 당일 서울 서초구 강남역 부근의 삼성타운 모습. 이준헌 기자

검찰은 ‘삼성 불법 합병 의혹 사건’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위법한 수단을 동원해 합병한 사건으로 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이 부회장이 검찰에 소환된 당일 서울 서초구 강남역 부근의 삼성타운 모습. 이준헌 기자

■국정농단 사건의 10배 파급력?

검찰과 삼성의 대결은 법정 안팎에서 이들을 대표하는 검사와 변호사의 싸움일 수밖에 없다. 피고인이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의 총수와 임직원들이지만 법정에서는 출석을 확인할 때를 제외하면 발언하는 일이 거의 없다. 실제 공방은 검사와 변호사들의 몫이다.

지난 3월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재판장 박정제) 심리로 열린 2차 공판준비기일은 본격적으로 공방이 벌어진 사실상의 첫 재판이었다. 공판준비기일은 앞으로의 재판 절차를 논의하는 자리다. 이날 이복현 부장검사는 수시로 마이크를 잡고 “잠시 한 말씀 드려야겠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변호인이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면서 변론요지를 설명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었다.

삼성 측 변호인들도 강하게 맞받아쳤다. 김현보 변호사는 “지금까지 수사 대상으로서 검찰 수사에 수동적으로 대응해왔지만, 이제는 대등한 당사자 입장에서 검찰 수사의 무리함과 피고인들의 무고함을 밝히고자 한다”고 했다. 이후 재판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계속 연출됐다.

검찰과 삼성, 자존심 강한 두 조직이 맞붙기 때문만은 아니다. 검찰은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다. 당시 합병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이뤄졌고, 그 목적이 이재용 부회장이 합법적인 비용을 내지 않고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수많은 소송을 일으켰다. 대부분 삼성물산의 주주로 제일모직과의 합병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합리한 비율로 이뤄졌다는 내용이다. 일성신약 등 삼성물산의 국내 주주는 합병 무효를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1심에선 패소했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투자자·국가 소송(ISD)도 두 건이 있다. 미국의 사모펀드 엘리엇과 메이슨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이다. 정부가 자본시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합병으로 삼성물산 주주인 자신들이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만약 합병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 등의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검찰의 주장이 인정된다면, 일련의 소송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이 확정된 상태다. 지금 진행되는 재판과 비교하면 쟁점이나 경제적 파급력은 더 적다는 평가가 있다. 검찰 관계자는 “사건 기록이 총 19만쪽, 400권 분량”이라며 “(삼성 관련) 국정농단 사건의 기록은 이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 되는 규모였다”고 말했다.

2015년 기준으로 정리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후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화를 그린 도표. 경향신문 자료

2015년 기준으로 정리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후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화를 그린 도표. 경향신문 자료

■아직 ‘전초전’…언제 끝날지 모를 장기전의 시작

2차 공판기일부터 증인으로 출석한 삼성증권 전 직원 한모씨는 2012년 ‘프로젝트G’ 문건의 작성자 중 한 사람이다. 한씨는 2004년부터 2018년 초까지 삼성증권에서 일했고, 기업금융을 담당했다. 프로젝트G는 당시 주요 대선 후보들이 모두 이야기했던 순환출자 금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의 시행이 예상되자 미전실 주도로 꾸려진 ‘지배구조 개선 TF’가 만든 문건이다. 삼성증권 소속으로 TF 구성원이던 한씨는 이후 수년간 이어진 지배구조 개편작업에 참여했다.

한씨의 증인신문은 앞으로 진행될 재판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해준다. 검찰과 삼성 측의 선명한 입장 차이가 먼저 눈에 띈다. 검찰은 이 문건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강화를 위한 일종의 ‘승계 계획안’으로 본다. 총수 일가 등 그룹 지분이 적은 삼성물산을 총수 일가의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과 합병해 최종적으로 삼성전자 등 그룹 전체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가 목적이라는 것이다.

삼성 측에선 이 문건이 규제 도입 전 그룹의 지배구조가 약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개선안이고, 당시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목적으로 만든 문건은 아니라고 했다. 당시 시점을 기준으로 지배구조를 확고히 하도록 논의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고, 당시 대주주가 우연히도 총수 일가였을 뿐이라는 얘기다. 또 규제 강화를 대비한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라는 주장도 폈다. 결과적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됐다 하더라도 그것을 범죄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게 변론의 핵심이다.

지난 18일 6차 공판이 진행됐다. 앞으로 매주 목요일 재판이 진행된다. 검찰이 신청할 예정인 증인은 약 250명이다. 매주 한 차례 재판이 진행되는데, 한 기일에 한 명씩만 신문한다고 해도 최소 250번의 재판을 해야 할 수 있다. 총 250주, 1년이 52주이니 5년 이상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첫 증인인 한씨의 신문은 검찰의 주신문과 변호인의 반대신문까지 이미 5차례 진행됐고, 앞으로 2차례 더 진행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열린 재판은 언제 결론이 날지 모를 초장기 법정 다툼의 전초전에 불과한 셈이다. 검찰과 삼성의 법정 공방 하이라이트는 결국 미전실 임직원들에 대한 증인신문이 될 것이다. 합병 계획과 각종 자문이 결국 미전실로 모여 이재용 부회장에게 보고됐다는 게 검찰의 핵심 주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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