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물건이 아닙니다”…민법 개정안 국회 통과하면 무엇이 바뀌나

허진무 기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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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2016년 8월 부산 해운대구의 한 건물 옥상에서 B씨가 키우는 수컷 강아지가 자신이 키우는 암컷 강아지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컷 강아지를 아래로 집어던져 죽였다. A씨는 형법상 재물손괴죄와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권기철 판사는 2017년 1월 A씨에게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판결문의 ‘범죄사실’에는 “시가 5만원 상당 재물의 효용을 해했다”라고 적혔다.

법무부가 19일 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인정하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동물은 그 자체로 법적 지위를 인정받게 된다. 동물을 학대하거나 반려 동물이 피해를 입을 경우 받는 처벌·보상의 수위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은 민법 제98조의2를 신설해 제1항에서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규정했다. 현행 민법 제98조는 “물건이라 함은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말한다”고 규정했다. 현재 법원·검찰·경찰은 동물이 유체물인 물건에 해당한다고 해석해 동물학대 사건에 통상 ‘재물손괴죄’와 ‘동물보호법 위반죄’를 적용한다. 재물손괴죄는 타인이 소유한 물건을 망가뜨리는 범죄다. 법원이 동물학대에 징역형을 선고하는 경우는 드물어 대부분 벌금형에 그쳤다.

개정안은 동물을 다루는 다른 법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신설 조항의 제2항에서 “동물에 대해서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규정했다. 다만 민법상 동물이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인정되면 법 체계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동물학대 범죄에 재물손괴죄 대신 다른 법률을 적용하거나 동물보호법 위반죄 형량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동물상해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개정안은 ‘동물’이나 ‘반려동물’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 동물보호법상 ‘동물’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로,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상 ‘반려동물’은 ‘개’ ‘고양이’ ‘토끼’ ‘기니피그’ ‘햄스터’ ‘패럿’ 6종류로 정해져 있다. 동물보호법은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 제정됐기 때문이다. 동물의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은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 동물의 권리 등에서 사회적 논의와 변화의 폭이 클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은 법무부가 지난 2월 발족한 ‘사공일가(사회적 공존을 위한 1인가구) TF(태크스포스)’가 논의해 만장일치로 제안했다. 법무부는 2018년 12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89.2%가 ‘물건과 동물을 구별해야 한다’고 응답하는 등 사회적으로 동물을 보호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판단했다. 사공일가 TF는 반려동물을 강제집행이나 담보물권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안도 논의하고 있다. 사람이 동물을 죽거나 다치게 한 경우 가해자에게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도록 법률적 근거도 마련하는 중이다.

정재민 법무부 법무심의관은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체계와 생명으로 바라보는 체계는 동물 학대에 대한 처벌 수위나 피해 보상 수준이 같을 수 없다”며 “이번 법안은 새로운 제도와 추가 법안을 만들 수 있는 ‘물꼬’를 터주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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