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쥴리벽화…남은 건 명예훼손·재물손괴 수사와 처벌 여부읽음

박용필 기자
4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 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가 그려져 논란이 일었던 서울 관철동의 한 중고서점 외벽에 서점 직원이 다시 흰색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앞서 논란이 일어 흰색 페인트를 칠했지만 그 위에 다시 낙서로 공방이 이어지자 다시 덧칠을 했다. /강윤중 기자

4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 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가 그려져 논란이 일었던 서울 관철동의 한 중고서점 외벽에 서점 직원이 다시 흰색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앞서 논란이 일어 흰색 페인트를 칠했지만 그 위에 다시 낙서로 공방이 이어지자 다시 덧칠을 했다. /강윤중 기자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한 중고서점 앞에 그려져 있던 이른바 ‘쥴리 벽화’가 지난 2일 서점 측의 흰색 페인트칠로 자취를 감췄다. 쥴리 벽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벽화 그림과 덧칠에 대한 고소·고발 등으로 인한 수사는 이제 시작 단계다. 벽화 제작을 의뢰한 서점 주인의 ‘명예훼손죄’와 벽화를 훼손한 보수 유튜버의 ‘재물손괴죄’ 처벌 여부가 쟁점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팬클럽 ‘열지대’의 염순태 공동대표는 4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점 대표 A씨를 명예훼손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A씨는 앞서 지난 1일에도 시민단체에 의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됐다. 또 지난달 31일에는 한 보수 성향의 유튜버가 벽화에서 ‘쥴리의 남자들’이라는 문구와 여성의 얼굴 그림을 페인트로 덧칠했다가 서점 직원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조사를 앞두고 있다. 경찰은 재물손괴 혐의가 확인되면 정식으로 입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먼저 명예훼손죄의 경우 혐의 자체는 성립할 가능성이 높다. ‘쥴리 벽화’는 대중이 볼 수 있는 공간에 그려졌고, ‘쥴리의 남자들’ 등의 구체적인 문구도 삽입돼 있었다.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인 ‘공연성’과 ‘사실 또는 허위 사실의 적시’에 모두 해당될 소지가 크다. ‘풍자’로 인정받기도 어려워보인다. ‘풍자냐 명예훼손이냐’를 가르는 법적 쟁점 중 하나는 ‘재해석’이나 ‘추상화’ 여부다. 2012년 당시 박근혜 대선 후보가 백설공주옷을 입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사과를 들고 있는 풍자 포스터 역시 재판에 넘겨졌지만, “재해석’을 통한 예술작품”이라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쥴리 벽화’의 경우 떠도는 풍문을 그대로 전달한 수준이어서 풍자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위법성 조각사유’ 입증도 쉽지 않다. ‘진실이거나 진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거나 ‘공익을 위한 불가피성’ 등이 입증돼야 하지만 벽화 내용의 출처는 ‘유튜브 방송에서 나온 풍문’이다. 전직 고위공직자 배우자의 과거에 관한 풍문을 알리는 게 공익과 어떤 관련이 있는 지 역시 A씨가 직접 입증해야 한다.

다만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 의사에 반해 처벌할 수 없다. 앞서 지난달 28일 윤 전 총장과 부인 김씨는 벽화의 소재가 된 풍문을 다룬 유튜브 방송을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발했지만, 벽화에 대해선 ‘법적 대응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입장을 유지한다면 명예훼손죄 처벌은 불가능하다.

이에 비해 벽화 훼손에 따른 재물손괴 혐의는 처벌받을 가능성이 좀 더 높아보인다. 재물손괴죄는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다. 벽화로 명예훼손 등의 피해를 당한 당사자라면 ‘정당행위’나 ‘긴급피난’을 주장할 수 있지만, 해당 유튜버는 제3자다. 2017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을 나체 사진에 합성해 논란이 됐던 ‘더러운 잠’ 작품의 경우, 명예훼손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가 선고된 반면 그림을 부순 예비역 제독은 재물손괴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덧칠 당시 ‘쥴리 벽화’ 위에는 “맘껏 표현의 자유를 누리셔도 됩니다”라는 문구가 있었고 유튜버는 그래서 ‘칠했다’는 입장이다. 이것이 혐의 성립 여부에 영향을 줄지는 지켜봐야 한다.

‘풍자’나 ‘표현의 자유’의 근본 취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취지는 ‘진실의 규명’을 위한 것이기도 한데, 요즘은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풍문이나 단편적 사실을 증폭하는 수단으로 오용되는 측면이 있다”며 “오히려 진실을 가려 사회적 이익을 해치는 것은 물론 ‘여성 비하’나 ‘인격 말살’ 등으로 큰 피해를 안기는 만큼 표현의 자유를 제대로 누릴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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