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성폭력이라도 배상…대법 “피해 발현 시점이 기준”읽음

이효상 기자

‘체육계 미투 1호’ 초등 때 코치 상대 소송, 위자료 1억 지급 확정

“장래 손해 발생 여부 불확실하다고 배상 청구 못하는 건 부당”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는 성폭력 후유증으로 장애 진단을 받는 시점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체육계 미투 1호’로 알려진 전직 테니스 선수 김은희씨(30)가 가해자인 테니스 코치 A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억원의 위자료 지급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19일 확정했다.

김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01년부터 이듬해까지 4차례에 걸친 A씨의 성폭력 범행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었다. 김씨는 2018년 A씨를 상대로 1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손해배상 책임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는지 여부였다. 민법은 피해자가 손해를 인지한 날로부터 3년(단기소멸시효), 불법행위가 발생한 날로부터 10년(장기소멸시효)이 경과하면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한다고 규정한다. A씨 측은 마지막 성폭력 범죄가 2002년 8월 발생한 만큼 손해배상 청구 소멸시효가 이미 지났다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는 김씨가 A씨를 우연히 마주친 뒤 PTSD 진단을 받은 2016년 6월을 손해 발생 시점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성폭력 범죄로 인한 후유증 피해 진단 시점부터 10년 소멸시효를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역시 손해배상 책임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성범죄로 인한 정신적 피해가 성범죄가 발생한 직후 발현되지 않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성범죄 발생 일이나 일부 증상이 나타난 날짜를 손해가 발생한 시점으로 보게 되면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피해자는 (성범죄 발생) 당시에는 장래의 손해 발생 여부가 불확실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고, 장래 손해가 발생한 시점에서는 소멸시효가 완성돼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특히 피해자가 피해 당시 아동이었거나 가해자가 친족·선생님·코치 등 피해자를 보호하는 관계에 있는 경우 손해 발생 시점을 일률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장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한 날’은 객관적·구체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 즉 손해의 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할 수 있을 때”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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