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 사주 사건’ 손준성 검사 구속영장 기각

허진무 기자

‘방어권 침해’ 주장 받아들인 법원…고발 사주 수사 급제동

<b>피의자심문 뒤엔 ‘침묵’</b>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26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받은 뒤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이석우 기자

피의자심문 뒤엔 ‘침묵’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26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받은 뒤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이석우 기자

체포영장 기각 후 구속영장
공수처 승부수가 자충수로
‘수사력 부족’ 우려 현실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재직 시절 검찰의 ‘고발 사주’ 사건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법원이 26일 기각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손 검사가 출석을 미루자 한 차례도 소환 조사하지 않고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결국 자충수가 돼 공수처 수사에 급제동이 걸렸다. 공수처는 출범 이후 청구한 ‘1호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오점을 남겼다.

이세창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손 검사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진행한 뒤 공수처의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이 부장판사는 “피의자에 대한 출석요구 상황 등 이 사건 수사 진행 경과 및 피의자에게 정당한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 심문 과정에서 ‘향후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피의자 진술 등을 종합하면, 현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해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된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소환 조사 일정을 조율하던 중이었는데도 공수처가 무리하게 신병을 구속하려 했으며, 영장 청구 사실을 심사 하루 전날에야 통보해 방어권을 침해했다는 손 검사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공수처 수사팀(주임 여운국 차장검사)은 지난해 4·15 총선을 앞둔 시점에 부하 직원에게 여권 정치인과 언론인 고발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라고 지시하고, 김웅 국민의힘 의원(당시 미래통합당 후보)에게 4월3일과 4월8일 고발장을 전달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로 손 검사의 사전구속영장을 지난 23일 청구했다. 공수처는 중요 피의자인 손 검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계속 조사를 회피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출범 전부터 제기된 공수처의 ‘수사력 부족’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말도 나온다. ‘인권친화적 수사기구’를 자임한 것과 어울리지 않는 행보라는 비판도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날 논평에서 “최고 수사기관 중 하나인 공수처가 피의자의 방어권을 위한 적절한 기회와 시간을 보장하지 않고 인신을 구속하는 영장을 거듭 청구하는 등 국민 기본권을 침해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손 검사의 신병을 확보해 고발 사주 윗선으로 수사를 확대하려던 공수처의 구상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법원이 구속 필요성보다 피의자의 방어권에 무게를 둔 것은 공수처가 손 검사의 범죄 혐의를 충분히 소명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윗선’ 수사로 뻗어가기에 앞서 핵심 피의자인 손 검사의 범죄 혐의를 기초부터 다지는 게 급선무가 된 것이다. 손 검사와 연관된 다른 피의자들에 대한 조사도 어려움을 겪게 됐다. 국회 국정감사 이후로 소환 조사를 미룬 김웅 의원 등 다른 피의자들도 손 검사처럼 적극적으로 방어권을 행사할 공산이 크다.

고발 사주 지시 의혹을 받는 윤석열 전 총장이 국민의힘 대권 주자이고, 대선 후보 본경선이 다음달 5일 열리는 점도 공수처에 부담이다. 윤 전 총장 측은 손 검사가 전달했다는 고발장이 ‘괴문서’라며 여당이 제보를 사주한 수사라고 주장해왔다.

공수처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 본경선 전까지 수사 속도를 최대한 높이고, 본경선 이후에도 수사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고발 사주 의혹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흔드는 중대 사안이어서 실체적 진실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공수처는 손 검사에 대한 혐의를 보강한 뒤 영장 재청구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 내부에서 4월8일 고발장이 전달되는 경로에 있었던 김웅 의원, 정점식 의원, 조상규 변호사 등을 우선 조사하는 ‘우회로’를 택할 가능성도 있다. 윤 전 총장의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사법연수원 부원장)과 권순정 전 대검 대변인(부산지검 서부지청장)의 공모 여부, 윤 전 총장의 지시·묵인 여부를 밝히는 것도 공수처에 남겨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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