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재판 개입’ 임성근 탄핵심판청구 각하···헌정사상 첫 법관 탄핵 무산읽음

전현진·박용필·허진무 기자

2014~2015년 산케이 서울지국장 재판 개입

민변 집회 사건 판결문 수정·삭제 등 혐의

재판부 “이미 퇴직…파면 선고할 수 없어”

임성근 전 부산고법 수석부장판사. 연합뉴스

임성근 전 부산고법 수석부장판사. 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28일 ‘재판 개입’ 의혹을 받는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청구를 각하했다. 임 전 부장판사의 재판개입 행위에 대해 “중대한 헌법위반행위임을 확인한다”는 소수의견이 있었지만, 과반인 재판관 5인이 임 전 부장판사가 이미 퇴직해 탄핵 여부를 판단할 이익이 없다는 각하 의견을 냈다. 각하는 심판청구의 형식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내용을 심리하지 않고 배척하는 것을 말한다. 헌정 사상 첫 법관 탄핵 시도가 무위에 그친 것이다.

■다수의견 “이미 퇴직해 탄핵심판 이익 소멸”

탄핵심판 청구 각하에 찬성한 다수의견에는 이선애,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재판관이 참여했다. 이미선 재판관은 별개 의견으로 심판청구 각하에 동의했고, 문형배 재판관은 심판절차종료 의견을 냈다.

다수의견은 헌법 제65조4항과 헌법재판소법 제53조1항을 근거로 논리를 폈다. 이 조항은 탄핵 결정이란 ‘공직으로부터 파면’이라고 설명한다. 탄핵심판은 곧 ‘공직에서 파면할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이다. 다수의견은 “파면을 할 수 없어 탄핵심판절차의 목적달성이 불가능하게 된다면 탄핵심판의 이익은 소멸하게 된다”고 했다. 임 전 부장판사가 이미 퇴직했기 때문에 공직에서 파면할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청구인인 국회 측은 파면 여부와 상관 없이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가 위헌·위법한 것인지 판단해 탄핵 사유의 유무를 확인해야 할 이익이 있다고 했지만 이런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수의견은 “탄핵심판절차에서 손상된 헌법질서 회복을 위해 예정된 수단은 중대한 위헌·위법행위를 한 ‘공직자의 권한을 박탈하는 것’”이라며 “이 사건에서 본안심리를 마친다 해도 공직을 박탈하는 파면결정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가 됐음이 분명하므로 탄핵 심판의 이익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소수의견 “헌법수호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어”

유남석 헌재소장과 이석태, 김기영 재판관 등 3명은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가 중대한 헌법위반 행위임을 확인한다는 인용의견을 냈다. 이들은 “탄핵심판에서까지 면죄부를 주게 된다면,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여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추락시킨 행위에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을 용인하게 된다”고 했다. 재판 독립을 침해한 행위에 대해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수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탄핵심판의 이익이 없다’는 주장도 반박했다. 이들은 “사법부 내부로부터 발생한 재판의 독립 침해 문제가 탄핵소추의결에까지 이른 최초의 법관 탄핵 사건으로서 헌법재판소가 우리 헌법질서 내에서 재판 독립의 의의나 법관의 헌법적 책임 등을 규명하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법관의 재판상 독립침해 문제를 사전에 경고하여 이를 미리 예방할 수 있다”며 “이 사건은 헌법적 해명의 필요성이 인정되므로 심판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임 전 부장판사의 재판개입 행위가 헌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피청구인은 사실상 법관들의 사무분담이나 평정과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며 “용인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이뤄진 임 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 행위는 재판의 독립과 공정성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임 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은)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다”며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에 해당해 피청구인을 그 직에서 파면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임기 만료로 퇴직한 임 전 부장판사를 파면할 수 없는 만큼 “피청구인의 행위가 중대한 헌법위반행위임을 확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위반의 정도가 중대함에도 파면할 직을 유지하고 있지 않아 부득이 파면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의미”라며 “청구를 기각하는 판단과는 다른 판담임을 분명하게 밝힌다”고 덧붙였다.

■이탄희 의원 “헌재가 헌법수호기관 역할 포기”

헌재의 각하 결정 이후 임 전 부장판사는 “합리적인 결정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저로 인해 불필요한 오해와 논쟁을 초래하여 많은 분들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탄핵소추를 주도한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다수의견을 낸 재판관들이 본안에 대한 판단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헌법수호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했다고 보여 강한 유감”이라고 했다.

국회는 지난 2월4일 임 전 부장판사가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해 헌법상 국민주권주의, 적법절차 원칙, 법관 독립 등의 조항을 위반했다며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임 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하던 2014∼2015년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추문설’을 보도해 기소된 산케이 서울지국장 사건 등 일선 재판에 개입한 혐의(직권남용)로 형사재판에도 넘겨졌다. 1·2심 재판부는 임 전 부장판사에게 구체적으로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으므로 직권남용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법리를 적용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상고해 대법원이 심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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