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자신의 도피를 교사하는 건 도피교사 아니다"

박용필 기자
서울 서초동 대법원/박민규 선임기자

서울 서초동 대법원/박민규 선임기자

범인이 자신의 도피를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건 ‘범인도피교사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도피’를 방어권의 일종으로 본 것이다. 다만 타인에게 허위 자백을 강요하는 등의 행위가 있을 경우엔 처벌될 수 있다.

대법원 제3부(재판장 노정희 대법관)는 범인도피교사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1일 밝혔다.

절도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부산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A씨는 악성고혈압 등을 이유로 2018년 10월 한 달 간의 형집행정지 허가결정을 받아 석방됐고, 석방된 상태에서 형집행정지 연장신청을 했으나 불허됐다.

이에 A씨는 자신의 형집행정지 신원보증을 서 준 지인 B씨를 찾아가 B씨의 아들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해줄 것과 B씨의 어머니 집에 머물 수 있게 해줄 것을 요구했고, 1개월 반 가량 B씨 어머니의 집에 머물렀다. 이후 A씨는 범인도피 교사, B씨는 범인도피 혐의로 기소됐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A씨는 징역 4개월, B씨는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A씨가 B씨에게 자신을 도피하도록 해줄 것을 교사한 사실이 인정되고 B씨도 사법기관의 추적을 받는 A씨를 도피시킨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A씨는 항소했다.

2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범인 스스로 도피하는 행위는 처벌할 수 없고, 범인이 도피를 위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 역시 도피행위의 범주에 속하는 한 처벌되지 않는다”며 “범인의 요청에 응하여 범인을 도운 타인의 행위가 범인도피죄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도피 행위를 일종의 방어권으로 본 것이다.

또 “도움을 요청한 타인에게 허위 자백을 강요하는 등의 행위가 있을 경우 이는 방어권 남용으로 볼 수 있어 처벌할 수 있으나 휴대전화와 은신처를 제공받은 행위는 형사사법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한다고 보기 어려운 통상적인 도피의 한 유형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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