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1년, 구속·기소 ‘0건’…실력으로 존재 가치 입증해야

허진무 기자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지난 5일 경기 과천시 공수처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지난 5일 경기 과천시 공수처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성과물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오는 21일 출범 1년을 맞는다.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깨고 부패범죄를 엄벌하리라는 기대를 안고 출발했지만 구속·기소 0건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6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공수처는 지난 달 31일 기준으로 사건 2840건을 수리해 24건(피의자 기준)을 입건했다. 피의자별로 분류하면 24건이지만 사안별로 분류하면 12건이다. 고위공직자가 피의자라 사건을 입건할 때마다 정치적 논란이 일었다.

공수처가 ‘1호 사건’으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해직교사 부당 특별채용 의혹’을 선택하자 공수처를 만든 여당이 반발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피의자인 사건을 연달아 4건 입건하자 국민의힘은 “공수처는 윤수처”라고 했다. 정치적 중립성 확보가 생명인 공수처 스스로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친정권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성윤 서울고검장의 수사 외압 혐의를 조사하면서 김진욱 처장의 관용차를 제공해 ‘황제 조사’ 논란이 일었다.

공수처의 수사력은 낙제점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석열 후보가 연루된 ‘고발 사주’ 의혹은 공수처의 검찰 견제 기능과 수사 실력을 보일 기회였지만 실패했다.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구속영장이 두 차례 기각당하며 ‘윗선’으로 지목된 윤 후보에 닿지도 못한 채 수사 동력을 잃었다. 수사팀장인 여운국 차장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 “우리 공수처는 아마추어”라고 말했다.

공수처의 수사력 부족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고위공직자범죄의 특성상 권력형 부패범죄 수사 경험이 중요한데도 처·차장을 포함한 검사 대부분은 수사 실무 경험이 없다. 검찰을 견제한다는 명분 때문에 검찰 출신을 배제하고 처·차장 모두 판사 출신으로 임명했다. 공수처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공수처 검사들이 경험이 부족해 수사 현장에서 당황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수사는 발로 뛰어야 하는 건데 서류로 쉽게 접근하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공수처는 지난해 2월 검사 모집에 정원의 10배가 넘는 지원자가 몰렸지만 대부분이 채용 기준에 미치지 못해 검사 13명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현재는 공수처법상 검사 정원인 23명을 채웠지만 검찰 출신은 5명이고 평균 수사 경력은 2.2년에 불과하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수사를 잘하는 ‘선수’가 원래 경력을 포기하고 공수처에 합류하려면 상당한 결심이 필요하다”며 “김 처장이나 공수처에게 우수한 인재를 유치할 정도의 매력이 없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공수처가 내건 ‘인권친화적 수사기구’라는 구호도 빛이 바랬다. 공수처가 지난해 상반기 사건 관계인의 통화 상대가 누군지 신원을 파악한 ‘통신자료 조회’는 135건이었다. 조회 대상에 언론인, 정치인, 법조인은 물론 그의 가족까지 포함됐다.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는 법원의 영장 없이 저인망 어선처럼 개인정보를 수집해 사생활의 비밀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공수처가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검·경의 수사 관행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답습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날 송두환 위원장 명의의 성명을 통해 “수사 목적을 위해 통신자료와 같은 개인정보를 제공할 때는 수사에 반드시 필요한 범위 내에서 최소한으로 제공하도록 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통제 절차를 관련 법률에 마련함으로써 기본적 인권침해가 최소화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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