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2차 가해 차단, 조화로운 대안” 추상적 언급

김희진 기자

피고인 권리·피해자 보호

해외선 가치 충돌에 대한 구체적 기준, 오래전부터 마련

미성년 성범죄 피해자의 진술 영상을 증거로 쓸 수 있도록 한 성폭력처벌법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는 이 결정으로 사회 각계로부터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아동·청소년 피해자를 2차 피해에 무방비 노출시켰다는 것이 주된 비판이지만, 헌재도 이 같은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헌재는 지난달 위헌 결정 당시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과 함께 피해자 보호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조화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게 언급했다.

법원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가 지난 10일 개최한 토론회에서 김동현 사법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부장판사)은 “피고인의 권리와 피해자 보호라는 두 공익적 가치가 충돌할 때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담론은 해외에선 오래전부터 논의돼왔다”며 “(위헌 결정의 취지는) 피고인에게 방어권과 재판참여 기회를 보장해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있다”고 했다.

해외에서도 나라별로 피고인의 권리보장과 피해자 보호가 양립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영국 형사법은 미성년 피해자의 진술영상을 증거로 채택하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반대신문도 가능하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다만 소환한 미성년 증인에 대해서는 진술영상에서 다뤄지지 않은 내용을 위주로 신문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피고인의 ‘대면권’을 중요한 헌법적 권리로 다루는 미국의 경우에도 아동 피해자의 영상진술 등이 법정진술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증거로 제출하려면 공개법정에서 심리를 거쳐야 하는 등 요건이 비교적 엄격하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진술영상을 증거로 제출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고 이를 미성년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 다만 “진술영상을 제출할 때 피고인 권리를 침해하거나 양립불가능한 것이 되어선 안 된다”고 제한한다. 유럽인권협약은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되, 피해자가 증언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 있는 성범죄에 있어서는 완화해 적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때 “피고인의 반대신문권 보장은 직접 신문이나 현장에서 즉시 신문만을 뜻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근본적으로 입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성년 피해자를 법정에 세워 반대신문에 노출시키는 일은 본질적으로 2차 피해 우려가 따른다”는 것이다. 그는 “심리 후 피고인의 방어권 남용 사실이 밝혀진다면 피해자는 추가 피해를 입게 된 것이므로 피고인이 양형으로 불리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증인신문 전 당사자들 사이 공론화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피해경험을 반복해 이야기하는 조사 방식을 탈피한 해외 사례도 소개됐다. 북유럽의 ‘바르나후스(Barnahus·아동의 집)’ 모델이다. 성적·학대 피해를 입은 아동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한 장소에서 제공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문 원칙’에 따른 것이다. 이 모델에서는 전문가가 한군데 모여 조사방법과 내용을 결정하고, 이들이 참관한 상태에서 전문조사관이 피해 아동의 진술을 들으며 영상 녹화를 하게 된다. 미성년 피해자는 증언을 위해 법정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 미성년 피해자가 수사·재판 등 여러 곳에서 낯선 이들 앞에서 되풀이해 말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아동 친화적’ 사법 시스템으로 평가받는다. 바르나후스 모델을 소개한 오선희 변호사는 “헌재 결정의 취지에 맞게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면서, 피해자를 최대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입법하는 일이 목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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