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촬영 24회 자백에도 무죄…대법 "피의자 참여없이 수집한 위법증거"

김희진 기자
서울 서초동 대법원 /박민규 선임기자

서울 서초동 대법원 /박민규 선임기자

여성의 신체 부위를 수차례 불법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이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피의자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면 피의자가 자백했더라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1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3~4월 휴대전화 카메라로 여성의 신체부위를 수차례 불법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그 해 3월10일 경기 안산시에서 우연히 마주친 여성 B씨를 따라 여자화장실에 들어가 휴대전화로 불법 촬영하려다 B씨에게 적발돼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경찰은 영장을 받아 A씨 휴대전화를 압수해 분석하던 중 A씨가 그해 3월9일부터 4월2일까지 24차례에 걸쳐 휴대전화로 여성의 신체 부위를 불법촬영한 동영상을 발견했다. 3월10일 당일의 범행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추가로 발견된 A씨의 불법촬영 동영상을 출력해 A씨를 신문했고, A씨는 영상을 보고 범죄 사실을 자백했다. 검찰은 별도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지 않은 채 추가로 발견된 동영상을 증거로 제출하면서 A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의 증거 동의가 있었다고 해도 수사기관의 증거수집 절차가 위법해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발부된 영장은 다른 범죄에 대한 것으로, 수사기관이 별도 범죄 혐의와 관련한 동영상을 우연히 발견하면 추가 탐색을 중단하고 압수수색 영장을 다시 발부받았어야 했다”며 “경찰은 동영상을 탐색·촬영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참여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당 동영상은 형사소송법상 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해 수집된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해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도 “동영상 파일은 적법한 압수수색을 통해 획득한 증거”라는 검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이 A씨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의 범죄사실 중 일부와 동종 범행이지만 각 동영상은 영장에 기재된 범죄 사실과 구체적·개별적 연관 관계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증거로 제출된) 동영상은 A씨가 여자화장실에서 피해자를 촬영하려고 했다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간접증거나 정황증거로 사용될 수 있고, 영장 혐의사실과 구체적·개별적 연관관계도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영장에 적시된 혐의 사실과 24차례 불법촬영한 혐의 사이의 관련성은 인정된다는 것이다. 다만 “동영상을 탐색·출력하는 과정 등에서 피고인의 참여권을 보장했다는 점을 인정할 자료가 없어 각 동영상은 위법수집 증거에 해당해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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