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입국은 살기 위한 마지막 기회, 우리는 당신을 해치지 않는다"…아프간 특별기여자 인터뷰

이보라 기자

“한국 정부와 시민에 감사

 5년짜리 비자에 불안 여전

 서로 도우면서 살았으면해”

 남은 가족 안부 묻자 “…”

아프간 특별기여자 누룰라 사데키(33)가 15일 오후 경기 김포시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보라 기자

아프간 특별기여자 누룰라 사데키(33)가 15일 오후 경기 김포시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보라 기자

‘아프가니스탄에 남은 가족은 잘 지내고 있느냐’고 묻자 아프간 ‘특별기여자’ 누룰라 사데키(33)는 한숨을 내쉬었다. 인터뷰 내내 미소를 잃지 않고 농담도 곧잘 던진 그였지만 이 때만은 그렇지 않았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이 지난해 8월15일 아프간 수도 카불을 점령한 뒤 도시에 남겨진 사람들은 위협을 피해 집이나 은신처에서 숨죽여 지내고 있다.

아프간 정부군 쪽에서 일했던 사데키 부인 쪽 가족은 탈레반의 공격을 피해 이란으로 도망쳐야 했다. 사데키 사촌의 아들은 정부에서 여권을 발급하는 업무를 했다는 이유로 탈레반의 공격 대상이 됐다. 탈레반은 그의 집을 수색하고 강탈했으며 그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었다. “아마 몇 달만 더 아프간에 있었다면 저도 탈레반의 공격 대상이 됐을 거예요.” 사데키가 말했다. 한국 등 외국 정부와 관련된 일을 한 이력이 있는 사람도 탈레반의 타깃이 되기 쉽다.

경향신문은 지난 11일과 15일 국내 정착을 시작한 아프간 특별기여자 2명을 인터뷰했다. 특별기여자는 아프간의 한국 정부 시설에서 직고용돼 근무하면서 한국 정부에 도움을 준 이들과 그의 가족을 말한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8월26~27일 특별기여자 390여명을 한국으로 받아들였다. 기자와 만난 사데키와 특별기여자 A씨(36)는 아프간을 떠나 한국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했다. 이들은 “우리를 받아준 한국 정부와 시민들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 입국은 살기 위한 마지막 기회”

경기 김포시와 일산시에서 각각 만난 사데키와 A씨는 탈레반이 집권한 직후의 기억을 되짚었다.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나 군에 근무한 관계자들의 자택을 뒤지고 다녔다. 이들에게 위해를 가하고 살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성의 경우 남성과의 동행 없이는 혼자서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없도록 했다. 자신들을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한 일부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행방불명됐다. 소수자의 인권과 민주주의는 자취를 감췄다.

두 사람에게 한국 입국은 “살기 위한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였다. 직업도, 집도, 아끼던 물건도 버리고 어디로든 떠나야 했다. 아프간에 위치한 바그람 한국 병원에서 수년간 한국인들과 함께 약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이들은 한국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특별기여자로 선정돼 지난해 8월 26~27일 한국에 입국했다.

아프간을 떠나 한국으로 들어오는 과정도 위험의 연속이었다. 이들이 아프간을 출국한 직후인 지난해 8월26일 카불 공항에 탈레반의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 테러로 18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공항에 갈 때 탈레반의 눈에 띄지 않게 최대한 평범한 옷을 입었어요. 탈레반이 선호하는 긴 수염도 유지했죠. 탈레반은 여성의 몸은 잘 수색하지 않아서 아내의 몸에 서류를 숨겼어요. 공항에는 아프간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밤새 줄을 서야 했어요. 공항에 들어오니 왠지 한국에 도착한 것처럼 안정감을 되찾았죠.” 사데키가 말했다.

아프간 특별기여자 A씨(36)가 11일 경기 일산시의 자택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보라 기자

아프간 특별기여자 A씨(36)가 11일 경기 일산시의 자택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보라 기자

■“고마움 많지만 비자 문제 남아”

특별기여자들은 한국에 도착한 뒤 5~6개월간 충북 진천군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과 전남 여수시의 해양경찰교육원에서 생활했다. 지난달부터 이달까지 390여명 모두가 지역 사회에 정착했다. 사데키와 A씨는 임시생활숙소에 있는 동안 밖에 나가지 못하는 게 가장 불편했다고 했다. “평일에는 매일 3시간씩 한국어 수업을 들어야 했어요. 기자님이었어도 아마 지루하셨을 거에요.” 사데키가 웃으며 말했다.

임시생활숙소에서는 간단한 한국 법률부터 쓰레기를 버리는 방법까지 한국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기초 지식을 배웠다. 사데키의 딸은 ‘곰 세마리’ 같은 한국 동요를 몇가지 배웠다. 최근에도 집에서 부르곤 한다. A씨는 “여가 시간에 숙소를 방문했던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함께 축구를 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모두 친절하게 대해주셨다”고 말했다.

사데키는 이달 초 경기 김포시에 방 두 칸짜리 거처를 마련했다. 그는 오는 3월부터 아프간 현지에서 근무했던 한 국제사회복지기관의 한국지부에 출근한다. 그는 아내의 뱃속에 있는 아기까지 포함해 4명의 자녀를 키워야 한다. 첫째 딸(7)은 초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다. 가족은 취업과 진학을 앞두고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첫째 딸은 한국인을 만나면 한국말로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해요. 저보다는 한국어가 빨리 늘 것 같아요.”

A씨도 지난달 경기 고양시에 10평 남짓한 거처를 얻었다. 부인과 둘이 산다. 그도 3월부터 약사로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보건과학과 기술을 연구하는 대학원에 입학한다. 그는 “암을 진단하는 소프트웨어처럼 의료와 기술이 결합된 분야의 연구를 하고 싶다”며 “한국과 같이 기술이 발전한 나라에 오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슬람 문화권에 속한 이들은 ‘할랄’ 음식을 먹어야 한다. 할랄 음식이란 이슬람 율법에 의해 무슬림이 먹을 수 있도록 허용된 음식이다. 한국에서는 할랄 음식을 파는 식당이 많지 않다. 임시생활숙소에서도 익숙지 않은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해서 애를 먹었다. 사데키와 A씨 가족은 정기적으로 할랄 상점에 가서 식재료를 산 뒤 집에서 요리해 먹는다. 사데키는 주로 피자나 스파게티, 만두 같은 것을 만들어 먹는다. “제 아내는 요리를 정말 잘 해요. 아프간 여성들은 대부분 전업 주부여서 요리 실력이 좋아요.”

사데키와 A씨는 자신들을 도와준 한국 정부에 고마움이 많다. 다만 현재 발급받은 ‘F-2’ 비자는 5년까지만 체류가 가능해 불안한 건 있다. 한국 정부의 주거 지원도 1년 후면 끊긴다. 아프간에서 했던 일을 한국에서도 이어가는 게 이들의 또 다른 바람이다. 사데키는 “특별기여자 대다수는 현지에서 한국 의사들과 일했던 의료진”이라며 “그런데 한국에선 의료 업무를 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그동안 해왔던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고 했다.

일부 지역에선 특별기여자의 정착을 반대하는 여론도 있다. 그에 대한 의견을 묻자 사데키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무슬림 교리에 따르면 전세계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고 누구나 형제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해치지 않아요. 서로 도우며 평화롭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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