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법제도 70여년 만에 대수술…수사공백·경찰 견제 숙제

이효상 기자

새 형사소송법 의미·과제

<b>항의</b>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입법 중 하나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3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되는 동안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항의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입법 중 하나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3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되는 동안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검찰에 부패·경제범죄 수사만 허용…검찰 권력 ‘역대 최소화’
시민 권리구제 박탈 문제점에도 충분한 논의 없이 졸속 입법
수사 효율성 저하·비대한 경찰권 제약 등 향후 재논의 필요

검찰의 수사 범위를 축소하는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이 3일 공포됨에 따라 한국의 형사사법제도는 70여년 만에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됐다. 4개월 뒤부터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 범죄는 부패·경제범죄로 한정되고, 경찰 수사 사건에 대한 검찰의 보완수사도 제한된다. 다수 시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법의 개정이 검찰과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권이양기에 졸속으로 추진된 탓에 수사 공백은 물론 일반 시민의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날 공포된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의 골자는 검찰의 수사 범위 제한이다. 당초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의 오랜 목표인 수사·기소 분리를 겨냥했지만 검찰에 부패·경제범죄 수사권을 남겼다.

검찰청법이 제정된 1949년 이후 73년 만에 검찰의 수사 범위가 가장 좁아졌다. 직접수사 범위는 부패·경제 2대 범죄로 제한된다.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은 수사지휘권을 잃고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를 제외한 수사개시권을 경찰에 내줬는데, 이번 법 개정으로 2대 범죄에 대한 수사권만 남았다. 공직자·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권은 4개월 뒤 경찰로 이관되고, 선거범죄는 내년 1월1일 경찰로 이관된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와 선거범죄의 짧은 공소시효(6개월)를 감안한 조치다.

경찰이 수사한 사건에 대한 검찰의 보완수사도 제한된다.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은 종전처럼 검찰이 보완수사를 할 수 있다. 다만 검찰이 사건 송치를 요구한 경우에는 경찰이 수사한 범위에서만 보완수사를 해야 한다. 검찰의 별건수사를 막겠다는 이른바 ‘동일성’ 원칙이다. 게다가 개정 법은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을 박탈했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구제를 제한하는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검찰 내부적으로는 수사와 기소가 분리된다. 오는 9월부터 검사는 직접수사를 개시한 사건에 대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이번 법 개정은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추진됐다. 검찰개혁에 공감해온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당장 시민의 권리구제가 지금보다 제한될 것이 분명하지만 대안을 모색할 틈도 없이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고발인의 이의신청권 박탈이 대표적인 예다. 수사기관에 스스로 고소장을 내기 어려운 이들의 경우 경찰 단계에서 사건이 종결되면 검찰의 보완수사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사건이 묻히게 되는 것이다.

수사 효율성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부패범죄인 뇌물수수 사건은 허위공문서 작성 등 공직자범죄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지만 검찰에는 부패범죄 수사권만 남았다. 검찰은 부패범죄에 대한 직접수사를 진행하다 공직자범죄 혐의를 포착하면 경찰 등으로 사건을 넘겨야 한다. 피의자 입장에서는 중복 수사를 받게 되고, 사건 처리는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수사·기소 검사 분리도 부작용이 우려된다. 기소검사가 사건기록을 숙지하지 못할 경우 깜깜이 기소가 이뤄질 수 있다.

거대한 권한을 갖게 된 경찰에 대한 견제 방안은 비어 있다. 경찰은 기존 치안·정보 기능에 더해 거의 완전한 수사권도 갖게 됐다. 더구나 검찰의 보완수사에 제약이 생기면서 경찰의 1차 수사에 대한 검찰의 견제가 한결 헐거워졌다.

남은 과제는 다시 국회 몫이 됐다. 이날 국회는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도 통과시켰다. 사개특위는 ‘한국형 FBI(미 연방수사국)’ 신설 등을 논의하게 된다. 당초 여야는 사개특위 논의를 거쳐 1년6개월 내에 중대범죄수사청(가칭)을 신설해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모두 넘기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여야 합의를 파기한 터라 사개특위가 정상적으로 가동될지는 미지수다.

경찰 견제 방안도 사개특위가 시급히 논의해야 할 사항이다. 경찰권 분산을 위한 경찰위원회의 권한 강화, 행정경찰과 사법경찰의 분리, 자치경찰과 국가경찰의 명확한 구분 등이 대안으로 논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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