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법원 "여성가족부 산하기관장 해임은 무효"읽음

이보라 기자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로고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로고

직장 내 성희롱 사건 처리에 대한 감사를 받다 해임된 여성가족부 산하 공공기관장에 대한 처분이 ‘무효’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절차적·실체적으로 부당하게 기관장을 해임했다는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여가부가 기관장 해임에 부당하게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민사소송에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불법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4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법 42민사부(재판장 정현석)는 지난 13일 변혜정 전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이 진흥원을 상대로 제기한 이사회 해임결의 무효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해임이 결의된 다음날부터 임기 마지막날을 기준으로 미지급된 임금과 성과급, 지연손해금을 진흥원이 변 전 원장에게 지급하라고 했다.

변 전 원장은 2017년 11월21일 원장으로 취임해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하고 2019년 2월19일 해임됐다. 발단은 진흥원 내부에서 발생한 성희롱 사건이었다. 진흥원 소속의 한 센터 직원인 A씨는 2018년 9월 진흥원에 ‘센터 소속 직원인 B씨가 2018년 8월 여러 차례 성희롱을 했다’고 신고했다.

A씨는 조사가 진행 중이던 2018년 9월 센터 직원인 C씨에게 성희롱 사건을 언급하며 사건 관련자의 성정체성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긴 e메일을 보냈다. C씨가 상부에 이를 보고하자 A씨는 2018년 10월1월 센터 내 사무실에서 C씨가 자신의 편을 들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B씨 실명을 거론하며 성희롱 가해자라며 소란을 피웠다.

이 문제로 같은 날 열린 긴급회의에서 변 전 원장 등은 센터 직원들에게 A씨의 아우팅(성소수자의 의사에 반해 성정체성이 외부에 공개되는 것) 행위와 대책 등을 논의했다. 그 과정에서 성희롱 사건 처리 경과에 대한 설명도 이뤄졌다. 회의 이후 A씨는 여가부에 ‘진흥원이 성희롱 사건을 처리하면서 피해자인 자신의 의사에 반해 사건 내용이 공개됐다’는 민원을 제기했다.

여가부는 2018년 12월 진흥원에 대한 감사를 실시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여부에 관한 조사도 의뢰했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의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신고인의 의사에 반해 다른 사람에게 누설한 행위는 금지된다. 당시 여가부 권익증진국장이자 진흥원 이사인 D씨의 제안으로 2019년 2월15일 변 전 원장 해임을 안건으로 하는 임시 이사회 소집이 통보됐고 나흘 뒤 이사회에서 해임이 결의됐다. 변 전 원장은 지난해 4월 해임 결의가 무효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이사회의 해임 결의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진흥원 정관은 이사회 회의를 개최하기 7일 전 회의 목적 등을 통지해야 하고 긴급하다고 인정되는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만 예외로 한다고 규정한다. 재판부는 “이 회의 개최일로부터 9일 뒤 정기 이사회가 예정된 상태였고, 해임 사유인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여부에 대한 여가부 감사나 노동청의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며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변 전 원장 등이 회의에서 성희롱 사건 처리 경과를 공개한 것이 남녀고용평등법에서 금지하는 ‘비밀 누설 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가 이 사건을 센터 전체 직원에게 공유하기를 원했고 동료들에게 사건을 말하는 등 센터 직원 대다수가 이 사건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변 전 원장이 A씨의 소란을 해결하고 아우팅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 사건을 언급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었다”고 했다. 진흥원의 조사 결과 성희롱도 사실로 인정되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해임 과정에서 여가부 측의 불법 행위가 있었다며 변 전 원장이 청구한 손해배상에 대해서는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했다.

변 전 원장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해임 결의는 제게 사회적 죽음이었다. 30여년의 활동이 부정 당하며 경력이 단절됐다. 결의 다음날 진흥원 측이 사무실에 못오게 해 직원들과 인사는커녕 짐도 정리하지 못하게 했다”며 “여가부의 부당 개입 정황을 형사고소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경향티비 배너
Today`s HOT
부활절 앞두고 분주한 남아공 초콜릿 공장 한 컷에 담긴 화산 분출과 오로라 바이든 자금모금행사에 등장한 오바마 미국 묻지마 칼부림 희생자 추모 행사
모스크바 테러 희생자 애도하는 시민들 황사로 뿌옇게 변한 네이멍구 거리
코코넛 따는 원숭이 노동 착취 반대 시위 젖소 복장으로 시위하는 동물보호단체 회원
불덩이 터지는 가자지구 라파 크로아티아에 전시된 초대형 부활절 달걀 아르헨티나 성모 기리는 종교 행렬 독일 고속도로에서 전복된 버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