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살리기’ 내세워 재벌에 면죄부 준 역대 정부 관행 반복읽음

이혜리 기자

이재용 등 재벌 총수 4명 사면

특사 대상자 발표하는 한동훈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8·15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특사 대상자 발표하는 한동훈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8·15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김대중~박근혜 정부 예외 없어
문재인 정부는 ‘이재용 가석방’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재벌그룹 총수 4명을 특별사면한 것을 두고 대통령 사면권이 범죄를 저지른 재벌에 대한 특혜로 악용된 역대 정부 관행이 되풀이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특별사면 명분으로 든 ‘경제위기 극복’은 재벌이 한국 경제를 살린다는 ‘낙수효과’론과 연결되는데, 낙수효과론은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터다.

대통령의 특별사면에 관한 권한은 헌법 제79조에 규정돼 있다. 특별사면은 권력 분립 원칙에 어긋날 여지가 있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원칙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 때문에 최소한의 범위에서 실시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경제 살리기’ 내세워 재벌에 면죄부 준 역대 정부 관행 반복

역대 정부에서 재벌 총수들은 특별사면의 주된 대상이었다. 김대중 정부 때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노무현 정부 때는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등이 사면됐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 살리기’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재벌 총수를 대거 사면해 특히 논란이 됐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이때 사면됐다. 2009년 12월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원포인트’ 사면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이 사면됐다. 문재인 정부는 재벌 총수 사면을 단행하지 않았다. 다만 지난해 8월 이재용 부회장 가석방을 결정해 비판받았다. 문재인 정부가 가석방 명분으로 든 것도 ‘경제 살리기’였다.

윤석열 정부는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출범했다. 더구나 윤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검사 시절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수사·기소를 지휘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이전 정부들처럼 재벌 총수를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시켰다. 역시 ‘경제위기 극복’이 명분이었다. 정부는 “적극적인 기술 투자와 고용 창출로 국가의 성장 동력을 주도하는 주요 경제인들을 사면 대상에 포함시켰다”면서 “경제 분야의 국가경쟁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재벌 총수가 왕성히 활동하고 대기업이 잘나가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낙수효과론이 깔려 있다.

그러나 사면으로 풀려난 재벌 총수들이 경제 살리기에 얼마나 보탬이 됐는지 실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재벌 총수에게 면죄부를 주는 관행이 공정경쟁 질서를 저해해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윤 대통령도 검찰총장 취임사에서 “공정한 경쟁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했었다.

“대기업의 낙수효과 검증 안 돼”
시민단체, 법치 훼손 등 비판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낸 논평에서 “재벌 대기업의 성장과 투자를 통해 낙수효과가 발생하고, 국민 경제 전체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성장모델은 더 이상 발현되기 어렵다는 게 지배적 중론”이라고 했다. 이어 “오히려 이번 사면으로 주요 대기업집단이 후진적 지배구조를 개선시킬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게 될 가능성이 더욱 크다”고 했다. “경제질서를 어지럽히고 훼손한 이들을 풀어주고 경제 살리기를 요구하는 것은 도둑에게 곳간을 지키라는 것과 다름없다”고도 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달 형 집행이 만료됐고, 취업제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간간이 경영 참여와 대외 활동을 해왔다.

이 부회장은 현재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관련, 기소돼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날도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에 출석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복권 조치가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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