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미군 기지촌 성매매’ 국가 배상책임 65년 만에 인정

김희진 기자

기지촌 운영과 관리에 정부 책임

원고 일부 승소 원심 판결 확정

국가가 과거 주한미군 기지촌 인근 성매매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조장했다고 인정한 대법원 첫 판결이 나온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앞에서 기지촌 여성단체와 원고, 공동변호인단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대법원은 29일 이모 씨 등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정부가 원고들에게 각 300만원∼7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문재원 기자

국가가 과거 주한미군 기지촌 인근 성매매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조장했다고 인정한 대법원 첫 판결이 나온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앞에서 기지촌 여성단체와 원고, 공동변호인단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대법원은 29일 이모 씨 등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정부가 원고들에게 각 300만원∼7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문재원 기자

미군 기지 주변의 상업지구(기지촌)에서 주한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했던 여성들이 입은 피해를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군사동맹과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기지촌을 운영·관리하며 성매매를 조장한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 65년 만에 법원 판결로 확정된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9일 이모씨 등 미군 기지촌 성매매 여성 9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인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당초 피해자 120명이 소송을 냈지만 대부분 고령인 피해자 중 일부가 숨지거나 소를 취하해 원고가 95명으로 줄었다.

이씨 등은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경기 파주·평택시 등 미군 기지 주변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한 여성들이다. 이들은 정부가 기지촌을 조성하고 관리·운영하면서 성매매를 조장해 피해를 입었다며 2014년 6월 각각 1000만원씩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1심은 원고 중 57명에 대해서만 500만원씩 지급하라며 국가의 배상 책임 범위를 제한했다. 1997년 8월 전염병 예방법 시행규칙이 생기기 전 성병 진단을 받고 강제 격리된 피해자에 대해서만 국가 책임이 있다고 했다. 정부가 기지촌을 조성·운영한 것은 성매매를 강요하거나 촉진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항소심은 정부가 전국 기지촌을 운영하고 관리하며 사실상 성매매를 조장하고 정당화했다고 판단했다. 정부가 미국과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외화를 획득하기 위해 기지촌 성매매 여성의 성을 수단화했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는 정부 책임을 보다 폭넓게 인정해 원고 117명 중 74명에게 700만원, 43명에게 3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국가의 기지촌 조성·관리·운영 행위, 성매매 정당화 및 조장 행위는 법을 위반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인권존중의무 등 마땅히 준수해야 할 준칙과 규범을 위반한 것으로 위법하다”며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은) 국가의 위법행위로 인해 인격권 또는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당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그러면서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 이뤄진 국가의 이런 행위는 과거사정리법상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 해당해 국가배상청구권에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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