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돋보기

스무살 엄빠의 ‘영아살해’···사연이 딱해도, 죄는 무겁다

김희진 기자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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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524호 법정에 수의를 입은 남녀가 들어섰다. 한 눈에 봐도 앳된 이들은 올해 스물한 살, 2001년생이다. 법정에는 영아살해 및 사체은닉 혐의로 서게 됐다. 둘 사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친모 이모씨와 친부 권모씨는 지난 7월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지 다섯 달 만에 이날 1심 재판을 마쳤다.

두 사람은 지난해 1월11일 서울 관악구 집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은 직후 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아 죽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죽은 아기 사체를 가방에 담아 에어컨 실외기 아래 숨긴 혐의도 더해졌다. 검찰은 이들에게 각각 징역 5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묻힐 뻔한 영아살해 사건, 검찰 수사요구로 기소’. 사건은 이런 내용의 기사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경찰이 내사 종결하려 했으나 검찰이 보완수사 의견을 내 기소까지 이뤄냈다는 내용이다. 댓글창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둘러싼 공방으로 뒤덮였다. 대검찰청은 이 사건을 ‘우수 수사사례’로 선정해 보도자료까지 냈다.

검찰의 수사성과, 검수완박 필요성, 검·경의 힘겨루기…. 이 사건에 따라붙은 꼬리표들이다. 정작 사건 당사자인 어린 부모는 어쩌다 법정에 서게 됐는지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지난 8월부터 5차례 열린 공판을 통해 두 사람과 아이의 저간의 사정을 엿볼 수 있었다.

아이를 입양보내려 큰 집으로 이사했지만…

이씨와 권씨는 결혼을 한 건 아니지만 2020년 4월쯤 동거를 시작했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생활했다. 두 사람은 동거 후 두 달이 지난 6월쯤 이씨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됐다. 몸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 방문했을 땐 이미 임신 24주차 상태였다.

두 사람은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해 임신 중단 수술을 고민했다. 병원에선 “이미 개월 수가 좀 많다”고 했다. 만약 수술하려면 화장터를 연결한 후 유도분만을 하는 등 병원이 져야 할 위험부담이 크다며 비용으로 500만원을 제시했다. 당시 두 사람이 지내던 집 보증금의 곱절이 넘는 금액을 감당할 순 없었다.

권씨는 미혼모 센터를 통해 아이를 입양 보내는 절차를 찾아봤다. 혹시 센터에 입소할 수 있을지, 출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등을 알아봤다. 출산 후 일주일 정도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 입양을 보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씨는 권씨에게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하자고 설득했다. 아이를 낳고 잠시 데리고 있기에 살고 있던 집은 너무 좁았다.

두 사람은 계약 기간이 남은 기존 집을 두고 대출까지 받아 2021년 1월5일 급히 이사했다. 닷새가 지난 1월10일. 새벽 두 시쯤 갑자기 이씨의 진통이 시작됐다. 예정일이던 2월 중순보다 한 달 앞선 시점이었다. 거실에선 집을 방문한 권씨 지인들이 자고 있었다.

이씨는 부축을 받아 화장실에 가서 아이를 낳았다. 집, 그것도 추운 화장실 바닥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충격적이고 무서웠다. 태어나자마자 우는 아이를 마주했을 때 공포스럽기도했다. 이씨는 “기르지 못하겠다”며 권씨에게 수건을 달라고 해 아기의 입과 코를 막았다. 권씨는 “더 이상 못 보겠다”며 화장실 문밖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숨진 아이의 사체를 가방에 넣어 싱크대 밑 선반에 뒀다가 창문 밖 에어컨 실외기 아래로 옮겨뒀다.

임신 사실을 알았던 친구는 이씨로부터 “아기가 죽어서 태어났다”는 얘기를 듣고 이상하게 여겨 1월13일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 끝에 두 사람은 영아살해 및 사체은닉의 공범으로 보고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자칫 암장될 뻔한 영아살해 사건 실체를 명확히 규명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저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게 분명하단 생각에…” 법정에서 드러난 사정

재판에선 수사 단계에서 다뤄지지 않던 이들의 사정이 드러났다. 재판부는 피고인 신문을 진행하면서 두 사람이 당시 상황을 주변에 털어놓고 도움을 구하지 않은 이유와 살아온 배경 등에 대해 물었다. 두 사람은 불안정하게 보낸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씨는 초등학생일 때 부모가 이혼했다. 어머니와는 연락이 끊겼고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던 집에서 자라 돈을 벌고 싶었다고 했다. 권씨와 동거를 할 때도 식당에서 주 5일 오후부터 밤까지 아르바이트하고, 주말에는 배달일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월세 등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권씨도 비슷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릴 적 부모가 이혼해 할머니와 살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후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을 위해 서울로 왔다. 이씨가 소개해준 식당에서 같이 서빙 일을 하기 시작했다. 공황장애를 앓아오던 중 이씨와 동거를 하며 의지하고 지냈다고도 했다.

재판을 받는 동안 어깨를 움츠린 채 질문에 간신히 대답만 하며 법정을 오가던 두 사람은 지난달 15일 최후진술을 할 때 울음을 터뜨렸다. “하루에도 수십번 수백번씩 후회하고, 아기에 대한 죄책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매일을 보냈습니다.” 이씨는 자신이 아기 입을 막은 장면이 끊임없이 생각난다면서 울음을 삼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부모님이 이혼하는 과정을 보면서 많이 괴로웠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경제적 어려움 속에 살아 위축되고 힘들었다”며 “지금의 저처럼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다 해도 그 아이는 저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이 분명하단 생각이 들어 무서웠다”고 했다. 이어 “어쩌면 좋은 가정에 입양이 될 수도 있고 제가 정신을 차려 열심히 돈을 벌고 아이에게 사랑을 준다면 저보단 행복하게 자랄 수 있었을 텐데 생각이 짧았다”고 했다. 이씨는 법정을 나갈 때까지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5단독 권영혜 판사는 이씨에게 징역 3년, 권씨에게 징역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의 영아살해·사체은닉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권씨의 경우 아이를 숨지게 한 이씨 행위를 저지하지 않고 묵인했다는 점에서 공범으로 인정된다고 봤다.

권 판사는 “친부모의 양육 의지나 능력에 따라 생사가 결정될 수 없고, 이 세상에 죽어도 된다거나 죽는 것이 더 나은 아이도 없다”며 “살아서 태어났음을 온 힘을 다해 알렸던 피해자는 유일하고도 절대적 보호자였던 부모들에 의해 사망했다”고 지적했다. 상황을 회피하려다 어린 생명이 세상을 떠나게 한 두 사람의 행동은 죄책이 무겁다고 봤다.

다만 “두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고 깊은 후회와 반성을 하고 있으며 어린 자녀를 죽였다는 죄책감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이라며 “이들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영아살해를 의도했다고까지 단정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판단했다. 막연하게나마 미혼모 센터를 알아봤고, 한 달 앞서 진통이 시작되는 등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해 출산 사실을 숨기려는 동기가 더 크게 작용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불우한 가정과 어려운 경제적 환경에서 갑작스러운 출산 과정을 거치며 느꼈을 불안정한 심리 상태 등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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