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5년차 동성부부, 이번 겨울엔 웃을 수 있을까

김희진 기자

건보공단 피부양자 자격 다투는 김용민·소성욱 부부

1심 패소…‘평등 원칙’ 따져 물은 항소심 재판부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송을 제기한 소성욱-김용민 부부와 성소수자 가족 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회원들이 2021년 2월18일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송을 제기한 소성욱-김용민 부부와 성소수자 가족 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회원들이 2021년 2월18일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19년 5월 결혼한 김용민씨(33)와 소성욱씨(32)가 10일 서울고법 303호 대법정에 들어섰다. 올해로 결혼 5년차 부부, 만난 지 꼬박 10년 된 커플이다. 결혼식에서 300명 넘는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남들처럼 신혼생활을 했다. 동성부부라는 이유로 혼인신고는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2021년 소송을 시작한 후 법정을 오가며 두번째 겨울을 맞았다.

2020년 2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인 김씨 피부양자로 소씨가 등록됐다. 결혼식 후 건강보험공단에 “사실혼 배우자도 직장가입자 피부양자로 신고할 수 있는지” 문의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은 뒤였다. 그러나 소씨가 피부양자 자격을 얻은 기쁨은 8개월 만에 끝나버렸다. 두 사람의 사연이 보도되자 공단은 같은 해 10월 소씨의 피부양자 자격을 무효로 했다. “담당 직원 실수로 처리했다”는 이유였다. 공단은 이후 소씨에게 지역가입자 건보료를 청구했고, 두 사람이 이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내며 법정다툼이 시작됐다.

1심에선 두 사람이 졌다. 법원은 동성 부부인 두 사람을 사실혼 관계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는 “세계적으로 혼인할 권리를 이성 간으로 제한하지 않는 것이 점진적 추세로 보인다”면서도 “법과 판례,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식은 남녀의 결합을 혼인의 근본 요소로 본다”고 했다. 1심 선고 직후 기자들 앞에 선 두 사람은 눈시울을 붉혔다.

항소심서 달라진 분위기…재판부 “동성커플, 사실혼 배우자와 본질적으로 다른지 의문”

지난해 11월 서울고법 행정1-3부(재판장 이승한) 심리로 항소심이 시작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평등의 원칙’을 판단 기준으로 놓았다. 동성커플의 혼인이 사실혼에 해당하는지가 아니라, 동성커플의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한 건보공단의 처분이 건강보험법상 평등의 원칙을 위반했는지가 쟁점이라는 것이다. 건보공단 처분이 “평등권을 침해한 차별”이란 소씨 측 주장을 “행정의 재량준칙으로 평등의 원칙과 무관하다”며 일축한 1심 재판부와 잣대가 달랐다.

2심에서 소씨 측 소송대리인은 “피부양자 제도는 생계를 같이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라며 “ 성욱씨는 용민씨와 생계를 같이 하고,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서약 후 가족과 교류하며 생활하는 사이로 이성 사실혼 배우자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사실혼 배우자라는 용어는 법률에 명시돼 있지 않지만 공단은 건보법상 직장가입자 부양자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스스로 판단해 사실혼 배우자를 보호 범위에 포함시켰다. 그런 점에서 공단의 재량행위가 개입됐다고 보이며, 이럴 경우 행정법상 평등의 원칙 적용돼야 한다”며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커플 상대방이 건보법상 관점에서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라고 했다. 잔뜩 굳은 얼굴로 원고석과 방청석에 각각 앉던 두 사람의 표정이 첫번째 변론기일을 마칠 때쯤 한결 풀어졌다.

성소수자 부부 소성욱, 김용민 씨가 2022년 1월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인정 소송 1심 선고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소수자 부부 소성욱, 김용민 씨가 2022년 1월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인정 소송 1심 선고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른 것을 다르게? “피부양자 제도 아래 합리적 이유없는 차별”

10일 두 번째로 열린 변론기일에서도 ‘평등의 원칙’을 놓고 양측 주장이 오갔다. 소씨 측 대리인은 재결합한 사실혼 배우자, 주민등록상 동거하지 않는 사실혼 배우자 등 실질적 부양관계자를 보호하기 위해 공단이 법률적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피부양자 범위를 유연하게 확장해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씨가 모든 자격 요건을 갖췄는데도 ‘성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자격을 박탈한 것은 “합리적 이유없는 차별”이라고도 했다.

건보 측 대리인은 피부양자 제도 역시 가족법 체계와 ‘가족’을 중심으로 운영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제도 취지에 비춰보면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커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것은 평등원칙 위반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재판부가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 커플’은 다르다고 하는데, 둘을 비교하는 기준이 뭐냐고 거듭 묻기도 했다.

소씨는 이날 법정에서 마지막 진술을 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저희는 서로 알고, 배우고, 이해하고 또 서로에게 헌신해왔습니다. 부부로서, 가족으로서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더 행복하게 지내기 위한 미래를 꿈꾸고 그립니다.” 김씨는 방청석에 앉아 소씨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네트워크를 비롯한 인권단체와 시민 등 30여명이 법정에서 이들 부부를 응원했다.

소씨는 “공단 측에서 제출한 서면에도 ‘시대 변화에 따라 전통적 가족의 모습과 다른 새로운 형태의 생활공동체가 형성되는 게 현실’이란 말이 적혀 있었다”며 “저희 같은 부부, 수많은 형태인 가족의 권리를 보장하는데 사법부가 역할을 해주시길 바란다. 정의롭고 올바른 판결을 해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진술을 마쳤다.

항소심 선고기일은 다음달 21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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