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구속영장청구서 보니
173쪽 중 20쪽이 ‘구속 사유’ 설명
증거인멸 놓고 “삼척동자도 알아”
이 대표를 ‘최고 정치권력자’ 지칭
네거티브 공세로 ‘이재명 옥죄기’
검찰이 지난 16일 법원에 제출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사진)의 구속영장청구서에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을 통틀어 “지방자치 권력을 사유화한 시정농단 사건”이라고 규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표가 평소 투명·공정한 행정 방침을 강조한 것과 달리 불법적인 유착과 밀실행정으로 주민을 속였다며 “내로남불, 아시타비(나는 옳고 다른 이는 그르다)의 전형”이라고도 했다. 증거인멸 시도가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백하다”고 하는가 하면, 이 대표를 지칭해 ‘우리나라 최고 정치권력자’라며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실체를 조직적으로 은폐해왔다는 표현도 썼다.
대선·총선 같은 선거에서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상대 정당을 향한 네거티브 공세에서 볼 법한 정치적 어휘와 수식어들이 검찰이 작성한 공문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체포동의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을 희박하게 본 검찰이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되지 못할 것을 예상해 ‘피의자 이재명’을 옥죄기 위한 수단으로 영장청구서를 활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3부(부장검사 엄희준·강백신)는 지난 16일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대장동·위례신도시 사업비리 의혹에는 배임·이해충돌방지법 위반·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를, 성남FC 후원금 의혹에는 제3자뇌물·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경향신문이 17일 입수한 173쪽 분량의 이 대표 구속영장청구서를 보면, 검찰은 20쪽에 걸쳐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를 설명했다. 검찰은 범죄 혐의의 중대성과 그간의 검찰 조사에 임한 태도, 측근을 통한 증거인멸 가능성을 앞세웠다. ‘시정농단’ ‘아시타비’ ‘내로남불’이라는 조어성 사자성어를 사용해가며 이 대표 혐의의 중대성을 강조했다.
예상되는 형량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한 점도 눈에 띈다. “각 범행만 놓고 보더라도 징역 11년 이상의 징역형이 선고돼야 하는 중대범죄”라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이 대표를 모든 범행의 ‘정점 및 최종 의사결정권자’라 표현한 검찰은 “이미 구속된 정진상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보다도 높은 처단형의 선고가 예상된다”고도 적었다.
검찰은 이 대표가 자신의 범죄를 정치화하면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했다. 이 대표가 3회에 걸친 검찰 조사 과정에서 제출한 서면진술서에 대해서는 “실체적 진실을 호도하기 위한 의도적인 허위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그간 수사 과정에서 제기된 이 대표 측근 및 사건관계인들의 증거인멸 정황을 모두 묶어 이 대표의 증거인멸 사유로 제시했다. 정 전 실장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에게 휴대전화를 버리라고 지시한 점, 대장동 문건이 고속도로변 배수구에서 발견됐던 점 등을 이 대표의 증거인멸 정황으로 제시했다.
현직 국회의원이자 제1야당 대표라는 점도 증거인멸 시도를 계속할 가능성과 연관지어 설명했다. 검찰은 “피의자는 우리나라 최고 정치권력자 중의 한 명”이라며 “지위와 영향력을 이용해 범행 실체를 조직적으로 은폐해왔고, 향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해 불리한 진술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진술 번복을 종용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이 대표에 의한 증거인멸과 실체 진실 은폐 시도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명백하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요구서를 검찰에 발송했다. 요구서는 서울중앙지검·대검찰청과 법무부를 거쳐 대통령 재가를 받은 뒤 이르면 20일 국회에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