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무조건 실형 선고하도록 한 ‘주거침입 강제추행죄’는 위헌”

김혜리 기자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과 재판관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자리에 앉아있다. 연합뉴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과 재판관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자리에 앉아있다. 연합뉴스

주거침입 후 성추행을 저지른 경우 최고 무기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한 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3년 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내린 합헌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헌재는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제3조 1항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전주지법 등 전국 일선 법원 재판부 25곳의 위헌법률 심판제청 사건과 피고인 7명이 낸 헌법소원을 병합 심리해 재판관 9명의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고 23일 밝혔다. 해당 조항은 형법상 주거침입 등의 죄를 저지른 자가 강간, 강제추행, 준강제추행 등의 죄를 범하면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A씨는 2020년 5월 전주시에 있는 피해자 B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해 B씨를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현행법에 따르면 A씨처럼 주거침입준강제추행을 저지른 경우 주거침입강간죄와 마찬가지로 징역 7년에서 최고 무기징역까지 처해진다. A씨 사건을 심리하던 전주지법은 “성폭력처벌법 제3조 1항은 법정형 하한이 지나치게 높아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을 위반했다”며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헌재는 “법정형의 상한을 무기징역으로 높게 규정함으로써 불법과 책임이 중대한 경우엔 그에 상응하는 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도 “법정형의 하한을 일률적으로 높게 책정해 경미한 강제추행이나 준강제추행까지 모두 엄하게 처벌하는 건 책임주의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또 “불법과 책임의 정도가 아무리 경미하더라도 다른 법률상 감경사유가 없으면 일률적으로 징역 3년6월 이상의 중형에 처할 수밖에 없어 형벌개별화의 가능성이 극도로 제한된다”고 했다.

헌재가 3년 전과 달리 위헌결정을 내린 것은 해당 법이 개정돼 법정형 하한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당초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던 법정형 하한선은 2020년 5월 법 개정으로 높아졌다. 판사가 법에 따라 형량의 최대 절반을 감경해도 3년6개월이라 집행유예 선고 기준(징역 3년 이하)에 못미친다. 이 죄로 기소된 사람은 죄의 경중과 무관하게 실형을 선고받을 수밖에 없다.

국회의 실수로 법이 잘못 개정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위헌 취지에 동의하면서도 별개 의견을 낸 이선애 재판관은 “(국회의원들이) 성폭력처벌법 제3조 2항의 ‘특수강도강간죄’와 혼동해 1항의 ‘주거침입강제추행·준강제추행죄’에 대한 심의는 하지 않은 채 법정형을 상향하도록 의결한 사실이 확인된다”고 했다.

이날 헌재 결정에 따라 2020년 개정된 성폭력처벌법상 주거침입 강제추행·준강제추행죄 처벌 조항은 즉각 효력을 상실했다. 재판 중인 사건은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해야 한다. 2020년 개정 조항으로 이미 처벌받은 사람은 재심 청구가 가능해질 수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이날 선고 후 “헌재 결정을 존중하지만 강제추행죄보다는 불법성이 더욱 중한 주거침입 강제추행죄에서 피해자 보호가 소홀해질 것이 우려된다”며 “강제추행이 강간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대단히 높다는 점에서 후속 입법이 신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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