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로 해외입양됐다 추방…법원 “홀트가 1억 배상”

김희진 기자

신성혁, 신송혁, 애덤 크랩서….

44년 전 미국으로 처음 입양된 이후 파양과 입양을 반복하며 여러 이름으로 불려온 그를 16일 한국 법원은 “원고 신송혁”이라고 불렀다. 홀트아동복지회가 세 살이던 그를 입양 보낼 때 기아호적(고아호적)을 작성하면서 이름은 신성혁에서 신송혁으로 바뀌었다. 그는 시민권을 얻지 못해 36세 때 미국에서 추방됐다. 법원은 “홀트아동복지회는 원고에게 1억원을 지급하라”면서도 “대한민국에 대한 청구는 기각한다”고 했다. 국가 책임은 인정하지 않은 ‘반쪽짜리’ 승소다.

입양 관리 부실 책임을 물어 홀트아동복지회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낸 해외 입양인 신송혁씨. MBC 갈무리

입양 관리 부실 책임을 물어 홀트아동복지회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낸 해외 입양인 신송혁씨. MBC 갈무리

미국에 입양된 아이, 불법체류자 되다

1979년 세 살 난 어린 그와 그의 누나는 미국에 입양됐다. 미국인 부모는 7년 만에 남매를 버렸다. 남매는 고아원에 보내졌고, 이후 ‘좋은 부모’에게 입양된 누나와 달리 남동생은 운이 좋지 못했다. 고아원을 전전하던 그는 12살이 되던 해 토머스 크랩서 부부에게 입양됐다. 3살 때 ‘신송혁’이 된 그는 12살에 ‘애덤 크랩서’라는 이름을 얻었다.

양부모는 그를 때리고 학대했다. 양부모가 아동 학대 등 혐의로 체포되면서 집에서 쫓겨난 그는 노숙인 신세가 됐다. 양부모가 그에게 미국 시민권을 신청해주지 않아 졸지에 불법체류자가 됐다. 그는 36살이던 2012년에야 영주권을 신청했는데, 과거 거리를 전전하는 동안 저지른 빈집털이 등 전과로 2016년 한국으로 강제 추방됐다.

신씨는 2019년 홀트아동복지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시작했다. 그는 홀트가 입양을 추진할 때 친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고아로 호적을 꾸몄으며, 입양 사후 관리를 다하지 않는 등 법적 의무를 저버렸다고 주장했다. 고아 호적을 만들면 ‘친부모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입양이 가능해진다.

신씨는 국가에도 책임을 물었다. 기관의 위법행위를 관리·감독해야 할 정부가 ‘대리입양’ 제도를 허용해 잘못된 관행을 도왔다는 것이다. 대리입양은 홀트같은 입양기관이 양부모 대신 국제입양 절차를 처리하는 제도다. 2012년 개정 입양특례법이 시행되고서야 내·외국인이 입양하려면 가정법원 허가를 받도록 바뀌었다.

법원 “홀트, 보호의무 저버려 강제추방 초래…국가 감독의무 위반은 아냐”

법원은 홀트가 신씨의 후견인으로서 다해야 할 보호의무와 국적 취득 확인의무를 저버렸으며, 이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재판장 박준민)는 “홀트는 국외입양을 간 신씨의 후견인으로서 입양이 완료될 때까지 수년간 불완전한 지위에 있는 신씨를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다”며 “홀트가 의무를 다해 양부모에게 시민권 취득 절차를 제때 이행하도록 주지시키고, 입양 완료 후 신씨가 국적을 취득했는지 적극적으로 확인했다면 신씨가 성인이 될 때까지도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해 강제추방 되는 결과가 초래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신씨는 미국에서 배우자 및 자녀들과 함께 생활했으나 강제추방되면서 더 이상 미국에 함께 거주할 수 없게 됐다”며 “비록 신씨가 멕시코 등 다른 국가에서 가족과 함께 거주할 수 있다 해도 수십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을 상실한 원고가 겪을 정신적 고통은 매우 클 것임이 분명하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경향신문 자료사진

다만 홀트가 신씨의 고아호적을 만들며 이름을 일부러 바꿨다는 신씨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신씨는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무적자’였으며, 입양되기 전 입소한 영아원에서 작성한 신씨의 영문 이름이 ‘신송혁’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홀트가 임의로 이름을 바꿨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정부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정부는 홀트 입양업무를 감독할 의무가 있다”면서도 “비록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장관이 홀트의 보호의무 위반 사실을 면밀히 조사하고 제재 조치에 나아가지는 않았으나, 대응에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사정만으로 국가 소속 공무원들이 고의 또는 과실로 홀트에 대한 감독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입양 업무를 수행하는 홀트가 직접적 의무를 부담하고, 정부는 입양 요건과 절차를 정해 아동의 권익과 복지를 증진하는 일반적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도 했다. 신씨가 직접 정부에 권리침해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리입양 제도가 위헌적이고 해외입양으로 정부가 부당한 이익을 얻어왔다는 신씨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리입양 용인해온 국가 책임은 없다?

이번 소송은 해외 입양인이 불법 입양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물은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로 알려졌다. 신씨 소송을 대리한 김수정 변호사(민변 아동인권위원회)는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홀트에 대해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며 “법원이 홀트의 불법행위를 주도하고 계획하고 용인해온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 심각한 유감을 표시한다”고 말했다.

입양인 신송혁(아담 크랩서)씨의 법률대리인 김수정 변호사가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위법 입양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입양인 신송혁(아담 크랩서)씨의 법률대리인 김수정 변호사가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위법 입양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 “이번 소송은 국가와 입양기관의 불법 해외입양으로 아동인권이 얼마나 침해됐고,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확인받고 책임지게 하려고 제기한 것”이라며 “국가기록원 자료와 국회의사록엔 해외 아동입양 실태를 지적하는 기록이 있고, 국가는 해외로 입양된 아동의 인권침해 상황을 알고도 대책을 수립하지 않았는데, (국가에 대한 청구가) 기각된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판결로 신씨에게 또 하나의 절망을 안긴 게 아닐까 안타깝다”며 “국가가 먼저 사과하고 신씨가 자라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 자유롭게 왕래하며 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주길 바란다”고 했다. 미국에 있는 자녀들과 가까이 있으려 멕시코에 머물고 있는 신씨는 이날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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