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를 받아낼 확실한 증거를 새로 확보하지 않았다면 검찰이 스스로 공소를 취소한 범죄는 다시 재판에 넘길 수 없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공소기각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지난달 29일 확정했다.
A씨는 2012~2013년 피해 회사 대표를 속여 총 52억5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2017년 12월 기소됐다. 당시 검찰의 공소장에는 수사절차에서의 피고인의 진술 내용 등을 인용하면서 검사의 판단이 기재된 여러 각주가 포함돼 있었다. A씨 측 변호인은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때 원칙적으로 공소장 하나만을 제출해야 한다는 것으로, 예단을 생기게 할 수 있는 내용을 인용해서는 안 된다는 형사소송 원칙이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을 허가했지만, 검찰은 2018년 5월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공소취소장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그 다음달 공소기각 결정은 확정됐다.
그런데 검찰은 2018년 7월 공소 취소했던 선행사건과 동일한 공소사실로 A씨를 다시 기소했다. 형사소송법 329조는 ‘공소취소 후 그 범죄사실에 대한 다른 중요한 증거를 발견한 경우에 한해 다시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데,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공소취소된 경우에만 해당 조항이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앞선 A씨 사건은 공소장에 흠결이 있어 공소를 취소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재기소 제한조항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또 이 조항이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해당 사건이 정식 재판에 돌입하지 못한 채 증거조사 없이 공소취소됐기 때문에 모든 증거가 법원 입장에선 ‘다른 중요한 증거’가 된다고도 했다.
하지만 1·2심 법원에 이어 대법원까지 모두 검찰의 재기소가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공소취소 후 새롭게 조사해 제출한 증거들은 공소취소 전에 충분히 수집·조사해 제출할 수 있었던 증거이거나, 공소사실 핵심과 관련이 없는 증거라고 보고 검찰의 재기소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공소취소 후 재기소는 헌법이 규정하는 ‘거듭처벌금지의 원칙’의 정신에 따라 불안정한 지위에 놓이게 될 수 있는 피고인의 인권과 법적 안정성을 보장한다는 관점에서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