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이 고가 선물 받아도 처벌 못 하는 청탁금지법··· “입법 취지 못 살렸다”

김혜리 기자
김건희 여사가 10일 서울 자살방지를 위해 마포대교 난간에 설치된 도르레를 직접 만져보고 있다. 대통령실제공

김건희 여사가 10일 서울 자살방지를 위해 마포대교 난간에 설치된 도르레를 직접 만져보고 있다. 대통령실제공

검찰이 명품가방 수수 사건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불기소하면서 청탁금지법의 허술한 규정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대통령 부인이 수백만원대 선물을 받았음에도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 금지’를 목적으로 제정된 청탁금지법을 피해가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청탁금지법은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 2011년 ‘벤츠 검사’ 사건 등을 계기로 도입됐다. 고가의 금품을 받은 공직자들이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법망을 피해 가는 사례가 등장하자 뇌물죄 등 기존 부패방지 관련 법률의 한계를 보완한 것이다.

청탁금지법상 공직자는 명목과 관계없이 1회 100만원 또는 연 300만원을 넘는 금품을 받으면 처벌 대상이 된다. 그러나 공직자 배우자에 대한 규제는 느슨하다. 배우자는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에게 적용되는 것과 같은 액수의 금품을 수수·요구·약속하는 것은 금지되지만, 이를 어겨도 처벌조항이 없어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검찰은 김 여사가 받은 가방은 윤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이 없고,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배우자 처벌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김 여사를 불기소했다.

법 제정 당시에도 공직자 배우자의 금품 수수 규제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배우자 사생활까지 규제해선 안 된다는 입장과 배우자를 통한 우회적 금품 전달을 차단하려면 공직자와 동일한 제한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했다. 배우자 직무와의 관련성을 따지고, 금품을 받아도 처벌하지 않는 지금의 법 조항은 타협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법 제정 당시엔 사실상 공직자나 다름없는 영부인이 이 조항으로 논란의 대상이 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입법 미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청탁금지법은 서로 모순되거나 해석이 엇갈리는 조항들이 포함돼 있어 행정·수사기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공직자 배우자에게 금품을 준 사람에 대해 직무관련성을 따져야 하느냐가 대표적이다. 청탁금지법 8조5항은 “누구든지 공직자나 그 배우자에게 수수 금지 금품 등을 제공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직무관련성’이란 명시적 문구가 없고, 판례도 충분히 누적되지 않아 전문가 사이에서도 해석이 갈린다. 청탁금지법 주무관청인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는 지난 6월 김 여사 사건을 종결하면서 “수수자와 제공자가 필요적 공범인 점 등을 고려하면 제공자에게도 직무관련성이 인정돼야 한다”는 해석을 내놨다. 검찰도 명품가방을 받은 김 여사와 준 최재영 목사 모두 직무관련성이 있어야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직무관련성과 무관하게 배우자에 대한 공여자를 처벌할 수 있다고 보는 법률가가 많다. 한국부패방지법학회 회장인 신봉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청탁금지법 8조5항은 직무관련성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며 “줬다는 것 그 자체로 위법한 행위가 성립한다”고 말했다. 최 목사를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판단한 지난달 24일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에서도 이런 의견들이 나왔다. 그럼에도 검찰은 수심위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여사는 불기소, 최 목사는 기소했을 때 불거질 정치적 논란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청탁금지법의 ‘구멍’들을 메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직자 배우자도 특정 금액 이상을 수수한 경우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해석에 따라 처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나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며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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