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초등학교 6학년·중학교 3학년·고등학교 2학년 학생 180만여명이 일제히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치른 26일 오전.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택한 학생과 학부모 30여명은 서울 북촌한옥마을을 찾았다. 시험 부담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밝은 표정이었다.
동생과 함께 북촌을 찾은 최영민군(가명·12)은 “1주일에 2번씩 전 과목 단원평가를 보는 데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도 봐야 하는데 일제고사를 또 치러야 한다니 정말 싫었다”고 말했다. 무단결석 처리가 두려울 법한데도 최군은 “아빠가 다 이해해줘서 괜찮다”며 미소를 지었다.
1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인천에서 체험학습을 온 박영서양(12)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일제고사를 거부했다. 반장이었던 지난해에는 선생님이 시험문제지를 돌리는 역할을 맡기려다 결석한 것을 알고 부모와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박양은 “그렇지 않아도 공부 스트레스가 심한데 이번 시험으로 저희 전부를 평가한다는 게 너무 싫었다”고 말했다. 또 “전국에서 동시에 시험 치르느라 들인 돈으로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 도움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신대방동에서 아빠와 함께 북촌을 찾은 김성호군(12)은 무더운 날씨에 구슬땀을 흘리며 연신 “더워, 더워”를 외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는 ‘어떻게 시험을 빼먹을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 “시험 보기 싫어서요”라고 짧게 답하고는 이곳에서 처음 만난 또래 친구들과 한옥 대문 문틈으로 안마당을 들여다보기 위해 뛰어갔다.
이날 북촌 동양문화박물관에서는 부채에 민화를 그려넣는 체험학습을 준비했다. 이리저리 뛰놀던 아이들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꽃이나 나비를 그려넣는 아이, 자화상을 그리는 아이, ‘똥 싼 동생’ 그림이라며 장난을 치는 아이 등 각기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채색하는 시간만큼은 같은 시간 일제고사 문제를 풀고 있을 친구들 이상으로 집중력을 보이며 온 정성을 다했다.
자녀 둘을 데리고 온 권모씨(45)는 “이 정부 들어 벌써 다섯번째 일제고사가 치러졌는데 그동안 성장기를 보낸 아이들의 5년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