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열 자리 남았습니다.”
학부모 135명은 입술이 타들어 갔다. 60자리 중 50자리는 금세 추첨이 끝났다. “13.5 대 1이네. 어쩌면 좋아.” 한 엄마의 한숨에 모두의 얼굴은 더 어두워졌다. 숨죽인 내부와 밖은 공기가 달랐다. 당첨된 한 엄마는 환호하며 유치원을 달려나갔고, 입학원서를 받은 한 엄마는 휴대폰을 누르면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의 한 사립유치원에서 4일 엄마를 따라온 아이가 내년 신입원생을 뽑는 추첨을 직접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4일 오전 10시, 서울 관악구의 한 사립유치원. 2015학년도 만 3세반 원생 60명을 선발하는 추첨장에는 185명이 모여들었다. 꽉 들어찬 강당엔 당첨 숫자를 적어가는 대형 화면이 띄워졌다. 당첨된 학부모가 앞에 나와 탁구공이 담긴 박스에 손을 넣을 때마다 남아 있는 학부모들은 유치원에서 받은 자신의 번호표를 불러주길 기다렸다. 사색이었다.
“올해부터 (같은 군 유치원에) 중복지원하면 입학이 취소된다는데, 그래도 할까 말까.” “하늘의 별 따기라는 공립은 어떨까. 끔찍하다.” 술렁임이 계속되다 마지막 당첨자 번호가 불렸다. 떨어진 한 엄마는 “이 근처 공립유치원엔 통학버스가 없어서 처음부터 사립 가·나·다군이 전부였다”며 “안되면 어린이집을 알아봐야 하는데 이것저것 다 해 59만원을 낼 형편은 안되고 어째…”라고 울상을 지었다. 예비번호에 뽑힌 다른 엄마는 “미등록이 생기면 들어갈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자리가 날지 모르겠다”며 일어섰다.
서울의 유치원 ‘추첨 전쟁’이 4일 사립유치원부터 시작됐다. 원래부터 경쟁률이 높아 ‘로또’나 ‘운발’로 불리던 추첨에는 올해 ‘중복지원 눈치작전’까지 더해졌다. 사립(4·5·10일)과 공립(10·12일)에 4차례만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근표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은 이날 “여러 차례 공지한 대로 지원 아동과 보호자의 이름·생년월일 등을 확인해 반드시 중복지원자는 합격을 취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못 잡아낼 것”이라며 추첨장에서 이어지는 눈치작전에 선을 그은 것이다.
유치원 입소 대란에는 수요·공급이 엇박자로 가는 주먹구구식 행정이 깔려 있다. 경향신문이 미취학 아동이 많은 서울·경기의 시·군·구별 0~5세 아동과 유치원·어린이집 현원 숫자를 비교한 결과 서울 종로구는 97.7%가 시설에 갔지만, 서초구는 44.3%에 그쳤다. 경기도에선 과천(90.2%)이 가장 높고 성남(67.9%)이 최저였다. 들쭉날쭉인 셈이다.
보육비·양육비 예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보육 현장은 ‘돈 먹는 하마’에 머물고 있다. 보육·교육의 질 차이를 줄이겠다는 정부의 ‘유·보(유치원·어린이집) 통합’도 구체적 그림을 내놓지 못해 산으로 가고 있다. 보육이 정글 같은 시장에 맡겨졌고, 이대로라면 10년 후에도 나아질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사립유치원 추첨(경쟁률 4.2 대 1)에서 떨어지고 대기번호 17번을 받은 이모씨는 “내 돈 내고 다닌다고 해도 뽑히기 힘든데 누가 아이를 낳겠느냐”며 “이제 집은 비상 상황이 됐고, 언제까지 이런 전쟁을 치러야 할지 말이 안 나온다”고 했다. 이기숙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부모들로서는 정말 우리 동네에 맡길 수 있는 시설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거나 너무 가기 힘들 것”이라며 “민간 어린이집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국공립 숫자를 늘리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